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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8-2) - " 나와 함께 한 사람들 " / 허재규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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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8-2) - " 나와 함께 한 사람들 " / 허재규 목사

관리자 2023-07-22 (토) 23:57 9개월전 287  

본문) 사32:1-4, 16-18  계11:15-19,  눅22:24-30 


 

지난 주 설교 제목은 “좁은 문” 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문은? 실 끝이 들어가는 바늘 구멍이다. 흔히 바늘귀라고 한다.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면 바늘귀에 실을 꿰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문중에서 바늘귀는 가장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낙타는 바늘귀로 들어가도 부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이 만든 문 중에서 좁은 문이 있다. 대문 방문 이런 문 말고,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을 기념하는 문이다. 거창하고 크게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로마 클로세움 앞에 티두스의 개선문이 있다. 서기 61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서기70(71)년)에 승리한 티투스를 기념하는 문이다. 승리한 장군이 말 타고 들어오기에 적당한 문이다. 프랑스어로 Arc de Triumphe(개선문)은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서 만든 문이다. 승리를 기념하는 문인데, 좁은 문이다. 당시로서는 크다 할 수도 있겠지만, 승리한 장군 한 명이 말 타고 들어오기에 적당한 문이다. 


무덤 문도 큰 문은 아니다. 좁은 문이다. 예수께서 죽어서 들어가신 문이다. 또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시고 나온 문이다. 주님의 문이다. 예수께서는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애쓰셨다. 우리더러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신다. 예수께서는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셔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셨다. 우리도 이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봐야 한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시련이 있었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와 함께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예수와 함께 좁은 문으로 나온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한 사람들” 이다.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이 어찌하여 다투는가? 제자들 가운데 누구를 제일로 칠 것인가? 교회 이름도 ‘제일” 교회가 많다. 그럼 다른 교회는 그 다음이란 말인가? 복음도 순복음이 있다. 그럼 예수 복음은 순복음이 아닌가? 말이 참 그렇다. 


 


예수와 함께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 있다. 자리 다툼이다. 예수와 함께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자리다. 예수와 함께 하기 가장 힘들 사람들이 뭇 민족들의 왕이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기를 좋아한다.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하기를 즐겨한다. 예수께서 시련을 겪는 동안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다. 주님의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 주님의 문으로 나온 사람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 자리 다툼이다. 


예수가 시련을 겪는 동안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어린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가장 어린 사람은 심판하지 않는다. 심판하는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이 아니다. 재판정에서 판결하는 사람으로서 판사들이 기분 나쁠지 모르겠으나, 심판하는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이 아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나와 함께 한 사람들’ 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는 은혜를 누린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좁은 문으로 나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의 밥상에서 같이 먹고 마신다.  또한 약속을 받는다.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고 약속하신다. 그렇게 하셨다고, 정말로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겠다는 것인가? 예수의 12제자가 아니니 그럴 일이 없다고 하겠는가? 그럼 세상 살면서 세치 혀로 심판하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러나 24장로들을 보시라. “말하였습니다. …. …. 주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상 주실 때, 멸망시킬 때를 간청하고 있다.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가요? 노래 가사처럼, “좋니?”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여러분과 함께 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저렇게 당하면 좋을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고, 좁은 문으로 예수와 함께 나왔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심판할 때가 아닙니다, 멸망할 때가 아닙니다” 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상을 줄 사람에게는 상을 주십시오” 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래야 구원받을 기회가 온다. 


 


노아 홍수 때도 번개가 쳤을 것이다.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났을 것이다. 땅 속 깊은 샘물들이 터지도록 지진도 있었을 것이다. 돌덩이만한 우박도 떨어졌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기분 좋아지는가!. 에라이 네들이 잘못했으니 ‘깨소금’ 이다? 할 것인가!  ‘나’와 함께 한 사람이 저렇게 당하고 있다면 기분이 째질까! 


어떤 사람은, 노아가 하나님에게 홍수를 요청했다고 한다. 세상이 악하고 자기 말을 들어먹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님이 심판을 요청했다고 한다. 게다가 짐승들을 짝으로 방주에 데려와도 콧방귀 뀌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너무너무 화가 나서, 빨리 심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만도 아니다. “주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을 보면 그렇다. 노아가 세상을 보고 분개해서 멸망시켜 달라고 했을 수도 있다. 


판타지 드라마 이야기다. “어느 날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한 여자가 곧 죽게 된다는 진단을 받는다. 놔두면 3개월, 수술하면 1년 살 수 있단다. 이 여자는 술을 마시고 소리친다. ‘멸망시켜줘” 그래서 그녀의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멸망이 듣고 나타난다. 멸망과 여자는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은 병을 멈추게 한다. 멸망은 사람이 되어 여자와 함께 한다. 그런 해피 엔딩이다. 섬기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노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주님의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은 사람이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지 않은 사람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예수와 함께 한 사람은 세상이 악할지라도 섬기는 사람으로 접근해야 한다. 누가 제일인지 두고 다투는 사람들에게 주는 주님의 정언명령이다. 그럴 때 세상은 변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위협하고, 협박하면서 심판을 외치 것이 아니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세상이 변한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으로 나 곧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심판은 지연된다.  멸망은 지연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통치자들마다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며,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의 눈이 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요구를 듣는 통치자의 귀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경솔하지 않을 것이며, 사려 깊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이 의도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세상 통치자들이 변한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권세 부리는 자들이 아니다. 


노아 홍수 때와 다르다.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 섬기는 사람으로 살 때,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며,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며,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 세상은 누구나 제일이기를 원한다. 섬기는 사람으로 주님과 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이 구원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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