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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절(1-1) - " 동지이신 성령 " / 환경주일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3-05-30 (화) 18:19 9개월전 327  

분문 - 민 11:24-29; 행 2:37-47; 눅 12:8-12



 

1. 실마리


 

+ 오늘은 성령강림후 첫째주일이며 환경주일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교우 여러분과, 우리 교회와, 나아가 우리의 선교 현장에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2. 모세의 ‘멘붕’


 

“늘 옆에 갖추어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를 ‘좌우명’이라고 합니다.1) 후한(後漢)의 학자 최원(崔瑗)이 자리(座)의 오른쪽(右)에 일생의 지침이 될 좋은 글을 '쇠붙이에 새겨 놓고(銘)' 생활의 거울로 삼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2)


교우 여러분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저는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강조하셨던대로, “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3)


민 11장을 보면, 출애굽한 사람들 가운데 섞여 살던 외국인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이스라엘 백성도 다시 우는 소리를 합니다: “아, 고기 좀 먹어봤으면.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민 11:4-6, 공동번역개정판) 보행자 60만 명(민 11:21)이 자신을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민 11:13)하고 외칠 때, 모세의 입장에서 그 백성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을까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민 11장에 보면, 모세는 “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의 크기와 이에 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주님께 호소합니다. 교우 여러분께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좌우명을 가진 저라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70 장로와 주의 영


 

모든 결정을 최고지도자 한 사람이 독점할 때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단지도력’(collective leadership)이 필요한 것입니다.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을 불러모으게 하시고, 그들에게도 모세에게 내린 그 영을 내리십니다(24-25). 즉, 70 장로가 주의 영을 받고 예언, 대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기 예언이란 표현은 앞날에 이루어질 일을 미리 말하는 그런 ‘예언’(豫言)이 아니라, ‘나바’(נָבָא)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신 말하는 ‘대언’(代言)입니다.


물론 이 본문에 나오는 70 장로들의 경우는 일회적인 예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70 장로의 명단에는 있었지만, 현장에 출석하지 않은 엘닷과 메닷이라는 두 사람조차도 영을 받고 진에서 예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모세의 보좌관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이 일을 말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은 독점적 소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세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들’(נְבִיאִ֔ים)이 되었으면 좋겠다”(29)고 꾸지람합니다.


 

4. 베드로의 설교와 3천 신도


 

행 2장에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설교에 사람들이 반응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2:38) 이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신도의 수가 그 날에 약 3천 명이나 늘어났다는 것이 누가의 증언입니다.(2:41) 그리고 이들이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소식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목도합니다.  


 

5. 지혜의 의인화


 

저는 요즘 이번 학기말 학생들에게 낼 시험문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방식으로 다음 두 문제를 내 보겠습니다. 교우님들 함께 풀어보시지요.


 


첫 번째 문제입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철부지들아, 언제까지 철없는 짓을 좋아하려느냐? 거만한 자들아, 언제까지 빈정대기를 즐기려느냐? 미련한 자들아, 언제까지 지식을 거절하려느냐?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아서거라. 보아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보여 주고, 내 말을 깨닫게 해주겠다.”(잠 1:22-23)


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① 모세, ② 다윗, ③ 솔로몬, ④ 지혜.


 

정답은 ④ 지혜입니다. 다음 문제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지혜는 이미 태어났다.” 이 말은 맞을까요? 틀릴까요?


 

이 정답은 ‘맞다’ 입니다.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주께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잠 8:22-26) 여기 나오는 ‘나’가 바로 지혜입니다. 학자들은 이처럼 지혜를 여성 인격체처럼 취급한다고 해서 ‘지혜의 의인화(the Personification of Wisdom)’라고 표현합니다.4)


 

6. ‘루아흐’


 


전통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를 신앙으로 고백해 왔습니다. 장로교 12개 신조에서는 삼위일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본체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 성자 성신(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본체는 하나이시요 권능과 영광이 동등이십니다.”5)


 

그런데 여기서 ‘영’(the Spirit, the spirit)으로 번역된 단어는 성서를 찾아보면 히브리어에서는 ‘루아흐’(ר֫וּח)6) 라는 단어입니다. 이 ‘루아흐’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처음 나오는 곳은 바로 창 1:2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개역한글판).


이 본문 가운데 2절의 ‘하나님의 영’을 영어 번역들 가운데 New American Bible은 ‘a mighty wind’라고 번역했고.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a wind from God’이라 옮겼습니다. 우리말 표준새번역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번역했고 아래를 보면 ‘하나니의 바람’ 또는 ‘강한 바람’이라고 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기운’이라고 번역하였고, 여기에 주를 달아서 ‘기운’을 ‘바람’, ‘영’, ‘혼’, ‘얼’이라고 옮길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창 6:3은 얼, 6:17은 숨이라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번역들이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보다 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즉, ‘어마어마한 바람’이 바로 창조 이전 혼돈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리적으로 삼위일체, ‘성령’을 삼위 가운데 한 위로 받아들이는 것 이전에, 이 ‘루아흐’를 하나님의 ‘기운’, ‘바람’, ‘영’, ‘혼’, ‘얼’로 계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령께서’ 또는 ‘성령님께서’라고 의인화하여 표현하는 것도 의미가 깊어질 것입니다. 나아가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얻는 이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 하나님과 이웃들, 자연과 어떻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7. ‘프뉴마’


 

이 ‘영’이란 신약성서 그리스어로는 ‘프뉴마’(πνεῦμα)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인 눅 12:10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에는 “너희가 끌려갈 때에... (중략)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 ‘성령’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로 ‘하기온 프뉴마’(ἅγιον πνεῦμα)입니다. ‘거룩한 영’이란 뜻입니다.


마 5장 산상수훈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심령’으도 번역된 단어도 그리스어 원어는 ‘프뉴마’입니다.


 


8. ‘악한 영들’


 


그런데 세상에는 가지가지 영들이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이를 복수형으로 써서 ‘깨끗하지 못한 영들을’이란 의미로 ‘프뉴마톤 아카타르톤’(πνευμάτων ἀκαθάρτων) 또는 ‘악한 영들을’이란 의미로 ‘프뉴마톤 포네론’(πνευμάτων πονηρῶ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막 5장에 보면 예수께서 거라사 지역으로 가셔서 거기에서 귀신이 씌운 사람을 해방시켜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귀신’이란 단어도 그리스어로는 ‘아카타르톤 프뉴마’(ἀκάθαρτον πνεῦμα), 즉 ‘더러운 영’입니다. 예수께서 그 이름을 묻자 그가 대답했는데 혹시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는가요? 맞습니다. 9절에 보면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스어로는 ‘레기온’(Λεγιὼν)입니다. 안병무 교수는 바로 ‘군사독재’가 그 악령의 실체라고 질타하셔서 제가 크게 깨우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악령들은 다른 사람이나 자연은 그냥 수단으로 이용해 먹으면 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자신만을 앞세우게 합니다. 우리는 물론 후세가 살아가야 할 세계를 오염시키는 핵발전, 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 그 모든 배후에도 악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부유한 사람들이나 돈많은 회사들의 구미에만 맞추어 정책을 추진하게 하는 ‘깨끗하지 못한 영’도 있습니다. 강대국에 빌붙어 편들고 민중을 배반하게 하는 것 또한 ‘악한 영’의 작용입니다. 즉 어떤 마음을 갖는가 하는 그 배후에 있는 ‘기운’, ‘바람’, ‘흐름’, ‘운동’, ‘얼’, ‘정신’을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깨끗하지 못한, 악한 영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찾는 것입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 양회동 열사가 분신, 사망했습니다. 그는 생전 건설노조를 조직폭력배 집단으로 매도하고 정당한 노조 활동까지도 불법행위로 취급하며 무리한 수사를 단행한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켜달라며 산화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로, 건설기계노동자들의 활동을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라고 규정하며 2억 7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합니다. 이에 덧붙여 경찰-검찰, 언론 등을 동원하여 파렴치범 집단으로 몰아붙인 것입니다.7) 1991년 5월 8일 김기설 열사의 분신에 이른바 유서대필사건을 조작해서 강기훈을 감옥에 가두고 병들게 했던 것이 바로 악령입니다. 5월 6일과 7일 제가 강경대대책위의 파견을 받아 5월 2일 안동대에서 분신한 김영균 열사의 가족 등을 위로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안동에서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교지편집위원들이 조사받았다는 증언을 들었습니다. 5월 5일에 이미 조선일보가 유명한 시인의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는 글을 싣지 않았습니까?8) 지금 또다시 분신의 ‘배후’를 조작하여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들이 악령의 실체입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나쁜 엄마>라는 JTBC 수목드라마가 있는데, ‘넷플릭스’9) 와 ‘티빙’10)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통해 “공감과 배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사랑. 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힙니다.11) 그런데 이 드라마에도 몇 가지 악령들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하나는 극중에 나오는 오태수로 대표되는 ‘검찰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송우벽으로 대표되는 ‘재벌권력’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는 ‘언론권력’ 등은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이따위 악령들이 극중 인물들의 자잘한 사랑과 평화, 행복을 망가뜨리는 장면들이 이 드라마 전반부에 펼쳐져 안타까움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후반부에서 이런 악령들을 극복하고 정의와 공감,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세워지는 드라마를 기대합니다.


 


9. 매듭


 


지난 5월 19일 제 후배들인 김흥겸-한지원의 딸 김봄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김흥겸은 ‘민중의 아버지’12) 란 노래를 짓고 1997년 먼저 하늘로 떠난 후배입니다.13) 예식에서 축도를 부탁받았습니다. 저는 “민중의 벗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민중의 동지이신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온갖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허약함을 고치게 하셨습니다.(마 10:1) 거룩한 영, 거룩한 얼, 거룩한 기운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의 동지이십니다.


우리의 선교 현장 곳곳에 있는 온갖 악령들을 물리치고, 거룩한 영, 성령이 가득하도록 함께 기도의 행진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결코 부귀영화로 이끄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멀고 험한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운 길입니다. 찬송가 191장은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라고 노래합니다. 이 찬송가를 부르며 함께 행진해 나갑시다. 동지이신 성령께서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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