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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4-2) - " 속된 우상을 거룩한 제물로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07-06 (토) 11:11 15일전 74  

본문) 출 32:1-4, 딤전 6:6-19, 눅 16:1-13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지 삼일 째 되는 날을 초실절(레23:9-14/ 첫 이삭 드리는 날)로 지켰고 그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맥추절(칠칠절)로 지켰습니다(레23:15-21,출34:22). 한국교회의 맥추감사절은 시기적으로 구약의 맥추절(칠칠절)이나 신약의 성령강림절(오순절) 보다는 우리의 보리추수 때와 비슷한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한 시절의 맥추절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큰 감사의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궁핍한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보리농사마저 거의 사라져버린 지금은 맥추감사절의 의미가 ‘지난 반년 동안의 감사’로 협소해지고 말았습니다. 두 번의 감사절 중의 절반의 감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일 년에 두 번의 감사절을 지키면서 여름 맥추감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영적, 신앙적 은혜를 다시 회복하는 부흥의 절기로 지키고 늦가을 추수감사는 일 년 동안 우리의 삶에 필요한 건강이나 물질, 자녀나 산업 등에 부어주신 풍성한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는 것은 조금은 궁색해진 ‘맥추감사절’의 의미를 바로 세우고자 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맥추감사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눈에 보이는 신, 보이지 않는 말씀(출32:1-4)

 

오늘 구약본문(출32:1-4)이 속한 출32-34장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성막과 제사장 제도에 관한 계시(출24-34장)와 그 계시대로 실행하는 내용(출35장) 사이에 삽입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인도한 모세가 40일 동안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한 큰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불기둥, 구름기둥으로의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위해 시내산에 올라 40주야를 지내는 동안 산 밑의 백성들은 아론에게 그들을 인도할 신(神)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40일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절) 이들은 함께 “모여” 아론에게 몰려왔고 아론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나”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강요합니다. 거절하면 큰 일 날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른 신’을 만들어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신 여호와를 이제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아론이 부녀자들의 금귀고리를 가져오게 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주자 백성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4절)” 다른 신을 섬기겠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송아지형상(풍요와 다산의 신/ Apis)으로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 나름 여호와를 더 잘 섬기겠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면을 값비싼 것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합니다. 여인들의 겉치장을 위해 만든 것이 금귀고리요(출32:2) 그 금귀고리를 빼서 만든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신뢰하는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하나님의 형상을 자꾸 만듭니다. 많은 돈을 들여 큰 건물을 짓고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눈에 띄는 큰일을 벌입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우리의 욕망을 모아 신의 형상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지금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계시하시고 명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의 ‘계명’이었습니다. 사랑하며 살고 섬기며 살고 바르게 살고 거룩하게 살고 오직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으로 돈의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만 사람을 동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우러나서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건물도 필요하지만 건물을 지어서 건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힘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처럼 내면으로부터 퍼져나가는 나라입니다. 다만 주의 말씀을 따라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과의 치열한 싸움(딤전6:6-19)

 

돈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모든 힘과 능력의 원천입니다. 돈으로 명예도 사고 권력도 삽니다. 못사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가지려고 합니다. 돈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돈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대적일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능치 못함이 없는 신을 섬깁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게 하는 신을 예배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일에는 관심 없습니다. 아무리 써도 끝없이 주시는 신을 숭배합니다. 그들의 신은 배입니다.(엡3:19) 

 

바울은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10절)고 경고하며 돈을 사랑하면 돈에 사로잡혀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고 경고합니다. 돈은 빈부의 차를 심화시킵니다. 물물교환으로 살았던 원시사회에서는 개인의 부는 곧 공동체의 부와 직결되었습니다. 함께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산업사회가 되면서 개인의 부를 무한 축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독차지하고 절대다수의 빈곤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돈이 세상을 갈라놓고 돈이 서로 갈등하게 하고 돈이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돈은 모든 유형, 무형의 가치를 상품화합니다. 지식도, 아름다움도, 미술품도 돈으로 삽니다. 지금은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사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돈이 중요합니다. 돈은 인간을 비인간화시킵니다. 돈을 위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돈을 주고 고용한 노동력에 불과합니다. 돈은 인간을 다스립니다. 돈이 있으면 출세합니다. 대접받고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돈 있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돈을 만들었으나 이제 돈은 신이 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과 싸우지 않으면 돈을 섬기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6:11-12) 돈과 싸워 돈을 이겨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이것이 돈과의 첫 전쟁입니다.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15-16절)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우리의 최우선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우리의 최상의 가치가 될 때, 세상의 신을 이깁니다. 또한 모든 소망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17절) 눈앞에 있는 무너질 세상을 보면 넘어집니다. 영원한 소망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을 선하게 다스리고 사용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18절)” 

 

속된 것을 거룩한 제물로(눅16:1-13)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을 어떻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돈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돈과 싸워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이제는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잘 사용할 줄 알아야합니다.

 

주인이 맡겨준 재물을 낭비하는 악한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는 순간 그의 삶이 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불의했습니다. 기름 50말을 빌려주고 100말(1,000 데나리온)로, 밀80석을 빌려주고 100석(2,500 데나리온)으로 계약서를 써서 합법적으로 착복했습니다. 오직 돈 욕심에 사람들을 쥐어짰습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주인에게 해고통보를 받은 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과 대면하여 셈하기 전까지 그에게 남아있는 권한을 이용하여 그의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빚진 자들을 불러 본래 주인의 것을 빌려준 원금만큼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습니다. 기름100말을 50말로, 밀 100석은 80석으로 탕감해 준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축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권한을 사용한 했습니다. 주인 앞에서 회계하는 순간 끝나는 청지기 권한을 잘 사용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의의 제물(9절)”이란 뜻은 곧 사라질 제물이란 뜻입니다. 모든 제물은 “불의의 제물”, 곧 없어질 것입니다. 건강도 없어지고 결국 우리 생명을 다하는 날, 단 한 푼의 돈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맡겨주신 분이 그 분의 뜻대로 사용했는지를 셈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돈과 재물을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 아래 두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돈의 주권을 하나님 통치 아래 두는 일입니다. 또한 “불의의 제물”을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돕는 일에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훗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에게 무관심한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 무관심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선교사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가 남긴 미국 개척시대의 일화가 있습니다. 이른바 1849년 Gold Rush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1852년에 쓴 글입니다. "1852년 어느 날 나는 오마하를 떠나 서부 태평양 연안을 향해 달리는 두 무리의 포장마차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따라 여러 날은 함께 달리다가 마침내 두 갈래 길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무리는 마차의 포장에 'God Seekers'라고 표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마차 포장에 'Gold Seekers'라고 표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황금 노다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자는 서부를 개척하여 오늘의 미국 문명을 건설하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후자는 황금을 얻기는 했으나 금광이 폐광 된 이후 그들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미 대륙에 도착한 이 Puritans는 어떤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었고, 세상의 직업을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천직으로 여겼으며, 무엇보다 성실하고 근검절약하여 돈을 모으고 그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열심히 일해 소중히 모은 재물로 먼저 학교를 세우고 자선사업에 힘썼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 대부분은 청교도들이 세운 학교들입니다. 청교도 운동의 요람이었던 영국의 캠브리지(Cambridge),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스위스의 제네바(Geneva), 미국의 하버드(Harvard), 예일(Yale), 프린스턴(Princeton), 이런 대학들은 오늘날 세계대학랭킹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대학들입니다. 청교도들은 자신이 힘들여 모은 모든 재산을 잘 관리하여 좋은 일에 쓸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본을 축적하여 숨겨놓고 놀고먹을 권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신 적이 없다고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복된 마음, 복된 정신입니다. 그 믿음위에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2019년 맥추절입니다. 우리는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오 인도자요 구원자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돈으로,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돈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재화를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이 믿음, 이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맥추감사절 신앙입니다. 이 거룩한 신앙의 터전위에 하나님은 가을의 추수감사절을 풍성하게 맞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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