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8:4~13, 사29:13-24, 막1:21-28
오늘은 강림 후 열 번째 주일이다. 장맛비와 무더위의 기승에 삶이 무척 버겁다. 이런 중에 종종 처처에서 일어나는 도로 유실과 건물 등의 붕괴와 그로 인한 숱한 인명피해 소식 등이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요즈음의 상황을 보면, 전국 그 어디도 진정한 피난처는 없는 듯싶다. 숲속의 정원 같은 아름다운 집들, 해변의 그림 같은 휴양소들, 도시에 자리 잡은 우람한 아파트 숲들 --, 그 어디도 요즈음의 변태적 기후 환경의 공습 앞에서는 속수무책임을 깨닫게 한다. 사막에 폭우가 내리고, 열대지역에 추위가 몰려오며, 예상치 못한 대(大)화재들이 세계 처처에서 발생하는 데-, 그 누가 ‘나는 안전하다’ 외칠 수 있겠는가!
이런 중에서 오늘 우리는 성령이 지시하는 새로운 안전과 승리의 현장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는 실로 무너지고 망가진 판을 한순간에 뒤엎어 놓게 하는 놀라운 하늘의 역사로 인해 맛볼 수 있는 일들이다. 예컨대 우리들도 종종 스포츠 경기장에서 어느 특정인의 역할을 통하여 매우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특정인 때문에 그곳의 전체 분위기가 판이 바꾸어 지거나 흐름이 뒤집히는 일들이다. 그 바람에 대역전이 발생하거나 신바람 난 경기가 형성된다.
그렇다면 신앙 세계는 어떤 곳일까? 한마디로, 삶의 판을 바꾸어 놓은 곳이 아닐까! 그곳도 절망의 현장을 희망의 장소로, 어둠의 장소를 빛의 무대로, 슬픔과 탄식을 기쁨과 환희가 터져 나오는 곳으로, 죽음의 장소가 생명이 약동하는 변혁의 무대로, 막혔던 곳이 형통하는 곳으로, 무엇을 해도 안 되는 곳이 어떻게 해도 다 잘 되는 곳으로 그 내용과 질이 대전환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 바로 신앙의 역사가 약동하는 곳이 아니냐 말이다.
이런 대변혁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만으로는 안된다. 단단한 각오만으로도 안 된다. 뜨거운 결단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그 어떠한 의지(意志)만으로도 안된다. 그러면 끝내 인간의 노력이나 수단과 방법만으로는 안 되는가? 그렇다! 안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방법과 해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을 해도 반드시 승리를 이루시는 승리 메이커(Victory-Maker)를 만나서 그를 배우고 그 삶을 익히며 그의 방식을 따라 가면 그때부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늘 세 분문 말씀은 바로 그 해답자를 확실히 제시한다. 누군가? 바로 삼위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본문의 내용들을 보면, 망가진 삶을 살던 인간들이 바로 그 자비와 긍휼의 주되신 삼위 하나님을 뵙고 그 은혜를 입게 되면서, 그때부터 그가 주변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주역으로 일하게 되었음을 상세히 소개한다. 그렇다. 패배한 인생에는 그 안에 패배를 안겨 준 세력이 있다. 하지만 승리한 인생에는 그 안에 승리를 안겨 줄 스승이 있다. 마음을 열고 눈을 뜨자. 진정으로 내가 변화된 큰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삼위는 꼭 모시자.
이런 패배를 극복하고 형통과 승리를 누리게 될 세상의 도래(到來)를 예고한 이는 바로 선지자 이사야였다. 그는 여호와를 믿는다는 당시 유대교도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매우 심각히 지적하면서(13-14절), 그런 잘못된 영성 때문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여호와를 향한 통절한 회개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안겨 줄 미래의대변혁의 축복을 받으라고 외쳤다(15-16절). 그러면서 심판의 그날이 오면, 성부께서 어떠한 생명의 세상을 열어주실 것인지를 상세히 예고하였다(17-24참조).
복음서는 그 이사야가 예고한 메시아가 안겨 줄 승리의 모습이 어떻게 세상에서 실현되고 성취되었는지를 상세히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성자 예수를 통하여, 귀머거리, 맹인, 미천한 자와 가난한 자들에게는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 대신 강포한 자, 오만한 자,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위선자들은 끊어내시는 심판을 하시는 대변혁의 모습이온 세상에 시작될 것임을 알린다.
서신서인 사도행전의 내용은 어떤가? 성부와 성자의 거룩한 능력의 영인 성령을 충만히 받은 초대교회의 집사 빌립이 어떻게 이방의 땅인 사마리아에까지 들어가서, 그 어둠의 땅의 노예로 살고 있었던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 많은 중풍병자들, 걷지 못하고 살아온 장애인들을 치유하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을 안겨주게 되었는지를 전한 곳이다. 거짓 세력도 복종하게 하고, 숱한 사람이 세례받아 그를 따르는 등의 상상을 넘어서는 승리의 개가를 불렀던 일을 알린다.
어디 그뿐인가? 또 다른 숱한 빌립들의 승리의 활동에 의하여, 오늘의 우리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고 있잖은가!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승리와 기쁨의 삶을 누리도록 힘을 주시는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을 진심으로 우리 안에 모시며 동행하고 사는 일이다. 이제 세 본문 내용을 살피면서, 애매모호한 신앙의 껍질을 벗고, 빌립이 입었던 복음과 성령의 옷을 함께 입고 사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판을 바꾸는 존재가 된다.
1. 예언서 / 사 29:13-24 / “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향한 이중적(二重的)인 태도를 보이는 유대와 이스라엘을 매우 슬퍼하신다. 당신을 향한 그들의 예배 행위가 여전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상당히 당신에게서 떠나 있음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행위의 결과는 결국 그들 나라들의 패망과도 직결될 것이어서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특히 그들은 이미 바벨론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부의 애굽과의 비밀스런 동맹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에게는 전혀 묻지 않고 비밀스럽게 추진하던 패역한 일이어서(15절), 그들의 절대 주권을 가지신 여호와의 엄중한 진노를 불러오는 일이었다. 여호와를 무능하고 바로로 취급하는 배신의 행위였다. 그들의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을 한없이 얕잡아보는 행위였다(16절). 그러기에 여호와를 크게 분노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그 바람에 여호와는 그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단행하셨지만, 그러나 여기에서는 전혀 다른 시대에(18절-그 날에), 당신이 계획하신 전혀 다른 차원의 큰 변혁의 때를 예고하신다. 그 시대는 언제일까? 단순히 바벨론 포로기 이후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당신이 보내실 메시아로 인해 실현될 때로 보인다. 그럼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열리게 되고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때(카이로스)이다.
그때에는 이사야 시대에서처럼 하나님을 속이려 들고, 사람에게는 송사로 죄를 씌우는 강포하며, 사람을 올무로 잡는 오만한 자들과, 죄악의 기회를 엿보는 기회주의자 같은 자들은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고 역사의 뒤쪽으로 밀려나게 하신다(20-21절).
반면에 차라리 시대 뒤편에 밀려 살아오던 그늘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역사의 면전(面前)에 등장하게 된다. 곧 귀먹어리가 듣게 되고, 맹인이 보게 되며, 미천한 자들이 기뻐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즐거워하는 삶의 현장에 등장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선보이게 되는 그런 파격적인 방식을 통하여, 전혀 새 세상을 열게 하신 것을 말씀하셨다(18-20절 참조).
그래서 결국엔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자신을 구속하신 여호와를 기뻐하고 찬양하며,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창백해지지도 아니한다.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22-23절). 마음이 헷갈려서 일시로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은 깨우침을 받게 된다(24절). 실로 놀랍고 새로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세상의 도래가 예고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놀라운 세상의 성취는 바로 복음서의 예수의 선교에서 드러난다.
2. 복음서 / 막 1:21-28 / “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
연약한 이들을 앞세워 새 시대를 열기 시작한 이는 역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는 이날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그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권위 있는 내용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다. 기존의 서기관(학자)들과는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22절). 게다가 더 놀라운 일은 회당에 숨어 있었던 더러운 귀신(鬼神)이 예수 앞에서 자신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소리치며 따지듯 항의한 모습이다.
그가 소리친 내용은 당시의 그 누구도 예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절). 사람들이 모르는 예수를 귀신이 먼저 알아보고, 그에 대한 증언을 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내용상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1) 나사렛 예수, 그는 이 세상 권세를 장악하면서 모든 정상을 비정상으로 뒤틀어 놓고 있는, 그래서 기득권을 주인처럼 누리고 있는 허세(虛勢)의 신인 귀신들을 멸하기 위하여 오신 이시다(24절, 상). 무엇으로 귀신을 멸하실까? 바로 진리(眞理)의 힘이다. 거짓과 불의를 분별하여 쫓아내는 거룩의 힘이다.
그러기에 위선과 기득권 속에서 자기가 진짜 그곳의 주인인 양 위세를 떨치던 그곳 가버나움 회당을 장악하고 있던 귀신이, 진짜인 예수가 오셔서 진리와 본질과 참을 전파하시면서 말씀을 전파하자, 너무 마음이 불편해져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두렵고 무서워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분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자기를 쫓아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었다(23-24절 참조). 이런 귀신의 모습이 오늘의 한국교회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지나 않은지-, 정말 두렵다!
2) 우리는 여기에서 마귀와 귀신이란 악령의 지배를 벗어날 피난처를 찾게 된다. 그게 누군가? 바로 나사렛 예수,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안겨 주면서, 그를 좇은 모든 이들의 구원자가 되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피난처요 구원자이시다는 점이다. 다른 길은 없다. (요3:16, 14:6, 18:37, 요일3:21-24 참조). 실재가 그러하셨기에, 예수는 그런 귀신에게 꾸짖음과 함께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Be quiet! Come out of him!‘(25절). 그 한마디에 하늘의 평화가 그곳 모두에게 임했다. 더러운 귀신이 소리 지르며 떠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곳에, 거짓과 허세에 끌려다니던 모두에게 주의 은혜와 평화가 임하신 것이다!
3, 서신서 / 행8:4-13 / “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
본문은 예수 복음의 역사가 비로소 이방 주변의 지역에까지 확신하기 시작되었음을 전한다. 그것도 제자들이 아닌 성령 받은 초대교회 집사 중의 일원인 빌립에 의하여 예수의 그 놀라운 새 시대 새 나라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한 일이었다. 그것도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기피(忌避)했고 혐오하던 족속인 사마리아인들을 향해서였다. 이는 물론 당시 초대교회가 예수께서 주신 최후의 유훈(遺訓)을 좇아 순종해서 일어난 일이었다(행1:8 참조). 진정 이사야 예언의 성취가 일어난 현장이기도 했다.
1)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그리스도인들, 특히 유대 디아스포라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예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4절). 그런 중에 집사 빌립은 그 문제의 땅인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다(5절).
2) 그의 복음 전파는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을 힘입어 다양한 표적들이 발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어 그가 전한 말을 따르기까지 했다. 예수에게서만 드러났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간 일이 그곳에서도 일어났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지체 장애인들이 찾아와 낫게 되는 표적들이 잇달았다. 그 바람에 그 성(省)은 온통 기쁨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6-8절). 그라운드의 판과 흐름이 완전히 빌립 쪽으로 바뀐 것이다.
3) 더욱 놀라운 일은 복음서의 가버나움 회당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일이 이곳 사마리아 성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시몬이란 큰 마술사가 오랫동안 이 성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 칭함을 받을 정도로, 그의 마술의 힘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가 빌립 집사를 만나게 되면서,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 빌립에게 있음을 시인하며 결국 사람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에 이르게 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9-12절 참조).
4) 사실 빌립이 무슨 힘과 능력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가 예수와 그의 말씀, 그리고 그가 보내신 보혜사 성령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그와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당신이 가지신 표적과 능력을 행하도록 힘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 나약한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판을 바꾸고 흐름을 새롭게 할 위대한 불씨가 될 수가 있었다(마28:18-20 참조).
o 우리 모두도 다 빌립 집사와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예수와 그의 복음,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이 없는 우리는 세상과 주변을 향하여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진정한 진리, 참 것 되신 예수, 거룩한 보혜사 성령과 그 말씀에 우리가 신실한 믿음으로 붙들려 있으면, 우리는 진정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판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 깨어 예수와 진리의 말씀과 그의 성령에 전적으로 의지하자. 주님은 그런 우리를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