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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4-1) - " 화해의 길을 만드는 언어 " / 6.25민족화해주일 / 김진철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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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4-1) - " 화해의 길을 만드는 언어 " / 6.25민족화해주일 / 김진철 목사

관리자 2021-06-18 (금) 09:11 1개월전 104  

본문) 1:8~18, 3:23~29, 4:7~26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민족화해주일입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하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정략과 권력의 욕심이 숨겨진 정치적인 언사(言辭)는 결국 불신을 가져오고 갈등을 야기하고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영과 진리의 언어는 그 단단한 불신의 벽에 균열을 가져오고 화해의 불씨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1950 전쟁과 평화>(나남)의 서문에서 박명림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건대 한국인 학도의 한국전쟁 연구는 집단죽음에 대한 대속(代贖), 영혼의 안식을 위한 레퀴엠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진실한 성찰과 따뜻한 위무(慰撫)를 통해 전쟁과 폭력에 반하는 대안을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폭력에 대한 반성, 적대자와의 악수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끝없는 죽임과 시체로 인해 가위눌려 헛소리와 땀으로 범벅된 채 잠 못 이루며 집필을 중단하곤 하였다가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이 되어가고 끝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죽은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변화된 모습을 깨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비록 보잘 것 없을지라도 어둠의 시기에 빛과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생명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용서와 상생의 마음을 키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숱한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생명의 외경으로 이끌어줍니다. 수많은 아픔과 억울함을 간직한 채 흘러가는 야속한 세월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무해 주고, 그런 비극 없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길을 만드는 영과 진리의 언어를 오늘 세 본문을 통해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긍휼의 언어(룻기1:8-18)

이미경교수는 사사기의 폭력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집과 대조해서 룻기의 나오미의 집을 어머니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오미의 집에서는 모든 여성이 내 딸들이요 내 벗이 됩니다. "내 딸들아!" 그리고 세상이 유린하도록 내어 버린 딸들의 이름을 불러 줍니다. '나오미야, 오르바야, 룻아!' 인종이 달라도 선민사상을 뛰어넘는 차별 없는 여성들의 연대를 이루는 집입니다. 나오미의 집은 '다정한 말'이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그녀들은 사랑에 대한 충만한 감사를 표현하며 서로가 축복을 빕니다. 그들은 서로를 할퀴거나 투사하지 않고 도리어 '축복받아야 하는 존재''내가 책임져야 할 내 사랑'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합니다.

눈물이 회복되고 '애도성'으로 서로를 끌어안는 집입니다.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 높여 울며"(1:9) 그들은 서로 보아 주었고, 서로 보듬고 사랑합니다.

이처럼 룻기는 딸들에게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울타리 되어 주고, 아버지 집 대신 어머니 집을 제공하고 안내해 줍니다. 이것이 나오미가 남자 없는 결핍과 고통의 공간에서 한 일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잃은 세상에서 원망과 분노의 불을 지피는 대신 어머니의 사랑의 크기를 키우고 어머니 집을 하나님나라로 세우는 일에 주력합니다.

저는 나오미의 집은 긍휼의 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룻이 나오미의 곁에서 함께 하는 그 마음은 긍휼의 마음입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서 먼저 다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자비(慈悲)'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긍휼이란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을 뜻합니다. 긍휼, 자비를 뜻하는 히브리어 <렉헴 רֱחֶם>어머니의 자궁/모태/womb’을 가리킵니다. 49:15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란 말씀이 나오는데 동사 <락함 רַחַם>긍휼히 여기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궁을 가리키는 다른 명사 <베텐>이 나란히 병기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긍휼히 여기는 마음씨는 어머니의 자궁의 이미지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품는 마음은 어머니가 배 속의 아기에 대하여 품는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우리는 화해하고 하나 되는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긍휼의 언어로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영과 진리의 언어(4:7-26)

우리는 차별과 갈등의 땅 사마리아로 들어간 예수님의 행보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대립의 희생자인 사마리아 여인의 서러움과 목마름을 보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서러움과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예수님의 대화법을 배워야 합니다. 영과 진리의 가쁨으로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 땅은 로마 식민지였으며, 원래 한 민족이었는데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오랜 분단 장벽 때문에 적대감과 혐오감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접촉을 피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쓰는 그릇을 같이 사용하지 않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으며, 사마리아 여인들을 무시하고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유대에서 출발해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3일이면 갈릴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혐오했기에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되는 다른 노선으로 여행을 하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경유해 갈릴리로 갔습니다. 예수는 그곳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분열과 대립을 해소하고 영과 진리로 하나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대화를 통해서 열어줍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으로 하여금 평화의 길을 전하는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여인의 갈망을 보았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대립, 가부장적인 사회의 폐헤, 종교적인 갈등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갈망을 보았습니다. 그 갈망은 정치적, 이념적인 언어들로 해소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성령의 생수로 해소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적 물질적 종교적 언어로 적대적인 언어를 쓰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는 영과 진리의 언어로 대답을 해줍니다. 메시아의 나라와 성령의 생수를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 때문에 서로 나뉘어져서 미워하고 다투었습니다.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과 세리, 죄인들 간의 종교적 차별, 갈릴리 사람, 사마리아인, 유대인들 간의 지역감정 등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차이를 넘어서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십자가로 둘을 하나 되게 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화해자로 차이를 넘어서서 사마리아여인에게 다가가셨고 결국 사마리아여인뿐만 아니라 수가성 모든 사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세상적인 차별을 넘어 복음 안에서 화해와 일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영과 진리의 언어로 분열과 대립의 세계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을 열어 화해의 길을 가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정죄의 언어에서 믿음의 언어로(갈라디아서 3:23-29)

화해를 나가는 길은 과거를 들추어 서로의 적대감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됨을 위하여 신뢰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율법의 정죄의 언어를 새로운 하나됨을 위한 믿음으로 언어로 바꾸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과 언약의 관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 매여 있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참된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초등교사에 비유합니다. 따라서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고,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믿음이 가져온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인종적, 민족적, 신분상의 차별을 없앤 것입니다.

교회는 정죄의 언어를 버리고 믿음의 언어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모범이 되고 또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새로운 하나됨을 위한 화해의 길을 가로막는 율법의 언어를 버리고 신뢰하는 믿음의 언어를 말해야 합니다. 율법의 언어는 과거의 잘못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불신의 벽을 높이고 서로를 정죄함으로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로 가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긍휼의 언어, 영과 진리의 언어, 믿음의 언어로 속히 화해의 길이 열려지도록 기도합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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