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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3-1) - " 구원 " / 황인갑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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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13-1) - " 구원 " / 황인갑 목사

관리자 2021-08-20 (금) 09:19 2년전 468  

본문) 행 21:39~22:16, 사 42:14~16, 막 10:46~52

 

세 본문 모두가 다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사울과 바디매오의 구원입니다. 모든 인간은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신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약속의 책이다. 구원의 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마태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애굽의 고통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출애굽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2: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물에 빠진 이를 구하여 살려내는 의인이나 심정지를 당한 사람을 살려내는 모습을 보면서 구원을 실감합니다. 마가복음 본문은 맹인 바디매오의 눈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에게 바디매오처럼 소리 질러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소경은 눈을 뜨는 것이 복음입니다. 병든 자는 낫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육과 영의 온전한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네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는 가만히 있고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갈망이 이런 기적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인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등은 모두 구원을 갈망하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변학도에 의해 고통당한 춘향의 한을 풀어주는 내용과 가난한 흥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만든 효녀 심청이의 이야기는 한국판 구원의 서사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질병과 영적인 것에서 구원입니다. 그것은 개인 구원이고 사회구원이고 전인적인 통합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악의 세력에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시인의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매주 강단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마치 어려운 상황에서 119에 상담 전화를 하는 SOS 신호입니다.

 

저는 매주 설교를 유튜브에 올립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이 문자가 왔습니다. 어제오늘 힘들었는데 목사님 설교를 듣고 힘을 내본다고 했습니다. 설교는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 열셋째 주일을 맞이하여 성령이 임하면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임하고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구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어머니를 보내는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모두에게 죽음이란 슬픈 것이지만 이것도 믿음과 기도로 견뎌냈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갈망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139 이하는 사도바울의 다메섹 체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그의 삶의 turning point가 되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리서 누가 이르리라

 

이제 사울이 바울이 되고 그는 예수를 박해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파하는 자로 예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나의 삶에 주님이 오시면 이처럼 큰 전환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바울처럼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동학에서는 개벽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복음을 전하고 있어도 예수와 상관없는 예수와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고 따르고 닮아가고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이름만 믿는다는 것은 맹신이요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주술행위일 뿐입니다.

 

우리는 내가 구원받았으니 남도 구원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은 우리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손을 붙잡는 나의 손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의 손을 내가 붙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의 손을 거절하거나 내가 구원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병원에서 고환 절개 수술을 받아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올해 표어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고 교회를 구원하고 나를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호모데우스 시대에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학이 인간이 돈이 구원자로 대체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 구원을 기다리는 맹인 바디매오처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 질러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처럼 다메섹의 체험을 통하여 나의 삶의 변화가 바로 참다운 구원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지도자가 아닙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기후 위기와 여러 가지로 혼돈된 세상 속에서 구원의 역사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대상을 엉뚱한 데서 찾고 있다면 참 구원자이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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