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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0-3) - " 말씀으로 새롭게 " / 반승상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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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10-3) - " 말씀으로 새롭게 " / 반승상 목사

관리자 2018-07-27 (금) 15:23 5년전 5175  

분문) 사 29:13~24  행 8:4~13  막 1:21~28 -

 

   올해 우리 교단의 표어가 “종교개혁 500주년,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과연 말씀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새로운 지도력과 교회제도와 사역들이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기도 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리 오래지 못해 그 역시 옛것이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지요? 

 

   ‘말씀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시편 29편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께 예배할 것을 권면하는 시편 29편에는 “여호와의 소리”라는 주어가 반복됩니다. “(시 29: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과연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소리, 곧 그 분의 말씀은 그저 발(發)하여 허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져 버리는 허무한 소리가 아니라 만물을 복종케 하고 모든 혼돈을 제어하는 능력 있는 소리입니다. 과연 그 말씀은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많은 구약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과 주변국의 이교 신앙과의 긴장관계를 “귀의 종교 대(對) 눈의 종교”의 대결로 표현합니다. 이는 매우 적절합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근동 종교는 매우 현란했던 눈의 종교였습니다. 대규모의 성전(聖殿)들과 신상(神像)들과 제의(祭儀)들로 민중들을 현혹했던 휘황찬란(輝煌燦爛)했던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순종해야 했던 종교였습니다. 종국적으로, 현란했던 눈의 종교는 세상의 모든 현란함이 그러하듯이 차츰 그 빛을 잃고 본색이 드러나고 사라졌으나 여호와의 말씀은 오늘도 능력이 있어 온 세상을 다스리며 교회를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펼쳐 읽은 세 본문의 말씀도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말씀의 역사를 마주하게 합니다. 이사야 28~33장은 “화로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장들은 히스기야 시대에 반앗수르 정책과 결부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은 상황에 대한 예언자의 비판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심판을 예고합니다. 29장에 이르러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지혜와 총명을 거두시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게 하사 하나님의 말씀에서 끊어지게 될 것을 선언합니다.(사 29:9~16)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의 다른 면은 남은 자의 구원입니다. 오래지 아니하여!(17절) 이제는!(22절) 강포한 자가 소멸되고 오만한 자가 그치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질 것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가 기뻐하고 가난한 자가 즐거워하며 맹인이 보게 되며 혼미한 자들이 다시 총명을 되찾게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선포합니다.(사 29:17~24)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구원 역사의 시작이 이제까지 눈과 귀가 닫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책의 말을 듣는 것”(18절)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곧, 심판이 아닌 놀라운 구원 역사로의 큰 변화는 다름 아닌 “말씀의 역사”로부터 기인(基因)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초대교회 공동체가 박해를 피하여 사도를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던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박해와 순교를 당하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일이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행 1:8) 특별히 8장에서는 빌립 집사를 통해 사마리아 지역에 선교하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가기 꺼려하는 곳이었고 사마리아인들은 결코 유대인들을 환대(歡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곳 사마리아에서도 빌립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들과 걷지 못했던 사람들이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8절) 이로 인해 순교와 박해를 피해 황급히 떠나온 유대인들과 그들을 꺼려했던 사마리아인들 모두가 복음 안에서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9절) 이후 마술로 온 사마리아 사람들을 현혹하였던 시몬도 복음의 능력 앞에 복종하게 됩니다. 비록 그는 후에 돈을 주고 성령의 능력을 사려했던 불순함으로 인해 버림받게 되지만(행 8:20) 어쨌든 복음의 능력이 사마리아 온 성내를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마가는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신 후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무리를 가르치신 일을 예수님의 공생애 첫 사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21~28) 회당에 모여 든 뭇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 칭송하고(27절) 이제까지 말씀을 가르쳐 온 서기관들과는 같지 않다고 감탄하였습니다.(22절) 서기관들은 유대 사회에서 말씀에 관해서만큼은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권위를 넘어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초월적인 권위였으며 그 교훈은 이전의 가르침을 전혀 새롭게 하는 새 교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새 교훈이었던 것은 그 능력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들은 더 이상 숨지 못하고 그 정체를 드러냈으며 예수님께서 꾸짖으실 때에 귀신들이 쫓겨났던 것입니다.(23~26절)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십니다.(히 4:12) 그러므로 말씀만이 하나님의 사람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십니다.(딤후 3:16~17) 나아가 온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말씀으로 온 세상을 보존하시며 다스리십니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말씀으로 역사 속에 찾아오셔서 악을 물리치시고 정의를 이루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둠과 악을 물리치시며 오직 말씀만이 연약한 우리를 고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교회 갱신의 목소리가 커져만 가는 이때에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도 오직 말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라는 표어를 오해하여 교회가 목적이 되고 말씀이 교회를 위한 도구가 되는 목적전치(目的轉置)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청중의 요구에 맞추고 시대의 분위기에 부응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과 설교 기술들이 교회를 새롭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이 경고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쳐 입술의 신앙에 머물게 하는 일’이나(사 29:13)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거나(행 8;21) 그저 ‘서기관의 권위만을 앞세우는’ 일이(막 1:22) 있어서도 안 됩니다. 

 

   신앙의 자리에서 말씀은 도구가 아니라 늘 주어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성삼위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을 이루려고 애쓰는 교회를 말씀이신 성삼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교회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며, 예수께서 말씀으로 교회 가운데 성육신하시며, 성령께서 말씀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실 때 교회는 비로소 온전히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말씀을 이루려는 교회의 애씀이 충만하여 말씀이신 성삼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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