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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7-2) - " 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18-07-06 (금) 18:55 5년전 4854  

본문) 사 64:1-9, 1:3-14, 13:28-37

    

2018년 한국교회 현실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교회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사회적인 관심을 모은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그 중심에 있어서 기독교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희생과 헌신의 본을 보여야할 상황에서 그 자리에 서지 못하고 편견과 아집으로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예멘 난민사태에 대한 대응도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는 말씀을 저버리고 난민들의 수용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앞장서서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주 맥추감사절 헌금 중 일부를 난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헌금으로 보냈습니다만 저들을 받아주면 우리나라가 이슬람화 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저들을 거부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이슬람국가에도 파견하는 우리 한국교회가 우리나라에 제 발로 찾아온 저들을 품지 못하고서 어떻게 선교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독일은 100만명이 넘는 난민들을 수용했습니다만 우리는 겨우 500여명 되는 난민들을 품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그렇게 허약합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그토록 염원하며 기도했던 민족의 평화 문제도 정작 남북한과 미국 등이 나서서 비핵화 선언을 하고 평화 정착 모드로 나가는 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우는 보수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목회자들과 교회의 실수들이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미 교회의 성장은 멈췄고 교회는 노화(老化)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 64장에서 선지자는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4:5-6)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지지부진하고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을 멀리하고 부도덕한 일들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예언자는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야훼 신앙도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64:7)라고 하며 탄식합니다.

어쩌면 우리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있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 데 이사야는 이 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64:8) 하고 이어서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64:9)하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듭니다. 세상에는 어디서도 희망을 보기 어렵지만 이사야는 하나님께 눈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구약에서는 흔치 않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이어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하며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힘들 때 자신들의 딱한 처지만 들여다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라고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쳐듭니다. 당당하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앞으로 돌진하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가 다 주님의 백성인데 무엇이 우리를 위축시킨단 말입니까? 아무리 우리 처지가 암울해도 하나님만 믿고 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옥중에서 에베소서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은 대단히 어렵고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도 이단자들인 영지주의자들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이 힘든 상황에서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을 일깨우며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사(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1:5) 교회를 흔드는 이단들에게 맞서서 다른 이론을 내세워 싸우지 않고 분명한 말로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셨다는 구원의 확신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않고 주 안에 있는 믿음에 분명하게 서있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믿음의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위기에 처한 우리 교회가 가져야 할 믿음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봅니다. 암울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하신 사랑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를 창세 전부터 예정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바로 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면서 우리를 흔들려고 할지라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을 확신하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이 어렵고 암울하더라도 낙심하여 자포자기 하며 흐트러지지 말고 믿음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가르치시며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고 깨어있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의 날이 다가온 것을 깨닫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흐트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 안에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언제든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가 자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하라(13:36)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격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다른 사람 누구를 탓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서 새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우리가 깨끗하게 치우며 바르게 만들어간다면 여기서부터 새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더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깁시다. 바짝 엎드려 기도하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바로 희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 교우 여러분 정신 차리고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는 아름다운 삶을 엮어갑시다.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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