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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9-2) - " 옥토에 꽃피는 하나님 나라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1-07-23 (금) 14:21 2개월전 95  

본문) 6:30-44, 왕상 17:8-16, 6:1-7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길가처럼 딱딱한 마음, 돌밭처럼 완고한 마음, 가시떨기처럼 세상의 재리와 욕심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가 그 마음에 뿌려져도 싹이 나거나 자라거나 열매 맺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새 생명의 씨앗,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섬김의 아름다운 하늘씨앗을 뿌리셨습니다. 길가 같은 마음에 뿌려지자 새들이 먹어버렸고, 돌밭 같은 마음에 뿌려지자 금방 뜨거운 햇빛에 말라 죽었으며 가시떨기에 뿌려지자 한동안 싹이 나고 잘 자랐지만 가시떨기가 더 왕성하게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성령의 보습으로 길가, 돌밭, 가시떨기를 갈아엎어 그 마음을 옥토로 만든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하늘씨앗이 뿌려지자 그 씨를 받아 싹을 내고 뿌리를 내리게 하여 점점 자라서 열매 맺게 합니다. 잡초와 독초로 우거진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예수생명의 씨를 받아들여 예수생명으로 가득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옥토 같은 마음으로 예수 생명의 씨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옥토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꽃을 피우게 됩니다. 옥토는 4가지가 다릅니다.

 

새 생명 공동체와 쉼(6:30-39) - 길가 같은 밭은 씨를 받아들이지 않아 새가 씨를 먹어버립니다. 그러나 옥토는 예수 생명의 씨를 수용하여 살려냅니다. 그래서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 다릅니다. 마가복음서 본문에는 제자란 말 대신 예수께서 특별히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도란 말이 등장(30)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파송을 받아 선교사역을 행한 후 돌아온(30)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느라 매우 분주하고 고단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곳은 예수님께 몰려온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라고 하셨고(31)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32). 그런데 그 곳에는 이미 예수 일행을 알아보고 몰려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33). 주님과 동행하는 곳에는 몰려오는 사람들로 쉴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에게는 쉴 시간이나 쉴 곳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눈물로 기도해 줄 사람은 마음에 묻어옵니다. 지상의 그 어느 곳에도, 어느 시간에도 섬겨야 할 사람, 살려야 할 사람은 우리 곁에 우리 마음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 쉬러가도 새벽이면 고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오늘의 사도들은 어떻게 쉼을 누려야 할까요? 일상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은 사도들의 진정한 쉼은 오히려 나보다 더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하는 일(39), 나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일(38), 자신에게 집중했던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나보다 더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일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을 떠나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쉬는 것입니다. 일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오히려 쉼을 얻는 것입니다.

 

새 생명 공동체와 평화(6:1-7/ 왕상17:8-16) - 돌밭은 얇은 흙 아래 돌이 있어 씨가 떨어져 싹은 내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해 햇빛에 말라죽고 맙니다. 겉은 옥토지만 그 아래 내면에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이기심이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흔들고 무너뜨립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행6:1-7을 보면 하나님의 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자기 것을 팔아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과부들을 구제하는데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주도권을 가진 유대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을 매일구제에서 제외시키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유대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차별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일을 가볍게 보지 않고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것은 먼저 사도들에게 집중된 교회에 대한 전권을 나누어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구제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주의 일을 나누어 분담하여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사역을 헬라파 교인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헬라파 출신 7집사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치유자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잘 알지요. 구제하는 일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수습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분담하여 모두 다 함께 참여하게 하고 사도들은 본질적인 한 가지 일에 전념하여 더 성숙하게 되는 기회로 삼았고 교회의 구제사역의 공정성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지독한 흉년 중에, 자신이 먹을 것도 없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려 나무를 구하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선지자는 그 가난한 여자에게 물과 떡 한 덩이를 요청했습니다. 양심적으로 안되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 여인도 백번 거절하는 것이 맞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도, 사르밧 과부도 하나님의 말씀에 함께 순종합니다. 기근이 끝날 때까지 떡이 떨어지지 않은 기적보다 더한 기적은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선지자의 것을 떼어 나눈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어려운 상황을 임시방편으로 잠시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도 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먼저 내 이기심을 버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돌밭을 갈아 엎어 옥토를 만들 때 참 평화가 임합니다.

 

새 생명 공동체와 나눔(6:37-42/ 왕상17:8-16/ 6:1-7) - 가시떨기가 있는 밭은 생명의 씨의 숨을 막아 죽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씨를 수용하는 옥토에는 나눔이 있습니다. 30, 60, 100배로 맺어 많은 사람에게 풍성하게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모여든 많은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말씀해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34) 때가 저물어 저녁이 되었습니다. 걱정이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을 촌과 마을로 보내 음식을 사먹게 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36)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돈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서 안 된다(37)고 했지만 주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찾아)보라(38)”고 하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다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사랑하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길이 있고 방법이 생깁니다.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 작지만 소중한 것을 함께 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기적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하늘 밥상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을 인도하셔서 영원한 하늘나라 잔칫상()에 앉게 하십니다(23:5). 밥상은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우리는 밥상에서 사랑을 나누어 먹습니다. 곡식을 심고 가꾼 농부의 땀에 벤 사랑, 정성을 다한 어머니의 사랑을 먹습니다. 밥상은 서로서로 섬기는 곳입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보내려고 했지만(6:35-36) 예수님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6:37) 제자들이 찾아온 것은 오병이어였지만(38) 주님은 사람들을 잔디위에 앉게 하십니다. 주님은 주방장, 제자들은 섬기는 종이 되어 풍성한 코스요리(다섯 종류의 떡, 두 종류의 생선요리)를 배설하여 향연(banquet)을 베푸신 것입니다. 밥상은 생명을 나누는 곳입니다. 우리는 밥상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밥상위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것들입니다. 생명은 자신을 위한 또 다른 생명의 희생을 먹고 삽니다. !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받음으로 생명의 성찬을 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구약본문 왕상17:8-16의 사르밧 과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물과 한 움큼의 가루, 그렇지만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선지자와 나눌 때, 사도행전 본문 행6:1-7의 초대교회도 성도들이 헌납한 재산으로 가난한 과부들을 구제할 때 놀라운 풍성함, 차고 넘치는 은혜의 기적이 나타난 것이지요!

 

새 나라와 선교(6:42-44) - 옥토는 3060100배의 결실을 내어 줍니다. 왜 그렇게 많이 내어줄까요?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 된 자들도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밭의 곡식을 다 베면 안 됩니다. 구석에 있는 것은 남겨두어야 하고 추수하다 떨어진 곡식은 까치밥처럼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놓는 몫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 12광주리가 되는 기적입니다. 먹고 남은 12광주리는 지금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그 손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남겨두신 떡입니다.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병들어 고국으로 돌아 온 이들을 위해 주님이 남겨주신 떡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먹고 남은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것입니다. 우리가 다 배불리 먹고 우리들의 손에 아직 남아있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가 빈손이 된 이들을 위해 예수께서 광야에서 남겨두신 바로 그 떡입니다. 그 떡은 바로 주님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먹는 남은 떡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보습으로 길가 같은 마음, 돌밭 같은 마음, 가시떨기 같은 마음이 갈려져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옥토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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