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목회연구원

성령강림후(9-2) - "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문홍근목사 > 성령강림절

본문 바로가기

성령강림절 HOME > 설교올리기 > 성령강림절

[첫째해] 성령강림후(9-2) - "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문홍근목사

관리자 2018-07-21 (토) 11:31 5년전 4938  

본문) 왕상 17:8-16, 6:1-7, 6:30-44


사람의 생존의 조건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먹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먹을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우리들의 생존을 위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 먹을거리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6:11)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다만 먹을 것에 집착하지 말도록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6:31)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세 본문은 모두가 먹을 것을 나누는 것에 관련된 말씀들입니다.


먼저 구약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아합 임금이 강요한 우상숭배에 대해 비판하고 하나님이 긴 가뭄을 예언하고 숨어 지낼 때 그가 시돈 지방의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 음식을 요청한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들 하나와 둘이서 살던 그 과부는 긴 가뭄 끝에 마지막 빵을 구워 먹고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요청한 빵을 구워서 먼저 엘리야에게 드림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 먹을 밀가루와 빵을 굽는데 바를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보통은 자신이 먹고 남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마지막 먹거리를 선뜻 엘리야 선지자에게 내놓은 사르밧 과부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본문의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공통으로 기록되어진 중요한 말씀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이 말씀을 보며 예수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이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동기는 단순히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굶주린 많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로마의 학정에 시달리고 먹을 것도 없이 근근하게 살아가며 희망을 갖지 못하고 밀려다니는 민중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굶주린 배를 채워주시기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마가복음 634절 말씀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동기는 바로 예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그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 온 것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도 컸겠지만 그만큼 의지할 곳이 없었다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반증도 됩니다.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해 있었고 누구도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아 주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 종일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는 이 사람들을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저들을 먹여서 보내야 하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먹을 것을 제자들이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곧 제자들이 먹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는 말씀이었다고 봅니다. 먹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먹을 것을 먹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라하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먹고 남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여기 예수님의 자기를 온전히 희생시키신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돌보지 않고 주는 사랑 곧 내 것을 챙기지 않고 주는 사랑이 바로 우리 교회공동체의 출발선입니다.

사도행전 6장의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섬겼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예루살렘 교회공동체가 모두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4:32)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쓰고 남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 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것 모두를 교회공동체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나누는 일은 저절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 항상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는 매일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히브리파 사람들에 비해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이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평이 나왔습니다. 이를 보고 열 두 사도가 모여 의논하고 구제하는 일을 전담할 일곱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고 일곱 집사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집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집사라는 말은 헬라말로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2천년 전 초대교회 공동체가 넉넉한 상태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당시 교회에 온 사람들은 그렇게 유력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여유가 잇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초대교회의 기적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모두 자신들이 쓰고 남은 것을 내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들의 쓸 것을 모두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5:34) 산술적(算術的)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열 명의 것을 모두 모아서 함께 나누었다고 해도 그것을 열 명이 나누면 그것은 그대로 부족한 상태 곧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도행전의 보도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 살림교회는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줄곧 가난한 사람들 곧 우리 지역의 약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넉넉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고 미약한 교회였지만 이웃을 섬기는 것은 교회의 본래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것들이 오지랖도 넓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쓸 것이 많았지만 우리 쓸 것을 쓰지 않고 퍼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우리가 조금도 부족하지 않고 지난 27년을 달려왔습니다. 이것이 기적 아닙니까? 사르밧 과부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초대교회의 기적을 우리는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면 남는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수도 없이 체험한 사실입니다.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은혜라고 말해야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은혜’, ‘오병이어의 은혜’, ‘초대교회의 은혜’, ‘살림교회의 은혜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27년 동안 보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어렵게 살면서 모은 돈을 사회를 위해 다 내놓으신 할머니가 돈은 다 똥이여!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뿌려주면 거름이 돼!”라는 말씀을 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많이 뿌립시다. 교회는 바로 이 일을 지속해서해야 합니다. 같이합시다. 하나님이 오늘도 사르밧 과부에게 주신 은혜, 오병이어의 은혜, 초대교회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목회연구원        ☎ TEL : 010-2434-0536       E-mail : puock@hanmail.net
COPYRIGHT © 2017 말씀목회연구원 .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