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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성령강림후(3-2) - " 약한 자들에게 열리는 구원의 문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18-06-09 (토) 19:12 5년전 4810  

본문) 고전 1:18~25 / 눅 14:15~24 / 호 2:14~23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선교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세상 학문을 이용한 설교를 하지 않고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고린도에 오기 직전 철학자들의 본 고장인 아테네 전도에서 경험한 사실에서 체득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들릴지 몰라도 구원 얻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혜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실상 하나님 앞에서 보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미미한 것입니다. 좋은 학교 나오고,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갖고 있고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1:21)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만일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부모 잘 만나서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은 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줄 압니다. 세상에서 재산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알고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바로 다음절(26) 이하에는 이에 대한 확실한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교회 안에는 세상적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신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큰 혼인잔치 비유입니다. 잔치에 먼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들은 주인은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14:21)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자리를 다른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도록 했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먼저 부름을 입은 유대인들 그것도 지위 높고 하나님 잘 믿는다고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 보다 저자거리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시킨다는 말씀입니다. 똑똑하고 잘 난 사람들이 아닌 부족한 사람들 곧 사회적 약자들을 관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드러나 있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촌 동네에서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돈 많은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예수님은 바로 아무 것도 내놓을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서러운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갈릴리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는 병든 사람들, 세상에서 천대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축복하시며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약 말씀 호세아서 2장은 주전 8세기 중엽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한 호세아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호세아 2장을 알기 위해서는 시내산 전승과 광야전승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14절의 거친 들은 바로 광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짓고 우상숭배하며 타락한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그들을 타일러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을 돌아 광야를 거치며 하나님의 기적을 보며 훈련 받았던 것처럼 다시 저들을 이끌어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 곧 하나님의 백성(암미)을 만드시겠다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모세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런 이스라엘을 수없이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 기도록 하셨습니다. 저들에게 남다른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저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 범죄한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데리고 나가 타일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주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음란한 고멜을 내치지 않고 회복시켜 다시 긍휼이 여김(루하마)으로 내 백성(암미)”(23)이라고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죄지은 사람을 단번에 내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어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곧 헷세드를 만나며 여기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입에서 다시 내 바알을 부르지 않도록 하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며 공의와 정의, 은총, 긍휼이 여김, 진실함으로 대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죄지은 사람들을 버리시지 않고 그들에게 다시 은총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사랑 외에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흡사 자식이 잘못했다고 해서 그냥 버려버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도 죄 지은 백성들을 가혹하게 벌주고 끝내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흙탕 속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꺼내 주시고 다시 말갛게 씻기셔서 사랑으로 끌어 않으신 분입니다. 성경은 바로 전체가 이런 주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별 볼 일도 없는 또 잘난 것도 없는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약해서 수시로 넘어지고 세상에 끌려 다니며 힘없게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또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똑똑하고 잘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쁘고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 구원은 먼 데 나라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은혜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제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암미)’답게 살아갑시다. 과거에 우리가 세상을 험하게 살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처럼, ‘긍휼을 받을 자(루하마)’처럼 살아갑시다.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 같은 연약한 사람들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자만하지 않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 허물을 바로 안다면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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