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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8-2) -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교회의 증언 " / 최부옥 목사

관리자 2018-07-14 (토) 10:20 5년전 4968  

본문) 롬13:1-7, 신8:1-29, 마22:15-22

 

그리스도인들에게 국가란 어떤 대상인가? 특히 그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자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마땅한가? 이 둘의 질문들을 답하기란 간단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대목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이스라엘에 국가가 생기고 권력 기관인 왕정(王政)이 형성된 때를 성경을 통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래 이스라엘에는 왕을 두지 않았다. 그 까닭은 자기들에게는 세상 왕이 필요치 않았고,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여정을 이끌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주(移住)하게 하신 하나님이 자신들의 친왕(親王)이시다는 확고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 역사의 흐름은 적어도 이스라엘이 사사(판관)시대를 통과하기까지 약 400여년 넘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그런 제도가 흔들리면서 인간 왕정 제도를 두게 된 때가 왔다.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의 대제사장이요 사사였던 엘리의 집권 40년이 그의 아들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백성들로부터 불신이 드높아지면서, 이웃 나라와 같은 왕정에 대한 욕구가 분출했던 것이다. 결국 사울이란 인물을 자기들의 초대 왕으로 옹립하게 되면서부터 이스라엘에서도 왕정이 시작되었다. 

 

그 때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었나? 많이 불편해 하셨다(삼상8장). 왕정의 선택은 하나님에 대한 배신행위로 보셨고, 자신들이 택한 왕정이 자신들의 삶에 끼칠 숱한 악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에서 나온 어리석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왕의 노예처럼 되고 그 일로 인하여 개인의 자유와 특권들을 상당히 포기당하거나 제재되어야 하는 어려움들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그 점을 일깨우시면서 백성들의 왕정 체제 설립의 요청을 철회하도록 원하셨으나(삼상8:10-18절참조), 완고해진 백성들은 모든 책임을 자기들이 진다는 집단적 선언도 하고 나오자, 그래서 시작된 것이 왕정이었다(삼상8:22참조). 하나님은 비록 당신이 원하신 것은 아니라 하다라도, 백성들의 총의로 받아 결국 세상의 국가와 권세를 끌어 앉고 가시는 길을 택하셨다. 

 

그 결과는 어땠나? 하나님의 우려가 현실이 된 역사가 펼쳐졌다. 이스라엘은 사울-다윗-솔로몬의 왕정을 거치면서, 나라가 끝내 분열을 겪게 되고, 남북의 두 왕국이 결국 잘못된 왕정(목자)으로 인해 하나하나 멸망 길에 들어서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늘과 땅의 두 왕국(王國)에 속한 백성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영원한 왕이신 하늘의 하나님과 세상 권력의 지배자인 왕의 통치를 동시에 수용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늘의 세 본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섬길 대상들인 하나님과 국가에 대한 대응할 지침들을 제공한다. 특히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이 부분에 대하여 매우 주목할 만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로마서를 다시 보자. 바울이 막강한 공권력을 가진 국가와 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응의 문제를 그의 신학적(神學的), 신앙적(信仰的) 테마로 담고 있음은 매우 주목된다. 

 

당시는 로마 황제가 인간이 아닌 신으로 군림(君臨)하던 시절이어서,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야말로, 인간을 신으로 보아야 하는 당시 세상 인식에 대한 큰 도전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언제나 상호 충돌의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었기에, 바울의 그러한 증언은 여러 모로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바울의 로마서 집필 기간이 A.D 56년(행20:1-6참조)으로 볼 때, 당시는 로마 권력과 기독교가 충돌하고 있던 시기가 아니다. 따라서 바울의 글에는 국가 권력에 대한 큰 긴장감이나 저항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교회와 국가, 그리스도인과 권력에 대한 신학과 신앙적 대응을 보다 편안하고 객관적으로 증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바울은 글 속에서는 교회 측이 국가를 상대로 하여 불필요한 일들로 마찰을 유발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원했다. 특히 하늘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구하려는 최고의 가치인 선교(宣敎)를 살려내기 위하여서도, 그리스도인은 국가가 부여한 국민의 의무들에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렇다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향해서만 말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국가와 권력층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傾聽)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롬13장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선교적 배려와 국가 권력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처신을 함께 생각하며 쓴 글이다. 한마디로, 이 본문은 백성들(그리스도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 권력자들 모두에게 전한 말씀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1-2)

 

잠시 주목하라. ‘각 사람이 복종해야할 권세들’(1절)이 누구인가? 이 권세에는 세상 권세만이 아니다. 하늘의 권세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권세를 당신의 통치 영역으로부터 독자적이고 독립적으로 해방시켜서 따로 놀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일반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권력자들로부터도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 아닌가! 권세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고, 사람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권세를 가진 자들일수록, 심판권을 가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늘 권세에 더 충실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땅에 속한 모든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이중적(二重的) 복종을 받아야 한다. 이미 앞부분에서 밝혔던 바대로,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을 인간들이 거부하면서, 스스로 선택(選擇)했던 대가(代價)이기도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세상 권세와 하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국가와 권력도 하나님의 허락과 명령에 따라 세워진 공적 영역임을 지적하였다. 교회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기관이 아니다. 국가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세워진 기관이며, 위정자들은 국가에 부여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집행하기 위해 세움 받은 청지기들일 뿐이다. 그러기에 권력의 오용이나 남용은 자신들에게 힘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의 말씀인가?

 

그런 점에서 최근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들의 국가 권력을 남용(濫用)과 사용(私用)한 숱한 일들로 인하여. 백성들로부터 탄핵(彈劾)을 당하고 적패청산의 대상이 되어, 온갖 부끄러운 심판대에 오른 수치스러운 일들은 바로 오늘 성서의 가르침대로 그들에게 부여하신 주권자인 하나님로부터 심판을 저들이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정신 차려야 한다. 민주주의와 권력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린 자들은 하나님과 국민들로부터 엄중한 심판(審判)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국가와 위정자를 어떻게 생각하며 대응할 것인지를 안내하는 가이드이다. 교회의 주(主)이신 하나님은 국가의 주(主)이시기도 하다. 그 선언에 담긴 바울의 교회와 국가는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선포하고 집행하는 데 공존과 공생할 두 축(軸)으로 본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 정치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구현되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교회는 국가를 향한 의무와 국민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면서, 동시에 국가와 권력으로 하여금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기억하게 하며, 그 힘의 오용과 남용으로 범죄 하지 않게 일깨워야 하겠다. 만일, 그런 역할을 할 교회가 국민적 의무에 소홀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소탐대실(小貪大失)에 빠질 수 있다. 

 

복음서의 내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바울이 교회와 국가에 대한 그러한 신학적 이해를 갖게 하는 데, 통찰력을 제공한 대목이라고 판단되는 곳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 측 인사들로부터 협공(挾攻)을 받으셨다. 

☞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稅金)을 받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아니한가’(17절)

☞ 대답이 ‘바치라’고 나오면 (평소 로마권력을 증오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공격을 받게 되고, ‘바치지 말라’라고 나오면 (평소 친 정권 앞잡이로 사는)헤롯당의 공격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러자 주님의 답변은, 그들의 ‘이거냐 저거냐’(either~, or~)가 아니었다. 주님은 외짝 눈의 시각(극심한 불균형의 시각)을 가진 자들에 놀아나지 않으셨다. 대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both~and)의 시각으로 그들 모두를 경고하고 일깨우셨다. 

 

애써 납세의무를 기피하고 부정시하는 바리새인에게는 조세의 의무를 시행할 것을 명하시었고, 하나님을 향한 납세 의무를 애써 외면하던 헤롯당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납세인 헌금(십일조)의 의무를 명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두 나라, 두 백성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고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정죄의 자격도 없는 처지에서, 하늘과 땅의 전권을 가지신 예수께 도전하다가 역공을 당했던 것이다. 

 

☞ 하나님의 선교(Misso Dei) 신학을 취하고 있는 우리 교단 기장 공동체의 입장은 더욱 성서적(聖書的)이어야 한다. 납세의무나 국방의무 등의 의무 감당 없이, 국가와 권력 현실을 책망하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권력이나 세상이 더럽다고 참여를 외면하는 일도 이단인 영지주의적 입장이며 악마의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되어서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당연히 참여(參與) 신학적 입장에서 대응하여야 한다. 

 

납세 문제는 단순히 내 것을 내어놓는 차원만이 아니다. 내어놓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베푸심과 살리시는 영역에 참여(參與)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향한 의무를 감당하고, 교회는 세상을 향한 의무를 서로 감당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리라!

 

신명기서는 그런 점에서 하나님 섬김의 지침을 제공한 전형적인 교과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교회와 국가 모두의 주이시다. 그러기에 그를 온전히 섬기는 일은 모든 인간의 기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고 지키며 복종해야 한다(1-10절). 매사에 여호와를 기억하며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정신 차려 살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 교만하고 물질의 신(神)인 바알 우상에 빠지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11-20절). 

 

증언을 마친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 권세에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의로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도록 협력해야 한다. 협력은 말로만 하는 것일 수 없다. 국민의 정당한 의무 참여와 수행을 통하여 해야 하고, 국가와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 받들도록 고취하는 일을 통하여 한다. 

 

그 사회에 깨어 활동하는 교회가 있는 한, 교회와 세상 모두는 다 산다. 하지만 교회가 잠자거나 책임을 외면하면, 교회와 세상 모두는 다 죽는다. 잊지 말고 실천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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