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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4)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총회 제109회 개최주간

관리자 2024-09-18 (수) 07:38 3개월전 213  

본문) 대하 1:7-12, 마7:1-12, 살전5:12-28 


오늘은 창조절 넷째 주일이다. 때아닌 무더위 추석도 보내면서 가을의 단맛을 느끼게 한다. 창조주께서 주신 계절의 질서마저 뒤틀린 세태가 된 일이어서, 심히 우려가 크다. 전문가 대부분은 이 지구촌의 뒤틀린 기상이변(異變)이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무분별한 탐욕과 착취 활동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진단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의 깊은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가 문제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집권자의 환경 의식부터가 가장 최악이 아닌가-! 


이사야서를 보면 놀라운 증언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盲人)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을 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라(사56:10절). 이는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기 직전의 남 유다왕국의 위정자들과 제사장과 같은 지도자들의 태만과 무기력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나라의 멸망이 그들의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신랄하게 지적한 말씀이다. 


농경사회나 목축업이 성행하는 곳에서의 개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그들이 양과 소의 목축들의 움직임을 감시 감독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들이 못 짖는 일은 목축 농사의 패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감시견(監視犬)은 잘 짖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감시견은 누구일까? 정의와 공의로운 사회를 견인하여야 할 언론(言論)과 종교인들(교회)이다. 검사와 경찰과 감사기관들도 그 대상들이다. 그런 대상들이 기능이 마비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별력을 갖춘 지도자와 교회들이 필요하다. 이런 시기에 마침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제109차 총회를 부안 변산반도에서 개최한다. 총회는 주제를 ‘교회여, 다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노래하자’로 정했다. 매우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주제로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한국교회가 깨어 일어나, 사회정의와 환경보호와 생명 살리기 등을 위한 감시견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만 할 때이기 때문이다. 게을러진 우리를 깨우며 말이다. 


오늘 말씀은 마침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의 왕으로서의 본문을 감당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으로, 지혜(知慧)와 지식(知識)을 구하여 받게 된 내용이다. 곧 수 많은 백성을 제대로 돌보기 위하여 왕인 자기는 지혜와 지식이 최우선 필요하다고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쁨을 얻어내면서 심지어는 그가 구하지 아니한 것들까지도 더불어 받게 된 것이다. 지혜와 지식은 무엇인가? 삶의 분별력을 행사하기에 가장 필요한 요인들이다. 


복음서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잘못이나 허물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일삼고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그런 분별력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진 허물에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못하는 사람은 아예 남의 말을 삼가는 것이 더 좋다. 아울러 주님은 기도를 통하여 오는 좋은 것들에 눈이 뜨기를 권하신다. 동시에 황금률(黃金律)을 통하여, 이웃과의 바람직한 관계도 일깨워 주신다. 


서신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에게 필요한 영적 분별력에 대하여서 집중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일깨워 전하신다. 교역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고(12-13절), 이웃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며(14-15절), 자신에게는 어떤 냉철한 대처를 하고 지내야 하는 지도 세세히 일깨워 준다(16-22절). 그래서 주님 오실 때까지 흠 없게 자신을 보전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사도는 뜨겁게 일깨운다. 잘 배우고 익혀서 분별력 갖춘 우리가 되도록 하자. 


1. 구약 / 대하1:7-12 / “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裁判)하리이까 ”


본문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王)이 기브온 산당에 나아가 여호와의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서 1,000마리 희생 번제를 드린 후에(대하1:1-6 참조), 여호와께서 꿈(dream)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왕상3:7 참조) 그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 일이다. 성경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종종 꿈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곤 했다(창28:12-15, 41:25, 단2장, 마1:20, 2:12, 삼상28:6 참조). 


여기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求)하라’라는 놀라운 제안을 받았다(7절). 그러자 솔로몬은 자신은 ‘아버지 다윗의 본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지만, 아직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이 수많은 백성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기에 힘이 겨우니, 이제는 종에게 하나님의 듣는 마음인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백성의 선악을 제대로 분별(分別)하여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구했다.(대하1:10, 왕상3:7-9. 신6:4 참조). 


곧 솔로몬은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음으로써만 자신이 맡은 왕의 다스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거기에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그러자 그의 이 구함은 여호와의 마음에 꼭 들었다. 여호와의 마음을 심히 기쁘시게 했다. 그래서 그 즉시 그의 구한 것들인 지혜와 지식을 주심과 동시에, 그가 구하지 아니한 것들이면서 동시에 왕으로서 필요한 부귀와 재물과 영광까지도 여호와께서 알아서 보너스로 안겨 주셨다(11-12절, 마6:33 참조). 그 바람에 솔로몬은 왕으로서 전무후무한 수준의 탁월한 위상을 누리는 역사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솔로몬이 보여준 모습은 그 후, 초대교회 안에서까지도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에 크게 필요한 요건의 하나로 이어지기도 했다. 곧 초대교회에서 내부의 갈등 문제가 발생해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집사들을 선택할 때, 그 핵심 요건이 바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행6:3참조). 


그렇다. 교회의 일꾼들은 반드시 성령 충만을 물론이지만, 지혜도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 관계를 원활히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엔 결코 다툼이나 분열이나 갈등은 곧 해소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그룹도 마찬가지이다. 지혜자가 있는 가정이나 집단은 항상 평화가 있다. 나라의 지도자도 당연히 지혜자여야만 한다. 분열과 갈등만 조장하는 인물은 나라나 집단의 지도자로서는 절대 합당하지 못하다. 


지식이나 기능이나 능력은 부족해도 괜찮다. 물질아나 경험의 부족도 괜찮다. 서로 보충하고 보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자가 없으면 그곳은 항상 위험하고 불안하다. 지혜라는 최상(最上)의 분별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어느 순간에서도 그때그때 하나님께 부족한 지혜를 채워주시도록 간구하여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지혜의 보고(寶庫)를 품은 황금률(黃金律)이 포함되어 있는 예수의 복음서를 보아야 한다. 


2. 복음서 / 마7:1-12 /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본문은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갖고 이웃과 동료를 상대하여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 내용이다. 앞부분(1-6절)은 이웃을 향한 태도에 대한 지침이고, 뒷부분(7-11절)은 자신에 대한 관리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절(13절)은 모두의 종합된 규율인 황금률이다. 


1)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교회 공동체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특히 그 일에 개입하기에 앞에서 자기 자신부터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는지를 설정하는 일이다. 자기 형편과 과오는 보지 못한 채, 이웃의 행위에 대하여서만 시시비비(是是非非)하는 행태는 아주 어리석고 매우 분별력이 없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2) 사실 주님은 이웃의 과오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원천적으로 금하신 것은 아니다. 서로를 위하여 견제하고 주의를 환기하는 일은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에 개입하려면,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는 그런 문제에 자신은 무관한가를 성찰해야 한다. 자칫하면 내가 가하는 비판으로 내 자신도 금세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1-2절). 


그러기에, 지혜로운 자는 문제를 통하여 먼저 자신부터 성찰하면서, 상대의 티를 빼내려 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있는 돌보부터 빼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를 외식하는 자의 함정(陷穽)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난 후 상대의 처지와 형편까지 고려하면서 그 문제와 해답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피아(彼我) 모두에게 큰 도움과 유익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곧 분별력 있는 도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5절).


3) 주님은 자신을 성찰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신다. 그게 바로 진리요 생명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 곧 기도하고 간구하는 일이다(7-11절). 마치 솔로몬의 구함과 같이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우고자 매달리는 일을 하며 사는 일이다. 기도는 분명 구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으로 채우나? 하늘의 것, 신령한 것, 온전한 것, 지혜로운 것으로 채우는 일이다. 주님은 기도로 받게 될 것을 이렇게 한마디로 말씀하셨다. ‘좋은 것(good gifts)’을 받을 것이다(11절). 


4) 끝으로 주님은 이른 바 황금률(黃金律)이라 부르신 교훈을 덧붙여 주셨다. 본래 있었던 소극적 의미의 계명인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의 계명으로서의 황금률을 주신 것이다.- 곧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절). 이웃을 향한 친절과 호의는 언제나 주도적으로 행사하라는 뜻을 가진 능동적인 계명을 주셨다. 


3. 서신서 / 살전5:12-28 / “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勸誡)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


본문은 교회의 사도인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성도들에게서 필요한 영적 분별력이 무엇인지를 소개한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보다 유의(有意)할 영역들이 무엇인지를 세세히 거론한 것들이어서, 우리가 깨어 있는 믿음 생활을 하기에 큰 도움이 될 내용들이다. 


1) 먼저는 성도들이 목회자(牧會者)와의 좋은 관계를 맺고 믿음 생활을 하는 일이다(12-13절). 여기에서 ‘너희 가운데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바로 목양(牧養)을 전업으로 삼고 있는 목회자를 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성도들의 믿음 생활은 전적으로 그를 지도하는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목회자와의 좋은 관계가 신뢰와 기도 중에서 유지되도록 함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아부나 맹종을 권하는 일이 절대 아니다. 그 자신을 위함이다. 이 부분의 바울의 세세한 권고는 꼭 경청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우선 ‘목회자를 알라’고 한다.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도들을 위해 전력을 다하여 기도하고 양육하는 목자임을 알라고 한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서의 중보하는 사역자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와 그의 사역을 귀(貴)히 여기며, 그의 사역이 성도들의 따뜻한 기도와 사랑 속에서 든든히 지속되도록 협력하여야 한다. 그게 아주 지혜로운 일이다. 


2) 성도들은 동료 성도들에 대한 성숙한 윤리(倫理)의식도 가져야 한다(14-15절). 특히 믿음의 약한 자들에 대한 마음가짐이 선하고 따뜻해야 한다. 게으른 자에게는 권계를, 심약한 자에겐 격려를, 나약한 자에겐 붙들어 줌을,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는 오래 참음을 견지해야 한다. 모두가 자기와 같지 않음을 알고, 그 차이에 맞는 성숙한 대응을 인내 속에서 유지해야 한다. 서로에서 선의(善意), 선사(善思), 선행(善行)을 좇아 행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그러면 자신(self)을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 널뛰기 식의 행태는 절대 금물이다. 일관성 있고, 꾸준한 행동으로 자기가 자신을 신뢰할 만한 존재로 세우는 행동들이 다져져야 한다.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항상 기뻐하는 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 매사에 감사하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 아울러 내 안에 오신 성령의 소멸을 막고, 예언을 멸시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서 좋은 것을 취하며,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단호히 버리는 일을 반드시 실천하는 일들이 진정 자신을 반석 위에 세운 분별력을 갖춘 신앙인의 모습이 된다(16-22절 참조). 


4) 무엇보다도 바울은 우리 인간 몸의 통합적 실존(實存)인, 온 영(whole 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전되기를 축복했다, 그래서 그분의 우리를 향한 부르심의 선한 목표가 우리에게서 온전히 이루게 하라고 지시한다.(23-24절, 고전1:8참조). 


5) 끝으로 서로를 위한 기도의 교류를 요구한다(25-26절). ‘거룩한 입맞춤’이란 의미를 부여하며, 기도를 통한 소통과 응원하는 삶을 권했다. 기도는 분명 힘이다. 생명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의 매우 중요한 표지이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시는가? 


o 우리는 세 본문에서 분별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들었다.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의 분별력, 교회와 성도와 이웃들 사이에서의 분별력은 우리의 생명이며 가치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얻게 될 지혜와 지식은 이 모든 분별력의 실체이다. 이것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된다. 지금 이 혼란한 세상엔 바로 이 영적 탁월한 분별력을 갖춘 이들의 등장이 시급하다. 이 말씀을 듣고 응답할 여러분이 그 주역이 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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