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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7-3) - " 하나님을 '위하는' 삶, 깨어 있는 삶 / 김영봉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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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7-3) - " 하나님을 '위하는' 삶, 깨어 있는 삶 / 김영봉 목사

관리자 2018-07-06 (금) 20:28 5년전 4991  

본문)  이사야 64:1-9  에베소서 1:3-14  마가복음 13:28-37

 

 

  한 무신론자인 철학교수가 강단을 떠나면서 자기 평생의 심득을 밝혔습니다. 

“나는 이유 없이 태어난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존재와 현상은 아무 궁극적 뜻 없이 그냥 있고, 그냥 변하고, 그냥 돌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학문에 매진했고 그런 진지함 때문에 독신으로까지 지냈던 사람의 결론이 이렇다면 너무나도 허망합니다.

 

  한 지성인이 평생 동안 씨름해왔던 그토록 어려웠던 질문에 성경은 너무나도 쉽게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우연’이고 또 하나는 ‘창조’입니다.  나는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존재하게 했기 때문에 나는 존재합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느니라”, “모든 것이 다 그 분에게서 비롯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로 선택을 하십니다. 목적이 분명합니다.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엡 1:4-6)입니다. 이 사실을 확고하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인치셨습니다.

 

하찮은 피조물인 인생에다 자신의 형상을 심으시고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자신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하시는 위험부담을 안으시기까지 하면서 왜 이토록 심혈을 기울이시는지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인생의 모든 의문에 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열쇠만 갖다 대 보면 풀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미 스스로 충족하신 분이지만, 아쉬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분이신데 하찮은 우리 인간을 자신과 동격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기에 존재합니다.

 

인생을 지으시고, 아들로 선택을 하시고,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 인생에게 사랑을 쏟아 붓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피조 인생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한다는 것은 다름 아닙니다. 이미 받은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마음껏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상한 목적으로 창조된 우리 삶이 단지 이 짧은 인생으로 끝나버릴까요?  현재의 지상에서 숨쉬고 있다가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우리 존재의 전부일까요?  그렇다면 인간을 창조한 것도 실패고, 선택도 실패요, 십자가의 희생으로 다시 구원한 수고도 결국 실패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껏 불태우다 재만 남는 일회성 시도가 아닙니다. 영원토록 인생을 사랑하고, 그 인생들에게 영원토록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있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죄로 물들은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새 날을 여실 것입니다. 죄가 없기에 제약이 없는 새 판을 짜실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며, 마음껏 사랑을 주고받을 새 공간을 여실 것입니다. 

 

이 결정적인 날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만 감추어져 있으며 선택받지 못한 자에게는 두려움과 멸망으로 임하지만 택함받은 사람들은 환희의 완성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는 몇몇 사람만 국지적으로 인지했다면 재림 시에는 모든 인류가 일거에 알아차릴 수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반할 것입니다. 준비하거나 되돌리거나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무화가 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징조를 눈여겨보라고 하십니다. 이미 징조는 드러났으며 때가 무르익었음을 암시합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많이 들은 말씀이고, 말뜻도 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인지 성령께서 도우셔야 될 줄 믿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준비하고 있으라’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이란 다름 아닌 ‘주인을 위하는 삶’입니다.

 

태초의 유혹은 ‘하나님을 위하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하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네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니 하나님은 지금 너를 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러니 네가 왜 하나님을 위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네가 네 자신에게 주인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네 자신이 너의 존재 이유요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타락에 빠진 인간은 이 때부터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최상이라는 몽상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깨어 있다고 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 때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늘 감동하는 삶이며 자신도 진정으로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하나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 이것이 깨어있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역사 속에서 가장 깨어있을 수 있는 민족, 가장 깨어 있어야 할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쏟아진 하나님의 사랑을 감지하고 그 사랑의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최일선에 택함받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바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 때 하나님도 반드시 자기들을 위하여 주시는 분이셨다는 것입니다(이사야 64:5). 그럼에도 자신들은 범죄에 늘 빠졌음을 자각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살았더니 하나님도 얼굴을 외면해 버리셨다고 토로합니다(이사야 64:7). 이렇게 깨어있지 못하고 미몽 속에 살았더니 결과는 바벨론 포로신세가 되어 소멸되게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또 하나 깨달은 바는 자신들의 의지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가 없는 무능한 존재라고 실토합니다(이사야 64:6).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지어진 주의 백성이니 주님의 손길이 아니면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영광을 위하여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깨어있을 수조차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완성이 아니라 덧없는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창세 전부터 사랑으로 나를 지으시고 예정하심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 은혜주시기를 구하며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영원히 함께 있게 되는 존재입니다. 주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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