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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탄 일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9-12-24 (화) 00:27 4년전 1682  

본문) 마 2:1~12, 사60:1-14, 갈4:1-7 

 

성탄의 계절이 왔다. 기다리던 메시아께서 아기 예수로 드디어 오신 절기에 들어선 것이다. 그 중에 오늘은 탄생하신 당일(當日)인, 성탄일(聖誕日)이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날인가? 비록 이 성탄 절기는 오늘부터 12일간의 짧은 절기로 맞이하지만, 우리는 메시아를 맞이하는 훈련을 제대로 하는 계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 성탄인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절기(Christ+Mass)임을 명심하고, 예배자로서의 우리 자세를 더욱 새롭게 하자. 그를 위하여 우리는 세 본문에 나타난 메시아 영접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배우도록 하자. 

 

마태가 전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매우 긴박(緊迫)했다. 크게 보면, 하늘의 권세자인 하나님과 땅의 세력자인 헤롯 왕 사이의 치열한 충돌 속에서 실현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천지의 주이신 하나님의 밀고 들어오시는 그 능력의 손길 앞에 세속의 저항하던 힘도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체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러나 그 저항은 그때 밀린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하늘의 도전 세력으로 이어질 것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대체 그런 치열한 마찰과 충돌의 구체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나?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아기 예수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일 때문이었다. 그것도 ‘유대인의 왕(王)으로 나신 이’라는 일이 문제가 되었다(2절.상).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고하신 바대로, 때가 되자 성취된 일이었으나(렘23:5참조), 이미 땅의 왕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헤롯은 자기 외에 또 다른 왕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런 ‘새 왕’의 등장을 극구 저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온 세상 역사는 전능자의 손 안에 있었다. 그러기에 비록 그 어떠한 세상의 방해나 저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결단인, ‘인간되어 오시는 은혜로운 성육(成肉)’의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간계한 거짓과 위선으로 무장한 국가 권력까지 총동원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좌절시키려고 했지만-, 그들의 수준을 이미 훨씬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지혜 앞에 그들의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사건(事件)의 기록자인 마태는 그 일을 성사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에 주목하였다. 메시아의 성탄이 밖(외부)에서 밀고 들어오는 낯선 증인들로 인하여 확인되고 있었음을 주목한 것이다. 내부에서 발생한 놀라운 사건들이 각종 권력과 언론 등의 통제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외부의 새 시선들이 그 사건 발생을 감지하고, 이 폐쇄된 현장에까지 밀고 찾아와, 판을 바꾸어 놓는 기이함을 놀라워 한 것이다. 마치 쓰나미 현상처럼 말이다. 

 

즉 메시아의 탄생 소식은 그 일의 호스트(host)가 되어야만할 유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거나 땅에 묻혀버릴 사안일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의지를 밝히기 위하여, 우주(하늘)의 별을 동원하시기 시작했고, 그것의 출현을 놀라워하며 반기던 이방인 현자들의 마음과 눈을 열어주시면서, 그 성탄 사건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첫 번째 성탄은 처음부터 우주적(宇宙的)이요 세계사적(世界史的)인 일이었음을 말하려 하였다. 

 

그 바람에 오신 아기 예수의 성탄은 이제 유대인 중심의 구원 축제 차원을 넘어서, 온 세상의 믿음과 마음이 열린 모든 자들의 구원의 축제로 나아갈 사안임을 예고하게 되었다. 아무리 혈통상의 동족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고 거부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수혜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 만민 중 그 누구라도 오신 주님을 기뻐하며 영접하고 경배하면, 그 누구나 하늘의 구원의 잔치 상에 초대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다. 

 

그 점 때문에, 요한복음은 이렇게 선포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절). 

 

요한의 이런 새 질서를 향한 선언은 당시 유대주의와 혈통주의에 따른 아브라함의 후손됨의 선민(選民)사상과 무조건적인 구원론에 대한 명백한 ‘아니요’를 선포한 것으로서, 정말 대단한 혁명적이고 도전적인 선포였다. 즉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의 혈통적 우선주의나 선민사상도 끝났음을 선언한 것이다. 다만 이제 중요한 것은, 오신 메시아 예수의 말씀과 뜻에 맞게 사느냐 못 사느냐 여부였다(요6:35-40참조). 그러기에 예수께서 오시면서부터, 낡은 역사의 깃발을 끌어내리고, 새 구원의 깃발을 올려 세우는 십자가 의 구원 행진이 시작되었다. 

 

그 새 규정 앞에, 당시의 집권자인 헤롯은 말할 것 없고, 유대교 최고의 기득권을 행사하던 바리새인들도 예수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으며, 권력과 종교의 아부세력인 사두개인들도 예수는 정말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그 바람에 유대 땅과 유대의 율법종교는 오신 예수를 통하여, 그 동안 걸치고 살아왔던 율법종교와 예루살렘 성전중심의 종교의 옷을 벗고 새 이스라엘과 새 예루살렘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되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인 성탄일(聖誕日) 셋째 해에 우리가 받게 된 세 본문 말씀들은 그렇게 긴박하게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자기 백성들인 유대인들에 의해서가 아닌, 비(非)유대인인 이방인들을 통하여 융숭한 축하의 밥상이 차려진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증언은 복음서에 나타난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에서만 입증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 이사야 예언자도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포로생활에 의해 형편없이 망가졌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어떻게 새로운 영광의 옷을 입게 될 것인지를 놀랍게 예고하였던 일을 통하여도 확인된다. 그뿐 아니다. 성탄하신 메시아 예수께서 베푸신 구원의 밥상도, 유대인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인 교회 공동체에 의하여 풍성히 즐기게 되었음을 서신서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흐름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예수의 성탄일이 그의 탄생지인 유대 땅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조용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예수의 성탄을 기뻐하고 축하한다. 그 축하의 행렬에는 우리 한국교회도 있고, 우리 모두도 함께 있다. 그러면서, 세계 교회와 신도들은 역사가 아무리 흘러가도, 여전히 예수께서 탄생하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성지로 알고, 설레는 가슴으로 찾고 순례한다. 또 다른 동방박사들의 모습들이다. 또 다른 이사야 예언의 성취된 모습들이다.  

 

복음서를 보자

오신 메시아를 두고, 그를 영접하는 무리와 그를 거부하는 무리들이 취하는 행태들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1) 먼저 동방에서 경배하러 찾아온 박사들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 별의 안내를 받고 매우 먼 길을 순례하며 찾아온 일, 유대에 들어와 헤롯과 일행을 만나서 공개적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거침없이 소수문하는 일, 유대 서기관들로부터 예언에 나타났던 정보를 받아서 베들레헴에 오신 아기 메시아를 찾아뵈었던 일, 별의 인도가 거기에까지 함께 한 모습을 크게 기뻐한 일, 세 가지 귀한 예물까지 드리면서 엎드려 경배한 일, 최후에는 헤롯과의 재회의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신의 지시에 따라 고국으로 직행한 일들은 그들의 메시아를 향한 믿음과 충성심이 얼마나 크고 고매(高禖)한 것이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 도전은 그 여운(餘韻)이 매우 크다. 

① 자기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찾아 나선 그들의 모습은 참 구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많은 학자들은 그들을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나 박사급 이상의 위상을 가진 이들로서, 천문학에도 탁월한 식견을 가진 현자들로 본다. 메시아를 자기 종교 안에서가 아니라, 어디가 되든 그 본체가 확실하면 찾아 나선 그 모습은 매우 감동을 준다. 그들이야말로 오신 예수가 온 세상의 빛이요 생명임을 입증하였다. 

 

② 매우 오랜 순례 길을 감당한 모습이 신비스럽다. 그 먼 길과 사막과 광야를 꿰뚫고 매우 오랜 세월을 순례하며 서쪽 변방에까지 별을 따라 온 그들의 순례는 그야말로 모든 정성과 마음을 쏟아낸 씨름이었으리라. 그들 세 명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순례길을 돕고 되도록 협력해야할 도우미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요된 경비도 엄청났을 것이다. 

 

③ 최고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신앙에 있었다.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예배와 예물을 드릴만한 분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라는 사실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행동으로 증언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들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이후에 전개될 아기 예수의 애굽에로의 피난살이를 돕는 매우 적절한 헌물이 되었을 것이고, 아기 예수의 피난의 불씨로 열매가 된 이집트의 곱틱 교회 공동체 탄생에도 깊이 이바지하였으리라고 보인다. 

 

2) 하지만, 헤롯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의 아기 예수에 대한 대응은 그의 탄생 소식에 매우 큰 충격에 휘말렸으나(3절), 대응하는 모습은 아주 소극적이고 간계(奸計)한 것이었다. 

 

① 헤롯 왕은 순수하지 못했다. 우선 궁금한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후, 아기 메시아를 죽이려는 계책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 대제사장과 유대 학자들을 긴급 소집하면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나겠느냐’고 자문(諮問)을 구했다(4절). 그 대답을 접한 후, 이번에는 동방박사들에게 그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기도 하고,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한 후에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이유는 자기도 후에 그곳에 가서 아기 메시아에게 경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7-8절). 질투심에서 맞이한 헤롯의 크리스마스는 죽임을 부른 것이다. 

 

② 헤롯의 자문에 응답한 학자들의 크리스마스도 썰렁했다(5-6절). 그들은 이미 예언에 대한 지식으로 오실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 오실 것이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삼상16:1,17:12,15, 삼하5:2,미5:1참조). 왕과 동방박사의 궁금증에 답을 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오신 메시아를 찾아서 직접 경배하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아니었다. 가장 비생산적인 신앙인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알고도 행함이 없는 신앙인’이 ‘죽은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구약을 보자

선지자 이사야의 시온 예루살렘의 미래를 향한 예언이다. 가난과 압제와 슬픔과 곤경에 가득한 땅, 예루살렘에게 유일한 희망은 여호와의 돌아오심이다. 오직 여호와가 오셔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면, 주저앉았던 그들에게 새 역사가 시작됨을 구체적으로 선언했다(1-2절 참조). 

 

그런데 여기에서도 여호와의 오심으로 그의 영광이 예루살렘이 나타나게 되자, 이방 나라들과 왕들이 먼저 그 영광(榮光)의 빛을 알게 되면서, 수많은 보물과 예물들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모습을 예고하였다. 동서남북에서 몰려오고, 재물들과 가축들도 함께 오며, 제물들을 드리며 여호와를 찬송하는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오랜 세월 궁색했던 예루살렘과 성전이 이방 세계의 선교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예고하였다(3-7절, 8-9절 참조).  

 

심지어 이방인 노동자들이 몰려 와 무너진 성벽을 쌓고, 성문은 24시간 노상 열려서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된다. 그들을 섬기지 않는 백성이나 나라는 다 파멸되고 진멸될 것이며, 백성들의 처소들도 레바논의 최상의 나무로 만든 곳이 되는 영화를 누리게 될 것도 예고되었다(10-13절). 뿐만 아니다. 예전에 그들을 괴롭히고 멸시하던 자들의 후손들이 그들 앞에 엎드리며 ‘당신들이야말로 여호와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을 예고하였다(14절). 이는 오실 메시아는 우리 삶에 상전벽해를 안겨주실 분임을 예고한 것이다.

 

결국, 이 예언은 복음서의 이방인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향한 경배의 모습 속에서 성취되었음을 압축하여 증언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이것만은 분명하다. 메시아 예수의 빛과 영광이 머무는 곳에는 사람들도 모이고, 재물도 모이며, 가난 대신에 부요가 따르고 궁색함이 풍요로움으로 대체되는 축복이 따르는 것을 확증해준 사례이다. 그것은 예수에게 빛과 생명과 구원과 영광의 향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꽃 핀 곳에는 벌과 나비가 몰려드는 것과 당연하잖나!

 

서신서를 보자

우리는 오신 메시아 예수로 인하여 신분에 큰 변화를 겪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성령으로 받게 되면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양자(養子)인 아들/딸이 된 것이다. 감히 죄인이면서 종이었던 존재들이 예수를 믿고 영접한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이다. 혈통으로도 아니고 육정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영접한 일로 그렇게 되었다(요1:12-13). 

그 바람에, 우리에게 확보된 신분상의 지위(地位)와 명분(名分)이 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유업(遺業)을 이을 자’란 지위이다(1,7절).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견인하고 있다. 최종 유업을 상속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종같이 섬기고 훈련해야한다. 자격과 내용을 확보해야만 한다. 명분에 어긋나고 손상될 처신은 삼가야만 한다. 내주하신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결론이다

주님을 모셨는가? 내 안에 성탄하셨는가?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있는가? 중요하게 확인해야 될 일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충성으로 그의 성탄이 내 안에 이루어졌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부디 동방박사들의 주님 사랑과 충성의 영성을 주목하고 본받자. 

 

주님은 영광이시다. 향기이며 빛이시다. 그를 제대로 모시고 살면, 세상의 염려와 걱정은 사라진다. 그 영광과 빛 때문에, 따르는 사람들, 재물들, 환경들이 몰려들고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체험자들이 되자. 그런 증언자들이 되자. 그런 행복자들이 되자. 이번 성탄을 통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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