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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2-1) - " 일꾼을 보내주소서 " / 총회선교주일 / 문홍근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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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2-1) - " 일꾼을 보내주소서 " / 총회선교주일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3-06-09 (금) 09:56 1년전 929  

본문) 1:4-10, 9:1-19, 9:35-10:1

 

1) 일꾼은 없고 삯꾼만 있는 현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530일 밤 경기도 용인에 사는 70대 노인이 뒤로 후진하는 차량에 깔려 크게 다친 후 119 신고를 통해 달려온 구급차에 실려 치료해줄 병원을 찾다가 11곳의 큰 병원들이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사고 현장에서 100km 떨어진 의정부로 이송하던 중 심정지가 왔고 결국 사망했다고 하는 뉴스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만약 이런 일을 내가 당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의 응급의료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의사가 된 사람들이 이런 응급환자를 거부하여 죽게 만들었을까, 또 이런 사명감이 없는 의사들을 의사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코로나 사태 이전에 가끔 요양병원에 심방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가서 보고 놀란 것이 입원 어르신들이 약을 거의 한 주먹 움켜쥐고 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가 왜 이렇게 많은 약을 처방했느냐고 이야기했더니 요양병원은 대부분 그렇게 약을 처방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약을 많이 팔아줘야 많은 돈을 의사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만일 내가 훗날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렇게 해준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의사가 돈 때문에 쓸데없는 약을 그렇게 처방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돈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의사들만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목사나 교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삯꾼이라고 하셨습니다.(10)

 

2)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 - 복음 일꾼 바울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소명기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바울사도는 처음 기독교를 박해하는 유대교인이었습니다. 신흥종교였던 기독교를 박멸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남다른 열심을 보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북쪽 시리아 다마스커스(다메섹)에 예수교도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교도들을 잡아오도록 하는 공문을 받아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홀연히 하늘에서 비치는 빛을 받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 때 그에게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바울은 주여,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의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다메섹에 들어가서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를 만나라고 하셨고 눈이 멀어져버려 사람들에게 이끌려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 아니니아는 한밤중에 주님의 환상을 보고 바울을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께 바울이 기독교도들을 박해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또 그가 다메섹에 온 것도 바로 기독교들을 잡아 끌어가기 위해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시며 앞으로 주의 이름을 위해 바울이 당할 고난에 대한 말씀까지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사울을 만났고 그에게 안수하여 그의 눈을 다시 뜨게 했고 세례를 베풀어 기독교인이 되게 했습니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주님의 바울에 대한 소개가 의미 깊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 뒤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세계 곳곳을 다니며 헌신적으로 사역한 우리 기독교의 최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수없이 많은 고난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받으면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바울은 그저 흉내만 내는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하면서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세계 도처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주님이 택한 그릇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순교를 당해 죽기까지 하면서 사명을 완수한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현대 교회에도 바울같은 사명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섬길 택한 그릇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사명 하나를 붙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성금을 전달하고 동포들에게 복음 전하려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류하며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당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2-24)”고 하며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체포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말 그대로 바울은 사명자였습니다. 삯을 바라고 마지못해 일하는 삯꾼이 아니라 일꾼이었습니다.

 

3)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예레미야

구약 말씀 예레미야서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소명기사입니다.

예레미야는 원래 제사장의 아들로 북왕국 이스라엘 멸망한 이후 남왕국 유다만 남아 있을 때인 요시야왕 때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북왕국은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도 요시야 이후 그 아들 여호야김왕 그리고 마지막 유다왕 시드기야 때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는 나라가 망하기 직전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소년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본문 6절에 있는 것처럼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하며 사양 했습니다. 꼭 모세가 부름 받았을 때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라고 사양했던 것과 비슷한 입장이었습니다.(4:10)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향해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하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6, 7)라고 말씀하셔서 어린 나이이지만 하나님의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비록 어린 아이에 그리고 아주 나라의 상황이 어려운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많은 어려운 일이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서 사명을 다했습니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하기 직전 예루살렘의 심판을 많이 말하며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했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활동을 하며 제사장들과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며, 바벨론에 복종해야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다가 매국노로 몰려 감옥에 갇혀 죽을 뻔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로서 멸망하는 조국의 현실을 보며 슬픈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전해 눈물의 예언자’, ‘비운의 예언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예레미야처럼 소명에 충실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하나님은 지금 찾고 계십니다. 여기 눈치보고 저기 눈치보고 세상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닌 사명자가 필요합니다.

 

4) 일꾼을 보내주소서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하시면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고, 모든 약한 병자들을 고치시며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이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9:37-38)하시며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민중들의 피폐한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들 민중들의 모습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삶에 지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을 보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0장에 들어서 열 두 제자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그 가난한 백성들을 도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일꾼으로 세운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 저들은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는 일꾼입니다. 실제로 저들은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고 생명을 바쳐가며 헌신했습니다. 단 한 사람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나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 그는 은 30에 눈이 멀어 결국은 삯꾼이 되고 비참한 모습으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일꾼과 삯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일꾼은 일을 보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입니다. 삯꾼은 누구입니까? 삯꾼은 돈을 보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돈을 따라 가는 삯꾼이 되어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5) 맺음

하나님은 일꾼을 세우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꾼은 적고 삯꾼이 판을 치는 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바울 같은 가슴 뜨거운 일꾼, 예레미야 같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사명에 충실하면서도 애타는 심정으로 나라를 위해서 울 수 있는 진실한 일꾼이 필요합니다. 또 예수님이 세운 열두제자들 같은 일꾼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생명을 바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누가 일꾼입니까? 바로 여기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일꾼 곧 하나님나라의 일꾼입니다. 우리를 불러서 일꾼으로 세워주신 사실을 감사하며 가슴 벅차게 일만보고 달려가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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