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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2-2) - " 지구의 영생을 거두라 " / 환경주일 / 이훈삼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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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2-2) - " 지구의 영생을 거두라 " / 환경주일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1-06-03 (목) 11:41 17일전 87  

본문 : 갈 6:1~10, ( 미 7:18-20, 요 7:53-8:11 )

 

 

1. 심는 대로 거둔다.

 

1) 기독교는 인간이 선한 뜻으로 계획하고 성실하게 실천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이 계획하고 실행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의 노력을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은 아니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노력하되 늘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총을 구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개인의 삶이나 거대한 역사나 마찬가지다. 바울은 오늘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2) 인생과 역사에서 심는 대로 거둘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성실하게 열심히 심는 자세가 중요하다. 성실하지 못한 농부가 풍성한 소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농부답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한번 뿐인 인생에서 무엇을 심을 것인 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생이 여러 번이라면 한번은 이런 삶을 살아보고 또 한 번은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은 딱 한번 뿐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심되 무엇을 심을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열심히 심었는데 잘못 심었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옛날에 초등학교 다닐 때 잔디 씨를 받아오라는 숙제를 많이 냈다. 처음에는 잔디 씨와 잡초 씨를 잘 구분하지 못해서 열심히 씨를 받아서 학교로 가져갔는데 선생님이 이건 잔디 씨가 아니라 그냥 풀씨야 하면 참 맥 빠진다.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그 인생이 영원한 생명과 이어지지 못하고 허탄한 결말에 이른다면 억울하고 속상하다. 그래서 한번 뿐인 인생을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과 함께 무엇을 위해 땀 흘리고 내 시간‧건강‧ 능력‧물질을 투여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모두 자기 삶에 성실하게 심었다고 해도 결과는 썩을 것과 영원한 것으로 극단적으로 나뉜다는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만약에 내 삶의 결과가 썩어 없어질 것이라면 너무 비참하고 반대로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면 그보다 더한 은총은 없으리라.

 

 

2. 지구의 영생

 

 

1) 오늘은 한국교회가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환경주일이기에 바울의 이 말씀을 개인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에 연관 짓고자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류에게 그 관리를 맡기신 지구 생태계가 별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운영되고 있다면 굳이 환경주일을 정할 필요도 없다. 교회가 환경주일을 지키면서 환경의 중요성과 교회의 사명을 되새기는 것은 그만큼 지구 생태계가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의 사명을 ‘생명-평화-정의’라고 요약했다. 물론 이런 삶의 바탕에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범위가 넓은 분야가 생명이다. 그래서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총회(부산)는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고 정하여 생명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선언했다. 그만큼 세계교회가 볼 때, 지구촌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평화의 문제 그리고 계층 간 불평등이나 불의한 권력 문제 등도 중요하나 가장 근원적이고 시급한 과제는 지구의 위기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이러한 세계교회의 진단과 선언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지구 살리기 실천에 나서야 한다.

 

 

2) 지구가 사람과 같은 생명체는 아니지만 지구의 표면, 땅과 바다 속, 그리고 하늘까지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식물‧곤충‧동물-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삶을 영위하면서 거대한 지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인류도 이 지구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생존 관계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즉 지구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Gaia)라고 보아야 하며, 하나님이 정교하게 창조하신 지구 생명체의 부분이 붕괴되거나 파괴되면 그것은 생명 사슬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인류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오늘 바울의 말씀대로 하면 우리가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지구와 전 인류를 비롯하여 수많은 생명체들이 생명을 이어갈 수도 있고 아니면 모두가 썩어져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지만, 지구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가는 인간들과 인간이 만든 거대한 산업 시스템은 이 현실을 처절하게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위험을 감지하고 이제 탄소배출을 규제하는 움직임에 탄력을 내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사실 시간이 많이 늦었고 위험은 가속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망하지 괜찮다는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때 대 재앙이 닥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가?

 

정말 시간이 별로 없다. 지구가 위험하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많이 너무 오랫동안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씨앗을 심어왔다. 지구의 파멸에는 국가도 계층도 성별도 없다. 물론 부분적으로 또 차별이 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공동의 운명에 처해있다. 그러니 누구라 할 것 없이 지금이라도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지구 생명체의 지속가능성(영생)을 위해 하나씩 심어야 한다. 이것이 성령 받은 사람의 삶이며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가 사는 방식이다.

 

 

 3.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1)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에게는 예로부터 말을 타던 전통이 남아 있어서 차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애마라고 부르고 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남자의 가슴에도 상처가 난다. 목회자는 늘 교인들을 태우고 심방이나 행사에 참여해야 하니 이제까지 나는 주로 승합차를 탔다.

 

운전한 지 30년이 되지만 운전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우선 피곤하고 장거리 운전은 졸리고, 교통 체증에 겁나서 서울 갈 때는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다행이 우리나라 수도권의 대중교통 체제는 정말 잘 되어 있고, 성남에서 서울 교통도 매우 편리해서 특별한 경우 아니면 버스나 전철을 애용한다. 또 한 가지 내가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매연 발생 때문이다. 여럿이 타고 갈 때야 부담이 덜 하지만 혼자 타고 다닐 때는 나 하나 편하자고 경유차에서 매연을 마구 뿜으며 다니는 것 생각하면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였다.

 

지난 5년 동안 우리교회는 카니발을 렌트하여 총 6만km 정도 탔으니 정말 적게 탄 것이다. 사실 카니발은 국민차로 불릴 정도로 좋은 차고 또 우리가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탔기에 계약 기간 끝나면 인수할까도 생각했지만 새 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당회서 여러 가지 논의하고 고심하다가 현대 수소전기차 넥소로 결정하고 지금 두 달 째 타고 있다. 이제 내연기관차는 결별하고 친환경차로 바꾸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지만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중에서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장기간 연구하고 논의한 끝에 수소전기차를 렌트했다. 최근의 결정 중 가장 잘한 것이라 생각한다.

 

전기차는 외부 전기로 차 안의 건전지를 충전하고 수소전기차는 차 안의 수소 탱크에 수소를 주입하면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여 건전지를 충전하는 구조다. 수소차는 아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충전소가 적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전기차 충전소는 곳곳에 있어서 편리한데 수소차 충전소는 현재 전국에 50여 곳 있으니 충전 한번 하려면 큰 맘 먹고 멀리까지 가야 한다. 수소차 충전소는 건축 비용이 50억 원 이상이나 들고, 사람들이 수소 폭탄과 수소 연료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폭발사고를 두려워하여 충전소 건립을 극렬 반대한다. 성남시도 올 8월에야 충전소 하나 건설 예정이라서 하남까지 가야 한다. 하남충전소는 그리 붐비지는 않아서 시간 조정이 수월한 목회자의 경우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지금처럼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 곧 전기가 부족하여 다시 원전을 확대해야 하고 또 수소는 우주에 무한히 존재하기에 가장 친환경적인 것은 수소전기차 방식이라고 한다.  

 

 

타보니 차는 정말 좋다. 보조금 받으면 4천만 원 미만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실제 차 가격은 7500만 원 정도니 운전자로서는 호강이다. 차의 개념도 기계(모터)가 아니라 하나의 전자제품이라 웬만한 것은 버튼으로 조작한다. 수소차를 타면서 가장 좋은 점은 운전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운전할수록 공기를 정화시킨다는 보람이다. 실제 수소차를 운행하면 순수한 물(H2O)만 배출한다. 내가 운전하여 지구를 살리는데 기여했다는 이 뿌듯함을 다른 어느 차에서 누릴 수 있을까. 이 기쁨을 눈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보아야 수소차 확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충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수소차를 선택했다. 아…, 운전하고 싶다. 참고로 나는 현대자동차와 아무 관련이 없다.

 

 

2) 얼마 전에 딸이 퇴근해서는 혀를 차며 말했다. 회사 직원들 중에 점심 식사 후 이를 닦으면서 수돗물을 그냥 틀어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수도꼭지 잠갔다가 다시 틀어서 이 닦는 습관이 힘 든 것인지, 어려운 일인지… 수도 요금 자신이 내는 것이면 이러겠는가. 우리 앞에 수돗물이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도대체 생각하지 않는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으니 그 과정을 상상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생명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되고 있다. 이 빈곤한 상상력이 지구를 조금씩 죽이고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목회실의 차 그릇이나 잔을 설거지하고 있다. 차 마시고 오래 놓아두면 남은 차가 말라붙고 그만큼 설거지하기가 어려워지고 물이나 세제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먹으면 바로 씻는다. 양이 많거나 귀찮을 때는 한꺼번에 넓은 그릇에 넣고 물을 받아서 하루 정도 담가 놓는다. 그러면 그 다음날 설거지하기가 훨씬 쉽고 세제 안 써도 되고 당연히 물도 줄일 수 있다.

 

 

 

3) 지구가 죽음의 위기 앞에 있다. 19세기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지구와 인류가 함께 썩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욕망을 심어온 결과다. 이렇게 육체를 위해 심는 삶의 방식을 전 세계가 따라가고 있다. 지구의 위기가 심화되는 원인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의 생명이 끝나지 않고 영생의 결실을 얻도록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지구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가나 전 세계의 정책이 지구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를 계속 촉구해야 한다. 전 세계가 지구의 위기를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좀 늦긴 했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여전히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이런 삶을 위해 원자력발전소나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가 살고 우리 후손들의 삶이 지속되도록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지구의 영생을 위한 정책을 촉구해야 한다.

 

또 하나, 국가정책은 국민의 요구에 달려 있다. 우리 개인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쉽고 이익이고 편리한 생명운동은 없다.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나는 1990년대 어느 해인가 교회 표어를 이렇게 정한 적도 있다 ; 조금은 불편하게 사는 교회!

 

 

 

4) 오늘 하나님 말씀처럼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따라 살면 지구 전체의 공멸을 거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한 사람, 한 국가라도 더 많이 성령의 권고에 따라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구의 영생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오늘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가 동참해야 할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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