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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여신도회주일

관리자 2024-01-17 (수) 07:56 9개월전 715  

본문) 요 2:1~11, 왕하 4:1-7, 요일 5:1-12


주현절 셋째 주일이다. 때는 어제(1.20)가 대한(大寒)으로 소한(小寒)과 입춘(立春) 사이에서, 년 중 가장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기에 부디 건강에 유의하셔서, 곧 다가올 따뜻한 봄맞이를 잘하시기를 축원한다. 지금은 개인적 건강의 복은 꼭 받아두셔야 할 때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를 에워싼 외부의 심상치 않은 환경들이 점차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급변하는 기후와 환경 재앙의 징후들이 범상치 않다. 꼭 인류 종말의 징후처럼 세계 처처에서 폭발하고 있다. 전쟁의 소문도 멀리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한반도 남북 사이의 전쟁에 대한 우려들이 최근엔 굴뚝의 연기처럼 나라 안팎에서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경제적 상황들도 급속도로 악화하였다.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자들로 보이는 자들이 나라를 경영해 오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국력과 역량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때, 총선거가 다가온다. 그러기에 희망의 기회가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위기가 진정 기회가 되려면,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우리가 되살아나려면, 우리 국민부터가 먼저 깨어나야 한다. 얄팍한 위정자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고, 거짓과 참을 분별하여 내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깨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해야 한다. 이때 매우 염려스러운 대상은 언론이 제 기능을 상실하여 검사 정권의 눈치 속에 정론을 펴지 못하는 일이다. 거기에다 우경화와 이념상의 보수적인 경향이 커진 교회들도 무척 우려스럽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더욱 그립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천박한 선택을 용서하시고, 다시금 이 나라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하나님과 온 세계에 보여 줄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런 때 우리 총회는 여신도회 주일을 맞이한다. 본 총회의 여러 신도회 중에서 가장 먼저 핵심 신도회인 여신도회 주일을 맞게 된 것이다. 사실상 한국교회를 살려 온 신도회인 여신도회가 더욱 하늘의 힘과 지혜를 받아야 할 때이다. 


마침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우리 여신도 회원들의 신앙 점검과 거기에 필요한 영성을 보완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될 내용들이다. 세 본문 전체로 보면, 우리를 살리는 믿음이 어디 누구에게서 얻게 될 것인지를 밝혀준다. 그러면서 그 믿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과 함께, 그의 말씀에 순복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린다. 아울러 이런 주를 향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명백한 증거(證據)들도 갖게 되는 데, 그 내용에 대하여서도 말씀해 준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관련된 복음의 소식이 왜 지금에도 더욱 필요한가? 그것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만이 우리의 주어진 삶의 현장의 문제들과 내용들을 일거에 뒤바꾸어 놓으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판을 뒤집어 놓을 권세도 있으시고, 우리의 부족도 순식간에 채워주실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그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드러내실 때는, 당신 혼자만의 보여주기식 쇼나 과시가 아니라, 그가 요구하시는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밑받침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1. 복음서 / 요 2:1-11 / “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본문은 복음서 저자인 요한이 예수가 어떤 분이시며 또 그가 이 세상에 무엇을 가져오셨는지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낸 곳이다.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혼례식에 참석하신 모습을 전하는데, 이 혼례식은 이스라엘의 미래적인 구원의 때를 전하려는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호2:16-25, 사62:2-5 참조). 아울러 예수는 그런 구원의 때를 앞당겨 맛보게 하시는 메시아임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포도주는 역시 종말적인 기쁨과 삶의 풍요를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욜3:18, 암9:13, 창49:10-12 참조). 그런 포도주가 잔치 중에 바닥이 나고, 또 그것을 예수께서 더 좋은 내용의 포도주를 만들어 제공하셔서, 그곳의 문제를 해결하신 일은 불완전한 종말을 진정한 종말로 완성해 주실 이는 오직 예수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또한 그런 놀라운 때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서, 그의 말씀에 대한 복종하는 행위라는 점을 밝혀주었다. 


1) 혼례식이 거행된 가나 마을은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져 있다(1절). 아마도 친족으로도 보이는 혼인집에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초대를 받으셨던 것이다(2절). 


2) 그런데 아주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가장 흥(興)을 돋아줄 포도주가 떨어진 일은 잔칫집으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간 계속되는 혼인 잔치에 손님이 예상보다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의 위급성을 안 어머니가 곧바로 아들 예수를 찾아,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을 알렸다. 그런 모습은 아들 예수에게는 그 문제를 풀어줄 해답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매우 놀라운 행보였다. 


3) 그러자 예수의 반응은 어땠나? 예상외로 차가 왔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time)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며 그 기대를 외면한 반응을 보였다(3-4절). 실로 판이 깨진 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그런 말에 전혀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즉시 그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찾아서, 이런 당부를 한 것이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 


4) 그러면 어머니는 아들의 그 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그때를, ‘십자가의 고난 겪으실 그때’로만 이해하면 답이 안 나온다. 그 대신 어머니의 행보를 보면, 그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다고 보인다. 곧 ‘예수가 이곳에서 무슨 지시를 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그 뜻과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지시대로 따르지 못할 터(형편)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5)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하인들이 예수로부터 무슨 말씀을 듣든지 따지지 말고, 말씀 그대로만 하도록 준비시키면 되었다. 결국 순종에 준비된 마음을 가진 하인들을 보신 예수께서 자신의 때가 왔음을 아시고, 명령하셨다. ‘6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6-7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 그 결과는 어땠나? 지금까지 그 어떠한 기존의 포도주보다도 훨씬 탁월한 맛을 가진 포도주가 나타나 혼인집을 즐겁고 풍성하게 하였다. ’왜 이렇게 좋은 포도주가 이제야 나오느냐‘라며 신랑이 푸념을 들을 정도로 최상의 포도주였다(9-10절). 


6) 19세기 옥스퍼드 대학교의 종교학과 시험장에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기적에 대하여 논하라‘는 논제의 주관식 시험과목이 출제되었다. 모두가 모범 답안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유독 한 수험생만이 마감 시간이 되도록 창문만 보고 한 자도 쓰지 않은 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험감독이 몇 차례 재촉했고 마감 시간이 임박한 순간에야 비로소 그는 시험지 빈칸에 한 문장만 쓰고 나갔다. 그 문장은 만점 답안으로 평가되어,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는 3대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글이었다. -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2. 구약 / 왕하 4:1-7 / “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


복음서의 상황과도 유사하면서도 위기는 한층 절박한 내용이다.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중 한 명이 사망하면서, 남은 가족이 빚더미 위에 앉게 되면서 자칫 어린 자식들 둘이 채권자에게 끌려가 그의 종들이 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 해결은 아이의 엄마가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 선지자에게 호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선지자 엘리사는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해결 방법은 매우 기이하고 낯선 일로서, 모든 것이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지자가 요구한 지시에 순복하며 행동에 들어가자, 그의 집에 있는 ’기름 한 그릇‘이 복(福)의 통로(通路)가 되면서 마치 오병이어의 경우처럼 무한 확대 재생산되는 기적의 방식을 통하여(요 6장 참조), 그 궁지에 몰렸던 모자(母子)가 모든 삶의 질곡에서 깨끗하게 해방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1) 대체로 영적 생활에 전념하며 지내는 선지자의 제자들의 삶은 가난했고, 그러기에 남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지냈다(42절, 5:22 참조), 그런 중에 과부 된 여인과 그의 미성년 아이들의 처지는 더욱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채권자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를 최고 6년까지 종으로 부릴 수 있었다(출21:22 참조). 


2) 본문은 엘리야에게 있었던 놀라운 하늘의 전권이 엘리사에게도 있음을 보여준다(왕상17:10-16참조). 엘리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녀의 집에 있는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아지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는 나중에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숱한 민중을 먹이신 바로 그 방식이기도 했다(마6:41-42참조). 그러면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2-6절). 여기에서 더욱 주목할 부분은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선물은 받을 준비된 그릇(분량)만큼 주신다는 점이다(6절). 


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의 빈곤과 시련에도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언제나 도우실 준비도 하고 계시는 분임을 깨닫고, 복음서의 마리아가 예수께 고한 것처럼 고하고, 본문의 아이 엄마처럼 선지자(하나님)에게 고하는 일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무슨 명령을 듣든지 그대로 순종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 후의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내용이다(롬1:17참조). 


3. 서신서 / 요일 5:1-12 / “ 무릇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勝利)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


본문은 교회의 사도인 요한이 앞에서 소개한 두 경우의 사례를 신앙적으로 정리하여 입증해 주신 내용이다. 곧 세상에 대하여 승리한 자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였다는 것이다. 지난 첫 주일에 확인된 세상에 대하여 승리한 예수, 곧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 되신 예수, 그를 믿고 의지한 사람들과 그의 가르침을 좇아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세상에 대하여 승리한 자들이었음을 선언한 내용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과 그의 지시대로 순종하여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현장에서 체험한 하인들이 믿음으로 승리한 자였고, 선지자 엘리사의 지시에 순종하여 동네의 빈 그릇을 빌리고, 그 그릇에 자신이 가진 한 방울 기름을 믿고 부어서 새롭게 채워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던 순종의 행위자들인 엄마와 아이들이 승리자였음을 말한 것이다. 


1) 본 말씀의 핵심은 믿음과 사랑은 서로 뗄 수 없는 절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3:23 참조). 곧 우리의 세상을 이기는 믿음(4절)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에서 나오는데(1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되어 오신 일로서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셨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서로 사랑하는 일의 원천이 되었다. 곧 형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응답이 된 것이다(1-3절 참조).


2)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계명을 실천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까닭은 이 계명이 받은 바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것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 아들을 향한 믿음이 유지되고, 그 사랑을 좇아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무엇도 개입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 내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즉 세상의 그 어떤 분열과 파괴적 공세에서도 요동 없이 사랑하며 살게 된다(3-4절). 


3) 여기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오셨고, 성령을 힘입어 물과 피를 십자가에서 쏟아내심을 통하여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시는 일로 인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해 주셨음을 강조한다(5-8절). 이런 증언의 배경은 당시 그리스도는 목숨을 바침이 아니라 다만 본래적 본질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받게 하였다고 주장한 이단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假現說)을 단호히 거부하려 함이었다. 그런 주장은 예수 안에서 진리로 역사한 성령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부정하고, 형제 사랑을 위한 헌신과 희생도 아예 발붙일 곳도 없게 만들었기에, 더욱 단호히 통박한 것이다. 


4) 우리는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분명히 믿어야만 한다(9절). 다른 곳에서 믿음을 찾으면 거짓 이단(異端)들에 빠지고 진리에서 벗어날 뿐이다. 아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는 풍성한 증거들이 잇따른다. 앞에서의 세상적 육체적 부족함을 공급받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얻어낼 증거들은 많다. 결정적 증거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성령이 내주하셔서, 내가 형제 사랑을 하게된 일이며, 영생 신앙이 있음을 보여주는 생명을 나타낸다는 점이다(9-12절 참조). 


o 우리에게는 너무도 부족한 것들이 많다. 세상은 우리를 그런 점에서 계속 위축되어 살게 한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들은 그것을 이겨낼 출구를 분명히 제시한다. 곧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힘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힘을 행사하면서 사는 우리가 되는 일이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꾸준한 믿음의 기도가 쉼 없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빈곤하고 피곤한 삶을 감사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바꾼 변화 주도자로 살 것이다. 이 점에서 여신도회원들이 보다 마리아처럼, 아이 엄마처럼 신앙의 힘을 행사하여, 섬기는 현장의 색깔을 물이 아닌 포도주처럼 변화시켜 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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