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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8-1) - "거짓은 가이사에게, 진리는 하나님께" / 이태영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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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8-1) - "거짓은 가이사에게, 진리는 하나님께" / 이태영 목사

이태영 2018-07-13 (금) 15:33 5년전 4998  

거짓은 가이사에게, 진리는 하나님께​

본문) 신명기 8:1-20, 롬 13:1-7, 마 22:15-22​

마태복음 22장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헤롯의 지지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구실을 찾는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결정적인 문제점을 찾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들을 율법의 수호자로 여겼던 바리새인들은 여러 가지를 궁리합니다. 그리고 세금의 문제를 통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도록 하는 데 의견을 모읍니다. 특히 이들은 헤롯의 추종자들과도 서로 야합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면 그 일을 빌미로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악한 마음을 숨기고 예수님께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선생님이여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당신은 참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대한 첫 평가가 참되다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은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당신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할 수도 있고 당신은 메시야입니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첫마디는 당신은 참되십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거짓으로 속이려는 이들의 혀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진리에 관한 말이라는 점은 이들의 위선을 아주 잘 보여 줍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당신은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이 말은 당신은 참되니, 그 진리로 우리를 가르쳐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매우 겸손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청하는 것 같지만, 실은 예수님을 올가미로 더 깊이 유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형태의 답을 하시든, 이들이 볼 때 그 답은 진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 답을 구실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당신은 어떠한 사람도 꺼리지 않으니,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칭송으로 들립니다. 이것 또한 속임이요 거짓입니다. 외모를 보고 자신들을 꺼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진리를 놓고 서로 대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어떠한 구실로도 예수님께서 대답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으려는 악한 의도가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의 추종자들은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서 거짓과 위선을 나타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말한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맞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거짓을 감추고 위선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선하심과 참되심을 말하고 자신들의 죄스러움을 말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참되시다.”고 할 때, 이 말이 진실이 되려면 자신들은 거짓되다는 것을 함께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신다고 할 때, 이 말이 진실이 되려면 자신들은 거짓으로 하나님의 법을 거스른다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낌이 없다고 할 때, 이 말이 진실이 되려면 자신들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낌이 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되시다는 말만 하고 자신들의 거짓을 감춤으로써 마치 자신들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자신들도 마치 진리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인 것처럼 감추었습니다. 자신들도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기에 예수님을 만나서 오직 진리만을 듣고 싶은 것처럼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의 추종자들이 지은 죄의 핵심은 예수님의 참되심을 앞세우면서 자신들의 거짓을 감춘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참되심 속에 자신들의 거짓됨을 섞음으로써 자신들도 마치 참된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악을 예수님의 선함에 섞고, 자신들의 거짓을 예수님의 참되심에 섞으려고 한 것, 이것이 이들이 행한 죄의 본질이요 핵심이었습니다. 사실, 자신들의 위선과 거짓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섞는 일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요,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놓은 다음, 이제 이들이 예수님께 준비해 온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생각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이 뜻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유대인들을 선동하려 하는 것이고,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법을 내세워 고발하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답변을 하더라도 죽음의 길로 가도록 말의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가이사에게 내는 세금에 대한 질문이지만, 그 질문이 갖는 사악함의 본질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가이사의 속됨을 섞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이사를 같은 반열에 놓고 하나님이냐, 가이사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택하면 가이사의 무리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이고, 가이사를 택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는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추종자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포함된 악의 본질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낼 때 사용되는 동전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동전에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예수님께서는 답변을 통해 이 질문이 갖는 교묘함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가이사의 속됨을 섞은 것을 다시 분명하게 분리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섞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드리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과 가이사에게 속한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거짓은 가이사의 것입니다. 영원함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가이사에게는 헛된 것만 있을 뿐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의 문제는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빠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권력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의 문제를 우리 앞에 제기합니다. 또한 우리의 근본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우리의 근본은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묻습니다.

이 문제에 해답을 얻기 위한 가장 정직한 방법은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과 세상의 세속적인 영역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근본을 얻을 수 있고, 중심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설 때, 오직 하나님 근본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올바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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