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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1-3) - " 창문 " / 송종근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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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절(1-3) - " 창문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18-05-19 (토) 09:08 5년전 4858  

본문) 행2:1-13,  신5:1-21,  요14:15-31

 

   성령강림절입니다. 사실 성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비주의, 환상, 기적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일반적으로 다가오는, 아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 비현실적이며,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하면 가장 먼저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통해 허락되는 은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뜨거운 찬양과 기도만을 중시하는 열광주의가 마치 성령의 역사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세 본문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보혜사 성령의 의미는 매우 의미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 개의 본문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오류를 바로잡고, 진정한 성령의 의미와 역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말씀은 신약의 말씀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예수께서 장차 오시게 될 보혜사 성령에 대해 가르치시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죽음 이후의 일, 부활 이후 이 땅에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며 우리를 돌봐주실 보혜사 성령의 존재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죠.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시면서 내건 전제입니다. 요한복음 14:15절 말씀은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바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는 것으로 보아 이 말씀은 보혜사 성령을 위한 전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의미하는 지향점이 계명이라는데 있습니다. 계명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율법에 가장 적대적인 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율법을 강조하고, 율법에 목숨 걸며 살던 바리새인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신 분이 예수님이셨으니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 율법을, 계명을 지키라 강조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돕고,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것이다 약속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예수님은 덧붙여 보혜사 성령을 통해 이루어질 역사와 은혜를 상세히 알려주심으로 제자들이 성령을 사모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시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예수님의 선언이, 가르침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고,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고 있던 성령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뜨겁게 기도하는 중에 이루어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그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놀라운 이적과 기적이라고 알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의 선언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과 같은 말씀인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이 구약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장면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하고,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셨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신명기에서, 오늘의 본문은 그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허락하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금과옥조였습니다. 이는 출애굽기 19:6절을 통하여 선언하셨던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의 실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규범으로서 십계명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얻게됨을 선언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출애굽 40년의 역사는 이 말씀이 증명된 시간이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님 주신 계명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지냈지만 그 누구하나 굶주리지 않았고, 헐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이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얻었을 때는 준엄한 심판을 피해가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40,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40년의 세월에서 늘 기준점이 되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십계명이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가장 기본적인 계명을 어겼을 때 하나님은 준엄하게 심판하셨고, 그 계명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채우시고, 보살피셨기 때문입니다.

곧 오늘 요한복음을 통한 예수님의 선언은 출애굽 역사의 자리에서 일어났던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의 역사가 장차 오실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이 땅에서 다시금 재현되리라는 귀한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혜사 성령 역사의 가장 기본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선언하신 것이죠. 때문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주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덮고,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숨어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구닥다리 취급한다면 결코 보혜사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열광주의가 성령의 역사로 둔갑되어 성도들을 현혹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를 주도한 그룹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세력들의 현실은 이파리만 무성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한다는 이들이 보이는 현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정죄요, 때로는 갈등의 원인이요, 때로는 상처의 근원이 되는 현실은 이렇듯 잘못된 성령에 대한 인식, 잘못된 말씀의 이해에서 비롯된 오류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때문에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알아야할 가장 첫째 원칙, 보혜사 성령의 임재는 말씀 가운데, 계명 가운데 바른 삶을 사는 자의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이 출발은 갈라디아서 5:22절을 통해 바울사도가 말했던 성령의 열매와 맞닿게 되는 것이죠. 계명에서 출발한 바른 신앙 위에 거룩한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 이 땅에 더욱 풍요롭고, 더욱 사랑의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사도행전의 증언은 우리에게 확신을 던져 줍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소위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증거하는 본문입니다. 사실 이 본문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잘못된 성령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죠. 표면적으로만 바라보면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장면에서 보인 모습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오늘 말씀의 배경입니다. 오늘 왜 이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는가? 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와 함께 세상 방방곡곡을 돌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 자리에 모여 그 장면을 목격했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사명도 직접 받아든 이들이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들이라는 점입니다. 곧 장차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든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받은 이들의 대응 무엇이겠습니까? 모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살면서 기도하기에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내용들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받은 이들이 행한 일이라는 것이 가롯 유다로 인해 공석이 된 제자의 결원을 채우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고, 세례 받고, 은혜 받은 후에는 함께 모여 공동생활하면서 서로 돕고 나누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약속 가운데 생활하면서 기도했다는 것이죠, 약속 가운데 생활하면서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예수를 통하여 완성된 십계명,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났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곧 보혜사 성령을 받는 인생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주님 주신 거룩한 약속, 그것이 십계명이든지, 다른 형태의 말씀이든지 그 약속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인 것이죠. 사람을 옭죄고 정죄하는 중심에 섰던 율법이, 보혜사 성령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가 되고, 토대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령은 더 이상 신비주의의 대명사도, 무분별한 광신자의 전유물도 아닌 경건하고, 거룩한 성도의 상징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은 이 놀라운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행한 것이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늘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큰 일이라 표현된 거룩한 하나님의 복음을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증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놀라고, 당황하며, 영접하게 되었음을 성경을 증거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죠.

오늘 우리들의 현실을 봅니다. 한국교회는 세상의 걱정을 듣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상을 위하여 중보해야 할 존재가 바뀌어 걱정을 듣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왜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주신 계명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첫 계명으로 주셨지만, 하나님 대신 물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 대신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 대신 성장주의가, 패권주의가, 신비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여 교회를 병들게 만들고, 성도들을 타락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오늘날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이는 그들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전하는 우리들의 잘못이 큼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야할 통로인 우리가 제대로 서지 못하니 세상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예수님을 부정했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의 계명을 지켜, 주님 주시는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을 얻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도록 겸손히 내 모든 것 내려 놓고 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참 많은 것 중 하나가 창문입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세상을 그 창문을 통하여 우리를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창문이 오염되어 있으면, 안에서 밖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창문으로 선택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세상은 하나님을 보고, 그리스도를 봅니다. 우리가 주의 거룩한 말씀으로 완전히 거듭난 인생이 되어, 보혜사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능력도, 지식도, 물질도 아닙니다. 그저 주님 앞에 나를 온전히 비워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도록 먼저 회개하고, 먼저 말씀으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더 이상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입으로는 주여 주여 외치지만, 속으로는 바알과 맘몬을 숭상하는 거짓 선지자와 신앙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철저히 말씀에 근거하여 바른 길을 걷고, 바른 말을 하며, 정의를 지켜가는 거룩한 성도들의 상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지켜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 귀한 약속의 주인공 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도구, 거룩한 그리스도의 창문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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