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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해외선교주일

관리자 2020-01-28 (화) 17:59 4년전 1818  

본문) 막 3:7~19, 고전12:1-11, 출18:13-27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우환(憂患)속에 몰아가고 있다. 우리 하나님의 크신 돌봄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셔서, 이 우환의 때를 잘 이겨내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주현절 넷째 주일이다. 우리 교단에서는 오늘을 해외(海外)선교주일로 지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이룬 공동체인 교회(敎會)는 원칙상 모두가 선교(宣敎) 공동체이다. 즉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위하여 이 땅에 세움 받은 공동체가 바로 교회란 말이다. 따라서 선교를 외면하거나 배제한 교회는 주님의 교회랄 수도 없다. 철저히 선교를 행하고 선교를 위하여 존재할 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 선교적 상황은 어떤가? 

 

흔히 선교라고 할 때, 우리는 해외 선교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니다. 해외 선교는 모든 선교의 영역의 일부일 뿐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우리 예수님의 선교를 보면, 그의 선교에는 해외와 국내가 따로 없었다. 물론 지정학적 여건이 유대와 이방인 지역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었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선교에는 내 것이나 네 것이나 구분이 없으셨다. 당신을 원하시는 대상이나 지역은 모두 차별 없이 품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교가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세계화로 접어들 때가 있었다. 바로 성령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도들과 그의 특별한 동역자들이 해외 영역인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아가면서, 비로소 해외 선교가 본격화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 사도는 기독교 최대의 해외 선교사였다. 복음으로 하늘 백성들을 세우고, 교회들을 세우는 선교를 하였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성령과 함께 그가 펼친 해외 선교의 중요한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차제에 ‘선교사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냐’라는 문제도 숙고(熟考)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의 원조(元祖)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결단으로 이 지구촌으로 파송(派送)되어 오신 첫 선교사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선교사의 참 모범이 되시고 참 선교사들을 세우시고 양육하여 파송하신 주역이 되신 분이시다! 

 

잠시 생각할 일이 더 있다. 종종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첫 해외파송 선교사를 구약의 요나 선지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失敗)한 선교사의 원조이지, 정상적인 선교사는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신학적 입장에 붙들려서 하나님이 파송한 선교사가 품어야할 긍휼과 자비의 영성을 전혀 갖지 못함으로서, 선교사의 참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의 해외선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점만 보여 준 인물이었다. 그가 못 보여 준 참 선교사의 모습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대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선교사들은 단연코 이 원조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을 맺어야만 하고, 그를 잘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막3:14-15참조). 그와 상관없이 선교하려고 나서는 자가 있다면, 그는 결코 사이비(似而非)일 뿐이지 정상적인 선교사일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선교에는 다음의 삼대 핵심(核心) 요소가 있음도 기억하자(고전12:4-6절 참조). 성부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무대인 현장(現場/Field)이다. 성자인 예수께서 세우신 인물(人物/Person)이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은사(恩賜/Gift)와 재능(才能/Talent)들이다. 이 셋은 각자이면서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만 있다고 해도 선교는 꿈일 뿐이다. 오직 이 셋이 함께 모아져야만 비로소 선교가 발생한다! 

 

근본적으로 선교는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구원해내는 일이며 동시에 그 삶의 환경과 문화 변화까지도 견인하는 일을 주도하기 때문에, 그 성격과 가치가 전적으로 영적(靈的)이다. 이 말은 선교하는 곳에는 반드시 훼방꾼인 악(惡)한 영들이 개입하여 못되게 하는 일이 발생함을 말한다. 그러기에 선교는 큰 싸움을 거치면서 승리를 이끌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선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합하여야 가능할 삼위일체(三位一體)적일 수밖에 없다.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도 삼위일체적 이어야한다. 적절한 인물과, 일할 수 있는 현장과, 끊임없는 지원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기도해 주고, 물질로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후원하며 동역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즈음 한국교회들이 단기선교 팀을 선교 현지들에 많이 파송하여 선교훈련을 시키고 있는데, 바람직한 모습이다.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도 하나님의 선교가 어떻게 삼위일체적으로 펼쳐지는 지를 전하여 준다. 복음서에서는 지구촌의 대 선교사로 오신 성자 예수께서 제자들 12명을 선교 동역자들로 선택하고 어떤 선교훈련을 시키셨는지를 전한다. 서신서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그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기 위하여, 어떤 은사와 능력들을 주시면서 일하시고 계신 지를 전하여 준다. 구약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은사인 지혜를 받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종과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얼마나 큰 은혜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그 시범(示範)으로 보여 준다. 

 

복음서를 보자

본문은 선교의 첫 핵심요인인 인물(人物)에 관한 부분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지구촌의 대 선교사이셨던 예수께서 저 팔레스틴 북부지역을 무대로 어떤 국내외 선교활동을 펼치셨는지, 그리고 제자들 12명을 그의 선교동역자들로 선택하셔서 어떤 선교훈련을 시키셨는지를 전한다. 

 

1)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선교하신 무대는 갈릴리 바다 일대였다(7-8절). 그가 하신 큰일은 대략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더러운 귀신들이 어느 때든지 예수를 먼저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외친 일이다(10-11절). 

 

2) 그 바람에 큰 무리들이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 이방 땅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까지 예수께 몰려 들어 서로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면서 에워싸 미는 바람에,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배를 대기시킬 정도였다(9-10절). 

 

3) 예수께서 그의 선교 동역자들로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훈련시키신 내용들은 이러했다:

① 당신이 원하시는 자들로 12명을 부르셔서 제자로 세우셨다(13-14.상). 여기서 예수의 제자를 택한 행위를 ‘세우셨다’고 했는데, 이 표현은 ‘창조하셨다’, ‘만드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12지파로 창조하셨던 것처럼, 성자 예수께서도 당신에게 부여된 ‘부르시고, 세우시는’ 전권(全權)으로, 12제자를 통하여 시작된 새 이스라엘로서 이전에 무너진 12지파를 회복시키는 의미를 담아서 12 동역자 시스템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다음의 세 가지 과제들이 부여되었다(14-15절). 첫째는 절대 주님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주님을 배우고 본받음이 가능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전도와 선교에 파송되어야 했다. 복음과 천국과 생명은 받기도 해야지만, 전하고 나누어서 모두를 살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귀신(鬼神)을 내쫓는 권능도 받아야만 했다. 이 권능이 없으면, 선교현장에서 판을 치는 악한 영들이나 어둠의 힘에 밀려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필히 주님으로부터 귀신과 불의한 권세를 내쫓는 힘(권세)까지 받아야만 했다. 

 

③ 예수님에게서 세움 받아 역사적인 인물들이 된 제자들 12명은 다음과 같다- 주님으로부터 ‘베드로’란 이름을 더 받은 시몬,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보아너게’란 이름을 받은 야고보와 그의 형제이면서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받은 요한,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다대오, 시몬(가나사람), 그리고 가룟 유다(예수를 판 자)였다(16-19절). 

 

서선서를 보자

본문은 선교의 현장을 이끌고 주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사도 바울의 증언이다. 이 성령은 신령(神靈)한 성부와 성자의 영이시다. 성령은 예수 이후의 시대인 교회의 시대를 열어주신 주체로서, 복음과 그 사역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도록 실질적으로 도우시는 분이다. 그러기에, 선교하는 이들은 성령과 그가 행하시는 모든 사역과 역사들에 대하여 무지해서는 안 된다(1절). 성령에 무지하면, 악령에게 역공까지 당할 수 있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음에도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게 성령 사역의 일반적인 표준(標準)들을 몇 가지 제시하였다. 

① 성령 충만을 입증하는 것은 형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서 찾아야 한다(2절). 종종 기독교가 아닌 이교(異敎)나 우상종교에서도 기적이나 표적들도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것들을 보고 성령의 역사로 무조건 받아들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바울 때에나 애굽 종교에게도 있었잖은가? 귀신들도 다양하게 자기를 과시한다. 문제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이다. 

 

② 성령의 결정적인 참된 표시는 받은 자들이 예수를 자기의 주(主)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일이다. 성령은 받은 자로 하여금 삶의 주체가 자기나 어떤 인간이 아니라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한다(3절). 그래서 자기 삶의 주인이 교체된 모습을 시인하고 고백하며 예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그게 바로 성령이 충만한 모습이다!!! 만일 예수를 저주할 자로 지적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악령의 역사이기에 절대 경계해야 한다. 

 

③ 성령은 거룩하신 성부와 성자의 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분리되어 일하시는 법이 없다. 절대로 함께 일하시고, 그 분들을 드러내시며, 그 분들의 하시는 일들이 온전하게 성취되도록 그 내용들을 채우시는 분이시다(4-6절). 그런 점에서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도 되신다. 성부께서 마련하신 무대와 성자께서 택하여 세우신 일꾼들에게, 성령께서는 다양한 기능과 재능(은혜/그리스어)들로 채워주셔서, 전체가 온전히 돌아가게 하신다. 

 

☞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만 할 이유이며, 성령 없이 사역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긋난 일인가를 답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성령 없는 사역자나 신자, 성령과 함께 사역하는 사역자나 신자, 이 둘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선교사역자들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서 일하도록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난 후’에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④ 그러면 성령께서 교회와 선교의 일꾼들에게 부여하시는 콘텐즈(내용물)들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그에게 적합(適合)한 은사가 부여되는데, 절대 모든 이에게 다양하게 주시지 몰아서 주시지는 않는다. 그 내용 9가지들은 이렇다(8-10절). 지혜의 말씀-지식의 말씀-믿음-병 고침(치유)-능력 행함-예언-영분별(分別)-각종 방언 말함-방언 통역 등등이다. 그 외에도 많다. 

 

⑤ 명심할 일은 성령 수여(授與)의 목적이다 - ‘유익(有益)하게 하려 하심이다’(7절). 그러기에 성령 받은 이들은 절대 교회나 선교의 훼방꾼이나 분열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구약을 보자

하나님의 일꾼이나 주의 제자로 선택 받고 그 기능과 능력까지 부여 받은 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역할 것인가? 그 사역의 무대와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뜻밖에도 모세의 장인이자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큰 역할을 소개한다. 이드로가 그가 받은 지혜의 은사를 통하여, 모세와 그의 출애굽 공동체의 행보에 매우 커다란 도움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1) 이드로가 본 사위 모세의 행위는 옳지 못했다(17절). 그 이유는 그가 맡은 업무량이 혼자 맡기에는 너무 과중한데도, 모세는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서 그 재판 업무를 홀로 처리하느라 매달려 지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모세는 물론, 하루 종일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백성들까지도 모두 기진할 위험성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비생산적인 구조 때문이었다(14-18절). 

 

2) 이 때 하늘의 지혜(智惠)를 받은 이드로가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새 방침들을 제시하였다. 

① 전체 백성들에게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담은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보여라(19-20절). 

② 백성들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하나님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거부하는)을 찾아서, 그들을 천부장-백부장-오십부장-십부장 등의 중간 지도자들을 세워서, 모세가 맡아왔던 작은 일들을 처리하게 했다. 모세는 큰 일만 맡으면 되었다. 일들이 쉬워졌다-(19-23절)!

③ 이드로의 권고가 받아들여 새로운 재판 시스템이 구축되고 시행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광야길 행진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은사의 힘과 유익성을 보여 준 좋은 사례였다(24-26절). 

 

☞ 이런 은사의 효용성과 적절성은 시공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교회와 일터와 가정과 국가와 하나님 나라도 이런 은사를 받은 이들의 섬김과 봉사로 이루어진다. 참된 은사자들이 많은 곳은 항상 풍성하고 기름지며 은혜가 충만할 수밖에 없다. 우리 다 사모하며 구하자. 

 

결론이다

성령 받고 예수를 주로 섬기는 모든 이들은 모두 다 선교사들이다. 안팎 어디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선교는 인간 구원과 삶의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기에, 매우 막중한 업무여서 서로의 협력과 기도가 모아져야만 한다. 특히 해외선교사들에게는 물질과 기도의 힘이 공급되어야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선교의 주이시다. 저들이 우리에게 터전을 마련해주시고, 일꾼으로 세우시며, 능력까지 채워주셨다. 선교에 헌신하자. 선교해야 산다. 선교하는 교회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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