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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6-1) - " 참된 현실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 / 이영재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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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6-1) - " 참된 현실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 / 이영재 목사

관리자 2018-06-28 (목) 21:17 5년전 4914  

본문) 습1:14~18, 벧후3:8~13, 눅17:20~37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축구팀은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잔 경기장에서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계랭킹 1위의 독일팀을 한국팀이 2:0으로 꺾고 승리한 것입니다. 언론들은 1% 가능성이 100% 희망으로 바뀌었다고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한국팀이 이길 확률은 5%도 되지 않는다고들 보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들은 독일팀이 7:0으로 한국팀을 이길 것이라고예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고 한국팀이2:0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진정한 현실이라고 여기던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세계의 진정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히틀러 체제에서 사형을 당했던 본회퍼 목사님은“오직 유일하고 참된 현실은 그리스도뿐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되뇌었습니다(『윤리』). 본회퍼 목사님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나치즘체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진짜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직 유일하고 참된 현실은 그리스도뿐이라는 고백 속에는 현재의 고통스러운 부조리를 극복하고 승리하였다는 신앙의고백이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1. 성서의 종말론

성경의 종말론에는 믿는 자들의 간절한 희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야훼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던 성도들이 혹독한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던 시대는 너무나 암울하였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해자들의 권력은 하늘을 찌르는듯 하였고, 불의한 권력은 대를 이어 영원히 지속되는 듯 보였습니다.불의와 폭력이 판을 치던 시대는 양심을 지키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사상의 운동이 당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표출된 종말론이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사회체제는 고대노예제사회였습니다. 수많은 폴리스 도시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었고 도시국가의 왕들은 서로 경쟁하며 다투었습니다. 국력이 약한 왕은 전쟁에 패배하여 더 강한 도시국가에 복속되었습니다. 이러한복속과 연맹의 과정이 계속 진행되어 마침내 도시들의 대통합이 이루어졌고 광대한 땅을 차지하는 제국들이 출현하였습니다. 이집트 제국과 아시리아제국과 바빌로니아제국과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이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졌습니다. 성서가 기록되던 시대는 이처럼 지중해 문명권에서 5대제국이 명멸해간시대였습니다. 이들 제국들은 하나같이 노예들의 노동 위에 세워진 나라들이었습니다. 도시국가들은 저마다 노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 노예들을 획득하는 전쟁에 열을 올렸던 것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도 희생이 되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성령님께서는이와 같은 혹독한 노예노동으로 건설된 5대제국의 시대에 성서를 주셨습니다. 성서는 억눌리고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고난 속에서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기록된 성령님의책입니다. 

불의한 왕국을 지탱하는 국가이데올로기는 우상숭배의 종교들이었습니다. 다신교의 종교들은 도시국가에 세워진 신전에서 만신전을 만들고 최고신을 국가수호신으로 내세웠습니다. 신들의 전쟁으로 표상된 현실의 불의한 왕들의 전쟁은 신들의 위계질서를 낳았습니다. 이 불의한 체제를 지배하기 원하여 권력투쟁의 냉혹한 역사를 현실로 알고 강하게 자라난 엘리트들이 권력집단을형성하였습니다. 시편 45편에는 두로의 공주가 등장합니다. 북왕국 왕 아합은 두로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아합은 두로 왕국과 혼인동맹을 맺었습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로 시집 와서 이러한 냉혹한 현실의 권력을이스라엘에 심었습니다(왕상16장). 도시국가의 부강을 최종목표로 세우고 강력한 왕권을 세우는 일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이러한 우상숭배의 현실성에 경도되어 온 이스라엘을 바알숭배의 늪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2. 세속주의를 극복하라는 종말 예언

시편 45편은 이러한 과거사를 거울삼아이방나라에서 시집온 왕후는 자기 모국의 우상숭배 사상과 문화와 풍습을 모두 내버리고 친정 식구들과도 인연을 끊어 버릴 것을 촉구합니다. 오로지 이스라엘을 하나님백성으로 인도하도록 말씀공부에 전념하여 거듭날 것을 시편 45편의 시인은 이방여인 왕후에게 간곡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북왕국 이스라엘의 왕후 이세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야훼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박해하였습니다. 엘리야와엘리사의 예언활동은 아합왕조의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야훼 하나님의 신앙으로 온 나라를 되돌리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망국으로 치달았습니다.  

본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사명을 띠고 출범한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주신 것도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국가들을 진멸하고 정의롭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평화의 체제를 이루라고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마침내 제국을 이루려는 인간의 꿈에 부풀게 되었습니다. 다윗-솔로몬 왕국의 주변 국가를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노예제체제를 도입하여 주변국보다 더욱 강고하게 굳혀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말씀을 저버리고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는 사명을 접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남왕국과북왕국으로 갈라선 후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도입하였습니다. 국가와 왕조의 부강만을꾀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타락한 왕실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회개를촉구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스바냐 예언자는 이러한 타락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삽시간에송두리째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야훼를 거역하는 모든 주민들에게 야훼의 분노가 불같이 임하여 그들을다 태워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야훼의 날은 노예제 체제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에게 고통의 날이요폭력으로 세운 성벽이 무너져 도시국가들이 망하는 패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자는 외쳤습니다. 이와같은 패망과 황폐의 선언이 바로 종말론의 시발점이었으며 당시 노예제 체제에서 고통을 당하던 숱한 민초들에게는 이 예언이 곧 희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참된 희망을 주신 예수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체험하고 절망에 빠져있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절망의 세상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혹독한 멸망과 패망의 종말 상황은 끝이 났습니다. 회개하고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백성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화가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온갖 고난을 견디시고 로마제국의노예제 체제에서 고통을 당하던 수많은 민중들의 고난에 연대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시대의 고난을짊어진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견디고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희망이 베드로에게 확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베드로는 이러한희망과 확신을 사람들에게 설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난 속에서 자신의 고난을 발견하고예수님의 부활 속에서 자신의 부활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 하늘이 열렸고 새땅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느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며 멸망의 날을 지나서구원의 날이 임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박해와 고난이 극심하여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날은 삽시간에다가 올 것임을 예수의 제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는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고 새로운 시간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사람이 이생에서 살고 있는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베드로는 선언했습니다. 주의 날은 도둑같이갑자기 임할 것이니 성도는 고난 중에서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사랑하여 하나님의 의를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살자고 굳세게 다짐하였습니다.

4. 참된 현실을 살자

예수께서는 살아 생전에 제자들에게 종말에 관한 알쏭달쏭한 말씀을 자주 일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늘 ‘인자’라고 부르곤 하셨는데 이는 다니엘서에서 예언한 메시야의 칭호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 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하기 이전에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은 노아 시대에 대홍수가 예기치 않게 닥쳐온 것같이 갑자기 닥칠 것입니다. 지금 고난의 시기가 길게 이어지는 듯하여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곧 끝이 날 것이라고 주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롯의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와 인근의 도시국가들이 유황불에 멸망을 당한 것처럼 지금 세상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있는 제국도 파멸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주께서 일러주셨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이 됩니다. 

불의한 세상의 종말을 보는 사람은 일상에서 얽매이기 쉬운 세간과 밭을 다 버리게 됩니다. 참된 현실은 항상 생명으로 살아가는 영생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사는 우리 성도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육과 정욕의 삶, 곧 물질취득을 목적으로 행하는 모든 삶을 내려놓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전대나 신발이나 옷 두 벌이나 지팡이도 지니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복음을 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영생을 알지 못했던 롯의 아내는 일상생활에서 누리던 물질생활에 집착하다가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돌기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언하는 일은 마치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현생에서 주어진 전통과 관습과 문명의 삶을 가짜 현실, 거짓된 현실로 인식하는 성도는 참된 현실을 깨닫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부동산을 마땅히 저버립니다. 유일하고 참된 현실은 오로지 그리스도뿐임을 깨달았던 본회퍼 목사님을 위시하여 모든 성자들도 세상이 아끼던 것들을 주님의 구원하시는 현실을 위하여 다 저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기에 “주여, 어디오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종말의 현실, 희망의 현실, 참된 현실, 그것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로마나팍스 체제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지금 어디에서 그러한 구원의 현실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주검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권력은 로마나팍스를 깨뜨리는 반역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갈릴리 언덕에 수천 구의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은 사건이 있었다고 요세푸스는 회고하였습니다. 어두운 시대가 안긴 폭력의 틈바구니에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다가 목숨을 저버린 사람들 가운데 구원의 현실이 있다고 예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곧 십자가의 현장에서 성도는 비로소 환하게 밝아오는 구원의 현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비인 종말과 희망의 신학이며 구원의 신비입니다. 참된 구원의 현실은 부활의 현실을 깨닫고 인정하고 믿는 성도에게 다가옵니다. 

 

정리하며 

러시아월드컵의 꿈으로 온 국민이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비록 16강은 좌절되었지만, 랭킹 1위인 독일팀을 이긴 쾌거로 온 국민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은 보편적인 기쁨이 아님을 우리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팀의 패배를 보는 독일인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전쟁은 인류에게 온전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이처럼 세속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한계 속에 머뭅니다. 

지금도 인류는 평화를 잃고 전쟁의 참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시리아내전, 예멘전쟁, 등으로 피난민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 예멘피난민들이 와서 난민인정을 신청하여 온 사회가 찬반양론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심한 격차로 소위 불법이민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이주하는 길에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월드컵의 승리는 참으로 기쁜 일이긴 하자만, 그 배후에 우리 죄인들이 벌이고 있는 인류의 역사는 무서운 폭력의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참된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그 현실만이 참된 현실입니다. 성령 안에서 참다운 종말의 현실을 꿰뚫어 보면서 모든 고난 받는 이들과 연대하고 함께 살아가려고 결단하는 이들이 성도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된 현실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고 그리스도를 살아가기까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흘리는 피와 희생으로 인하여 세상은 날마다 구원의 현실 속으로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죽음과 절망을 벗어나 영생과 희망의 새 하늘 새 땅으로 죄인은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존재와 삶이 바로 주님의 초대장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구원의 초대장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망과 죽음은 종말을 고하였고 이제 모든 고난 받는 자들의 네트워크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모든 십자가 고난의 중심에서 부활의 힘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의 현실로 이끌어 주십니다. 부활과 영생의 새 세계가 우리에게 파죽지세로 다가옵니다. 오늘도 구원하시는 성령의 능력 속에서 우리 교회가 힘차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가운데 모든 성도들이 각자 유일하고 참된 현실이신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쾌거가 성도의 삶에서 날마다 이어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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