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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3-2) - " 00하라는 것은 00하라는 뜻입니다. " / 전완기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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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13-2) - " 00하라는 것은 00하라는 뜻입니다. " / 전완기 목사

관리자 2020-08-28 (금) 09:14 3년전 1011  

본문) 행 6:8~10, 단 6:1~23, 마 10:16~23


할렐루야!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주일이며 이번 주일 성령강림후 열세째주일을 통해 그동안 성령께서 일하시는 절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다음 주일 부터는 창조절 첫째주일로서 성부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절기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목회하며 또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가운데 목사의 직분이 성도의 직분이 부끄럽고 염치없기는 요즘 같은 경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상황은 앞으로 더욱 우리를 어려운 환경으로 이끌고 갈 것을 예상해볼 때 마음이 무겁고 무척 힘이듭니다. 두렵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모습이 우리를 더욱 두렵고 어렵게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지를 묵상하고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서신서 (행 6:8~10)

오늘 서신서의 말씀 내용은 스데반이 죽음 앞에 섰을 때 되어진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6장 마지막인데 7장에 가서 스데반은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이러한 죽음을 눈앞에 둔 스데반을 평가하는 말이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8절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나타난 많은 일을 보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부분이 평신도 사역의 특수성입니다. 평신도들이 큰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집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수 은사적 사건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특별히 나타나는 두 집사님이 있습니다. ‘스데반’과 ‘빌립’입니다. 이 스데반 집사는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혈통은 유대인인데 헬라 문화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지금 본국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최초의 초대교회 집사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은 최초가 두 가지인데요. 그것은 최초의 집사가 되었고,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피 흘리며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영적 헌신이 됩니다. 이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쓰셔야 되는 일로서 스데반은 기독교에서 순교 당했다고 하는 그 많은 순교자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함으로 기독교 순교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본국에 돌아갈 때 빌립이 그를 만나서 길가에서 집사님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줌으로 에디오피아 선교에 기초를 놓게 되는 이 사람의 사도적 사역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오늘 8절 말씀에 나타나고 있는 스데반의 객관적 모습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스데반에게 나타난 권능이 도대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은혜’에 대한 개념은 “주님으로부터 내게 주어지는 값없이 받은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권능’이라고 말할 때는 “받은 은혜가 바깥으로 표현되는 눈에 볼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은혜가 충만하다는 말을 물량적으로 표현하면 마치 그릇에다 물을 부어서 그 물이 넘쳐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상태 이것이 “은혜가 충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충만한 은혜가 권능으로 나타나니까 기사와 표적,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에 스데반 집사가 이렇게 큰 인물로 부각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스데반은 본래 평신도 사역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집사입니다. 구제 활동을 위해서 교인들의 추천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은 집사님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사도들이 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보다도 앞서 순교자가 됨으로 사도들이 그 집사님을 보고 담대함을 얻어서 더욱 전도 사역에 충실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사도행전에 아주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실 때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 권능이 스데반에게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직전에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변명이나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고 죽을 수밖에 없는 진리를 담대히 말하고 있는 권능이 스데반에게서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 복음서 (마 10:16~23)

복음서인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파송하는 마태복음 9장 35절-12장 50절의 서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태복음 10장은 제자들의 선교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자의 사명은 예수의 사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자에게는 스승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당위성이 운명처럼 주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들의 선교는 예수님께서 감당한 선교의 재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제자들을 파송함으로써 그의 선교를 확장하고자 하였습니다.(5절) 제자들의 선교 대상(5-6절), 전파하는 메시지(7절), 선교를 위한 권능(8절), 그리고 받게 될 박해(24-25절)까지도 예수님의 그것과 판박입니다. 특별히 10장은 선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와 그 대처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처럼 공회에 넘겨지고 관리들에게 끌려가 죽음에까지 넘겨질 것입니다. 또한 가까운 가족들의 배신(21절), 사람들로부터의 미움(22절), 그리고 계속되는 피신(23절)을 겪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교를 축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만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질 뿐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리 같은 반대자들에게 대항하려면 사자 정도의 힘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작 제자들에게는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이 요구되었습니다.


지혜롭다는 말(φρόνιμοι)은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내적인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또 순결하다는 말(ἀκέραιοι)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당시 근동 문화권에서 뱀은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었고 이집트 유물 가운데 왕의 왕관에도 뱀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왕에게도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 것은 광야나 사막과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는 타고난 능력 때문일 것입니다.


창세기의 타락 설화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존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광야의 예수를 유혹하는 존재도 뱀이었습니다. 아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유혹하는 데는 남다른 영리함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비둘기는 순결한 동물이었습니다. 부정하지 않은 정한 동물이었기에 구약시대 제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은 당시 유행하던 속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극한의 박해에 직면할 제자들에게는 극도의 지혜와 순결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구약 (단 6:1~23)

구약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니엘의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누구보다 유능하였고, 청렴결백하여 왕으로부터 사랑받는 이방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의지와 뜻과는 무관하게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천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니엘을 질시하는 사람들로부터 난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했던 사람들은 다니엘이 매일 습관처럼 행하던 하루 3번의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음모를 꾸미었습니다.


결국 전후 사정을 잘 모르고 있던 왕은 이를 허락하였고, 임금님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넣어 넣는 법을, 결코 고치지 못하는 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다니엘의 모습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10절을 봤더니 “다니엘은 왕이 금령 문서에 도장은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어떤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맞게 될 고난에 대하는 다니엘의 자세입니다. 자신이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없고, 기도를 드리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치도 않게 똑같이 기도를 드렸으며, 특별히 성경에서는 ‘감사’ 까지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은 결국 사자 굴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2절에 봤더니 다니엘은 왕에게 사자굴에서 “나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져 위험에 처하게 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해왔던 기도와 감사 뿐 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기도와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감사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의지와 뜻과는 무관하게 겪게 되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왕으로 부터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왕으로부터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전해지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세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를 담임하는 전광훈씨와 그의 추종자들로 인하여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작되었고 3단계를 검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비대면 예배를 권유받고 이것이 교회를 피박하는 것으로 여기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특별히 이번 한 주간 문재인대통령께서 공유한 안중덕목사의 글을 통해 저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받은 은혜의 내용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코로나 감염시대가 전해주는 메시지>


1.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막말과 거짓말을 하지 말며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입을 다물면 사랑스러운 것들이 시선에 머물고 아름다운 소리와 세미한 속삭임이 들려올 것입니다.


2. 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닦으라’는 뜻입니다.


악한 행실과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성결하라는 말입니다. 안과 밖이 깨끗하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거울을 닦으면 자신이 보이고, 마음의 창을 닦으면 이웃도 보일 것입니다.


3.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끼리 모여서 살면서 서로 다투고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공기와 물과 자연의 생태계를 돌보며 조화롭게 살라는 말입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마음이 넉넉하여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4. 대면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위안을 얻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예배당에 가지 말고 천지에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어디서나 고요하게 하나님을 대면하면 그의 나라와 그의 뜻에 가까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5. 집합을 하지 말라는 것은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라’는 뜻입니다.


모여서 선동하거나 힘자랑하지 말고 사람이 그리운 이들의 벗이 되라는 말입니다.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무거운 짐을 홀로 진 이들과 나누어진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포근해질 것입니다.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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