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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령강림후(13-1) - "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 " / 장효수 목사

관리자 2026-08-21 (금) 10:16 2일전 41  

본문) 다니엘 6:1-23, 사도행전 6:8-10, 마태복음 10:16-23


1. 우리 인간들에게 각기 다른 무서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또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고, 상황도 나에게 불리하며, 이제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그런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은 사자굴 앞에 서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리 가운데로 보내지는 양처럼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니엘, 스데반, 그리고 제자들입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다니엘의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직장 이야기처럼 시작됩니다. 다리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120명의 고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세 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4. 왕은 다니엘에게 나라 전체를 맡기려고 했습니다.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다니엘을 시기했습니다. “왜 저 사람이 우리보다 더 인정받는가?” “왜 왕은 다니엘만 신뢰하는가?” 사람들은 다니엘의 잘못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장부를 뒤졌을 것입니다. 업무 처리 과정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5.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이 말씀은 놀랍습니다. 다니엘은 신앙만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도 잘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공적인 일에는 부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그의 일상에서 증명되었습니다. 


6. 그래서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계략을 꾸몄습니다. 30일 동안 왕 외에는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의 도장을 받았습니다. 이제 법은 효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7. “오늘도 기도하는지 보자.”하며 사람들이 밖에서 다니엘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윗방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에는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이 있습니다. 그가 창문 앞에 섭니다. 다니엘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으면 사자굴이다.” 그때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30일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마음속으로만 기도하면 하나님도 이해하시지 않을까?” “하나님도 내가 살아남기를 원하시지 않겠는가?”


8. 그러나 성경은 아주 짧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에 하던 대로. 다니엘은 사자굴이 생겼다고 갑자기 기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자굴이 생겼다고 기도를 그만둔 사람도 아닙니다. 어제 하던 기도를 오늘도 했습니다. 환경은 달라졌지만 다니엘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큰 위기를 이기는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작은 믿음이 위기의 날 우리를 붙잡아 줍니다. 평소 기도하던 사람이 위기 속에서도 기도합니다. 


10. “전에 하던 대로.” 힘들어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십시오. 응답이 없어도 전에 하던 대로 예배하십시오. 사람들이 몰라줘도 전에 하던 대로 충성하십시오. 내 마음에 상처가 있어도 전에 하던 대로 선을 행하십시오. 그 작은 반복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 줍니다.


11. 결국 다니엘은 붙잡혔습니다. 사람들은 다리오 왕에게 찾아가 다니엘이 법을 어겼다고 고발했습니다. 왕은 뒤늦게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을 구하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이미 왕의 도장이 찍힌 법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결국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라.”


12. 어두운 굴입니다. 사자들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위에서 돌문이 닫힙니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힌 것 같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굴 안에 누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니엘은 다음 날 왕에게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굴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13. 우리는 자꾸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사자굴이 없게 해 주십시오.” 물론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때로 사자굴 자체를 없애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에도 있다.”


14. 병원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업의 실패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가족의 아픔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교회의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외롭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먼저 와 계십니다. 신앙은 사자굴이 없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자굴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15. 하나님은 언제나 사자의 입만 막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6장의 스데반을 만나게 됩니다. 스데반도 다니엘처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6. 스데반에게도 사자굴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사자굴에는 실제 사자들이 있었지만, 스데반의 사자굴에는 분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스데반을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17.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다니엘은 살아서 사자굴에서 나왔습니다. 스데반은 결국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스데반에게는 함께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18. 다니엘에게는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막아 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스데반에게는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하늘을 바라보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구원하셔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19. 어떤 때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어떤 때는 문제를 견딜 힘을 주십니다. 어떤 때는 닫힌 문을 열어 주십니다. 어떤 때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십니다. 어떤 때는 병을 고쳐 주십니다. 어떤 때는 병 가운데에서도 평안을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가?”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20.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매우 현실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전하면 모두가 박수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길 것이고, 매질할 것이며,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고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1. 그런데 중요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그리고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순간 성령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스데반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자 사람들이 능히 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목소리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상대를 논쟁에서 꺾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말하는 데 있습니다.


23. 예수님은 이리 가운데로 보내지는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지혜와 순결입니다. 지혜만 있고 순결이 없으면 교활해집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사람을 이용하고, 상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순결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선한 뜻은 있지만 쉽게 상처받고 불필요한 위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둘 다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24. 지혜롭게 판단하십시오. 그러나 악한 방법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십시오. 그러나 진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그러나 잘못을 옳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진실을 말하십시오. 그러나 미움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 사회에 이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25.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적으로 만듭니다. 정치적인 생각이 다르면 미워합니다. 세대가 다르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분명하게 말하되 모욕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의를 말하되 증오하지 않아야 합니다. 진리를 지키되 사랑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리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입니다.


26.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사자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자굴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이 사자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자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부 갈등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에서의 억울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만의 사자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7. 그때 우리는 사자만 바라보기 쉽습니다. 문제만 봅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자굴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라.” 사자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작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하나님이 크시다는 것입니다.


28. 스데반에게 지혜를 주신 성령이 우리에게도 함께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문제보다 주님을 크게 보게 하옵소서.” “사자의 소리보다 주님의 음성을 더 크게 듣게 하옵소서.” “사자굴이 없어지기만을 구하지 말고, 그곳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29. 성도 여러분, 두려움을 애써 부정하려 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우리의 연약함의 증거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 갇혀 있지도 마십시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다니엘처럼 기도의 창문을 여십시오. 스데반처럼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30. 이리 떼 한가운데서도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 두려움보다 크신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평강의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번 한 주간도 담대하게, 천사의 얼굴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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