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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5) - 세 분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4-09-23 (월) 18:07 2개월전 217  

분문) 출 16:1-8, 13-15, 요6:26-35, 고전11:23-26 


오늘은 창조절 다섯째 주일이다. 날씨는 분명 가을이 왔으나,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촌의 환경은 더욱 악화일로(惡化一路)에 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온 급강하로 주변엔 기침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감기 환자들도 급증했다. 몸 관리 잘하셔야 한다. 우리 인간의 정상적 체온은 36.5도라서, 거기에 조금만 체온이 올라가면 금방 몸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찾게 되는데, 지금의 우리 지구라는 생명체도 정상체온에서 벗어나 몇 도가 상승한 바람에, 지구 전역이 온통 심각하게 몸살하고 있다. 정말 큰 일이다. 


그 바람에 태풍, 폭우, 홍수, 폭염, 혹한, 가뭄, 지진, 화산활동, 지각변동, 해수면 상승 등등 실로 지구촌 전반이 안전한 곳이 없다. 거기에 전쟁들과 전염병도 기승을 부린다. 이런 중에 금방 부딪힐 최대의 위협은 아마도 먹거리 식량(食糧) 재앙일 것이다. 이런 이들이 가중되면서 상호 간에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면, 집단 이기주의에 불이 붙으면서, 전쟁과 폭력의 충돌에 휘말리게 되어, 결국은 인류가 상호 파괴와 자멸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같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남북 분단국가의 입장에서는 불안 지수는 더욱 높아만 간다.


이런 중에 지난 주간에 우리 안에서 두 가지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일어나서, 우리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하나는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씨의 두 국가론을 기정사실로 하자는 주장이다. 이 일은 이미 북한의 김정은이 그렇게 선언하고 분단을 국경선으로 고착시키면서, 핵전쟁까지 운운하는 터이기에, 이제는 우리도 한 국가론만 고집하지 말고 그런 현실을 시인하면서, 그보다는 한반도 전체가 평화로 하나 되는 일에 우선 관심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또 하나는 한겨례신문 보도인데(9.21), 지난 38년 동안 거리의 노숙자들과 노인들의 배고픔을 해소하는 일에 앞장섰던 동대문구 청량리의 최일도 목사의 <밥퍼나눔운동본부>라는 봉사집단이 지금 그 건물 뒤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에 2,800가구가 들어서면서, 이들이 자기들 아파트값이 이 밥퍼 단체로 인하여 떨어진다면서, 유형무형의 압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불법이요 무허가 건물’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서 밀려날 처지에 서게 된 일이다. 이 일로 인하여 하루 600인분의 밥을 먹이는 일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탐욕의 어두움을 여지없이 드러낸 부끄러운 상황이다. 서울시와 구청 행정의 대처가 주목된다.


이런 중에 오늘 우리는 세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에 관련된 말씀을 듣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 지구촌에 생명을 부여하시면서 이 먹는 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하셨다. 먹지 않고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구조로 질서를 잡으셨다. 그러기에 먹는 것이 곧 생명이요 존재임을 알게 하셨다. 그러기에 창조주는 처음부터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양식들을 아주 풍부하게 취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셨다. 욕심과 탐욕을 자제하고 공존과 공생의 윤리만 지키면, 그 누구나 부담 없이 먹고 살도록 풍성한 먹거리들을 공급해 주셨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적 속성을 헤아리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먹거리 영역에도 안전(安全)과 견제(牽制)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탐욕(貪慾)과 탐심(貪心)과 독점(獨占)에 대한 금지 장치였다. 그게 바로 선악과(善惡果)였다(창2장). ‘따먹지 말라’는 금지 장치의 말씀만 지키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안전장치가 바로 선악과였다. 그런데 어떤가? 누가 그 안전 질서를 허망하게 깨뜨렸나? 바로 우리 인간이었다. 금하는 말씀에 궁금해하고 참지 못한 인간들이 그 금기(禁忌)선을 깨뜨려 버렸다. 모든 인류의 죄악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오신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인류가 이 먹는 문제로 인한 범죄를 또다시 범하지 아니하게 하시고자 그 길을 제시하려고 하심이었다. 그게 바로 광야 40일 금식에서의 첫 시험이었던 먹는 시험을 이겨내신 일이었다(마4:2-4 참조). 사실 우리 범죄의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먹는 데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문제는 분별력을 잃고 탐욕의 배를 채우려는 것이다. 


곧 40일 금식으로 깊은 굶주림에 시달리시던 예수께서 마귀로부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유혹을 받으셨을 때, 주님은 모세가 사용한 말씀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를 인용하시면서, 그 시험을 직접 물리치셨다.(신8:2-3참조).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모습을 치유하시는 획기적인 대안을 예수께서 광야 시험 극복 과정에서 친히 선보여 주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의 그 말씀을 제자들이 잊지 않고 평생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한 방안을 친히 마련해 주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물(代贖物)인 생명의 먹거리로 내어 주시면서, 그것을 제자들이 모일 때마다 노상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하는 음식 메뉴로 당신 자신을 올린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의 체질(體質)을 아예 예수 체질로 변화(變化)되게 하셨다. 그게 바로 우리가 예배에서 계속 마주하는 성찬(聖餐)이다. 


그러기에 성만찬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하늘 양식이 되었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아니한 자들은 원천적으로 하늘 양식인 예수와 상관없는 자들이기에, 그들의 구원을 주장할 수 없다. 처음부터 가족도 아니고 혈족도 아닌 전혀 세속의 탐욕과 이기주의의 핏줄만을 가진 첫 사람 아담의 후손들이 바로 그들이기에, 그들을 영접할 곳인 예수 계신 그 나라에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의 성만찬을 성심으로 다해 받아야 한다. 


마침 세계교회는 10월 첫 주일을 세계성만찬주일로 지킨다. 따라서 오늘과 다음 주일의 말씀들은 이 성찬의 관련된 말씀들이 계속 증언될 것이다. 오늘은 구약에서 그 기원을 알리는 말씀이 올라와 있다. 복음서에서는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어떤 축복의 자리에 있을지를 안내받는다. 그리고 서신서에서는 그 예수를 성찬으로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마음과 각오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듣게 된다. 부디 큰 은혜의 시간이길 빈다. 


1. 구약 / 출16:1-8, 13-15 / “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이리라 ”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두 달 반 만에 신 광야에 도착했을 때 일어난 일을 전한다. 문제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굶게 될 상황이 처하게 됨으로써,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해 낸 지도자들인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며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한 일이다. 그 비난 속에는 출애굽에 대한 후회와 애굽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자신들의 죽게 된 절망적 상황이 함께 들어있다. 한마디로, 이제 ‘모세 형제들이 모든 책임을 지라’는 투였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그러자 먹거리 문제로 인한 백성들의 원망을 이해하신 여호와께서는 그 위기에 직접 개입해 들어오시면서 모세에게 당신이 행하실 내용을 전하셨다. 그것이 바로 광야에서의 새 음식이 될 만나와 메추라기를 조석(朝夕)으로 그들에게 먹게 하시겠다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먹어온 동물성 양식(3절 참조)의 체질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광야의 양식인 ‘만후(=이것이 무엇이냐)’란 낯선 양식을 먹기 시작했다(15절).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체질(體質) 개선 작업이 먹거리 음식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여호와께서는 무조건 주시지 않았다. 시험(試驗)거리 하나를 끼워주셨다(4-5절 참조). 어찌 보면, 또 다른 에덴의 선악과를 만나게 하신 것이다(창2:16-17 참조). 


1) 백성들이 만난 시험에서 불평을 쏟아낸 내용은 극도의 불경스러운 언사들이었다(2-4절). 그것은 하나님이 마치 자기들을 이런 광야로 끌어내 굶겨 죽이려고 하신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그 시간 애굽에서의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를 추억하고 있었고,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토록 애굽인의 학대에 시달리면서 자유와 해방을 목말라했던 때는 깡그리 잊어버린 체(출3:7-12 참조), 지금의 잠시의 배고픔을 못 참고 종살이 시절을 그리워했다. 사실 그들의 겨냥의 대상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였다(7-8절). 


2) 사정이 그런 정도이었으나, 하나님은 전혀 그들을 질책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만큼 의식주 문제, 특히 먹는 문제는 인간들에게 참기 어려운 절박한 일이었음을 헤아리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즉시 대책을 마련하여 그들을 먹이기로 하셨다. 그럼에도 그런 그들에게 무조건 입막음용으로서의 음식 공여는 여전히 또 다른 문제를 안겨줄 위험성이 있음을 아신 것이다. 음식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먹는 사람들이어야 됨을 기획하신 것이다. 


3) 그래서 매우 의미 있는 옵션(option)을 끼워 넣어 주셨다(4.하-5절). 내용상으로는,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공급하실 것이기에 백성들은 자기들이 먹을 만큼만 거두어 먹으라는 것이다. 일종의 탐욕 금지 조항이었다. 만일 이 지시를 외면하고 많이 거두어두면, 어떻게 되나? 다른 사람들이 적게 먹게도 될뿐더러, 자기가 쌓아둔 것도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17-21절). 


4) 다른 하나는, 여섯째 날에는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을 주실 것이니, 그것을 모아다가 굽고 삶아서 보관했다가, 휴일인 거룩한 안식일에 쉬면서 여유롭게 지내라는 지시였다(22-26절 참조).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을 친히 주시는 여호와심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살아가게 하시려 했다. 이런 식량에 따른 영적 훈련, 곧 양식을 주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과, 그 음식은 먹을 만큼만 먹어서 주변에 배고픈 이들이 없도록 하는 일에 대한 훈련은 그 이후로부터 하늘 백성의 커다란 훈련 메뉴가 되었다. 물론 오늘날도 그러하다. 


2. 복음서 / 요6:25-35 /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印) 치신 자니라 ”


본문은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무리들이 예수를 자기들의 왕(王)으로 옹립하고자 할 때에, 그곳을 피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던지신 새로운 소명(召命)의 말씀이다. 주제는 먹거리 양식이었으나,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양식이 있음을 눈뜨게 하시는 순간이었다. 곧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썩을 양식은 분명히 인간이 매일 먹는 일용할 양식이고, 영생(永生)하게 하는 양식은 전혀 차원이 다른 신령한(spiritual) 양식이다. 분류해 보면, 땅의 양식과 하늘의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땅의 양식은 농부의 수고를 연상하게 되지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한 일은 어떤 일일 것이냐는 점이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생명으로 보내신 당신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답하셨다(28-29절). 


그러자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던 무리들은 그래도 뭔가 표적(表迹-sign)이라도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옛적의 모세 시대에 광야 생활에서 자기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 같은 것이라도 보여 달라라고 요청했다(30-31절). 그러자 예수께서 명확히 설명하셨다. 그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고, 하늘 아버지가 친히 내려주신 것이라고 밝히시면서, 그런 내 아버지는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너희에게 하늘에서 참 떡을 내려서 세상을 살리시고 있다고 선언하셨다. 그 말씀은 여전히 생명의 떡으로 오신 당신을 못 보는 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무리들은 놀랐다. 지금도 모세 시대의 만나처럼, 그 하나님이 주신 하늘 생명 양식이 자기들에게 공급되고 있다는 예수의 증언 때문이었다. 그래서 급히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비로소 오직 하나님만이 드러내실 수 있는 자기계시(自己啓示)를 하셨다. 곧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3. 서신서 / 고전11:23-26 /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본문은 예수께서 죄인들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 죽으심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베푸신 최후의 만찬사를 사도 바울이 전한 내용이다. 세상의 모든 성도에게 영생에 이르도록 먹는 양식(식탁)이 무엇인지를 들려주신 내용이다. 이 십자가를 통한 공여된 음식물은 내 육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내 영혼을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신비한 하늘 밥상이다. 예수의 식탁에 오른 핵심 메뉴인 예수의 살과 피는, 나와 온 세상을 먹이시고 살리시려고 주신 신령한 만나였다. 


끝으로 우리 모두 기억하자. 이 생명의 만나는 그 옛날 모세 시대에 만의 것이 아니다. 또 예수의 몸으로 형성된 것만도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과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매일의 양식으로 공급해 주신 일용할 양식 모두가 바로 오늘 우리가 받는 만나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식탁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양식이 되게 하기 위한 믿음의 고백을 올리는 일이다. 우리가 취하는 매일의 양식이 성찬이 되기 위함이다. 생명의 만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o 성찬은 단순한 예전이 아니다. 천국 입성의 훈련 무대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꼭 다짐하자. 

- 첫째는 이 모든 일용할 양식들은 모두 우리의 생명을 위해 창조주께서 쉬지 않고 공급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추수한 농부들에게도 감사하자. 둘째는 절대 먹거리에 탐욕이나 과욕이 개입하면 안 된다. 가난하고 배고픈 주변의 이웃들을 위한 배려의 몫도 반드시 펼쳐져야 한다. 음식은 꾸준히 나눔으로서 평화와 상생의 매체가 되어야 하지, 불만을 촉발하는 전쟁의 촉매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디 믿음과 사랑의 성찬의 참여자와 시행자가 되어, 하늘 영생을 상속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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