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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13-1) - " 성령의 사람들은 "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0-08-26 (수) 17:57 4년전 1904  

본문) 행 6:8~10, 마 10:16~23, 단 6:1~23 


오늘은 성령강림후 열 세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로써 성령강림주간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일부터 창조절을 맞이합니다. 


올해 성령강림주간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습니다. 매 주일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당신의 피조물을 구원하시려는 지치지 않으시고 변함이 없으신뜨거운 사랑을 재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사랑은 성자이신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성자 예수께서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은 땅의 세계 뿐만이 아니라, 하늘 세계의 존재와 그 세계와의 이어짐을 말합니다. 피조물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머리를 위에 두고 하늘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성자 예수는 사도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받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자 예수는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성자 예수의 분부에 순종한 사도들을 비롯한 120명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자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그들이 다같이 모인 집에 가득하게 임하셨습니다. 약속의 성취입니다. 언어가 달랐지만,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됨을 들으면서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받은 제자공동체가 술에 취했다며 조롱도 했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소리를 높여 술렁이던 예루살렘을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은 이미 요엘선지자가 말씀하셨고, 여러분이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으십시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꿰뚫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 만물을 구원하시려고 성자 예수를 보내시고, 그 성자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자들이 3천명이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전무했던 새로운 공동체와 그에 따른 생활 패턴이 만들어졌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필요에 따라 나누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올드 노멀에서 뉴 노멀의 시대로서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한 새로운 하늘 공동체의 뉴 노멀의 행진은 다시 오신다는 성자 예수의 재림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때까지 뉴 노멀로 살아가야할 교회 공동체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애절한 부탁과 당부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역사를 대충 훑어보기만 하더라도, 새로운 하늘 공동체의 뉴 노멀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새 하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뉴 노멀을 포기해야 합니까? 아니면 새 하늘 공동체의 일원이라며 담을 높이 올리고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처럼, 온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1. 뉴 노멀로 온 세상을 선도해낸 스데반의 이야기부터 시작합시다.

스데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 공동체 안에 시기와 원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불공정의 일로 교회 공동체가 분열될 위험에 빠지자, 열두 사도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명을 세우고자 합니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기로 하고, 안수하며 세워진 일곱 명은 공동체의 살림과 운영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이 때에 안수받은 일곱명 중에 한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데반은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바로 잡기 위해 세워진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성령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한 곳이어야 함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오직 하나님의 크시고 온전하신 구원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는 곳이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권능의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은 12명의 사도들이 보기에도, 당시에 수많은 교회 공동체 일원 중에 타인의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서신서에서 보여주시는 스데반의 또 다른 모습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밖에서의 모습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도 행했습니다. 자유민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안, 길리기아인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은 철저히 교회 공동체에서 뉴 노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교회 밖의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대교의 회당을 찾아가서 그들과 소통하는 자였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았던 스데반을 보면, 교회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배타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권능으로 사랑의 기사와 구원의 이적을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 공동체는 자축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공동체를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칭찬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서서 마땅히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나타내 보여주는 지혜와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받은 교회 공동체가 절대로 놓쳐서도 안되고, 포기해서도 안될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요, 갖춰야 할 모습입니다.


2. 이어서 오늘 구약의 말씀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안에 살아가는 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다니엘이 겪었던 일로 생생하게 전해 주십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패망했을 때에, 남 유다 출신 다니엘은 바벨론의 1차 침략 당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후 다니엘이 섬긴 왕은 모두 4명입니다.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오왕, 그리고 고레스왕입니다. 다니엘은 왕권이 바뀌어도 고위 관료로 인정받으며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다리오 왕 때의 일입니다. 비록 포로였지만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신망을 두텁게 받습니다. 다리오 왕은 120명의 고관을 세워서 전국을 통치하고, 그들 위에 총리 세 명을 두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할 뿐만 아니라, 왕에 대한 충성으로 그 어떤 그릇됨이나 허물도 찾아 볼 수 없는 청렴한 자였습니다. 믿을만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에게 인정을 받는 만큼 주변의 많은 시기와 질투도 동시에 받습니다. 함께 인정해주고, 함께 격려해주고, 함께 칭찬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곳이 세상인가 봅니다. 결국, 시기와 질투의 세력들은 계략을 세웁니다. 다니엘을 시험에 빠트릴 유일한 방법은 신앙의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저들의 계략대로 30일간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금령을 내립니다.


다니엘은 금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집에 돌아가서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이전부터 해 왔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립니다. 급기야 이 일이 올무가 되어 다니엘은 꼼짝없이 사자굴에 던져져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계략을 세운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니엘을 다리오 왕께 고합니다.


여기에서 먼저, 우리는 다니엘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 관련된 보고를 들은 다리오왕의 반응을 주목해 봅시다. 다리오 왕의 반응을 통해서 평소 다니엘의 행실을 열매처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고무적입니다. 본문을 보니, 다리오 왕은 이 말을 듣고 다니엘을 걱정하며,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과 힘을 썼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의 왕이 인정하는 다니엘이라는 말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았던 스데반과 동일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후에도 다니엘에 대한 다리오 왕의 반응은 동일합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과 힘을 썼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금령에 따라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밤잠을 설친 다리오 왕은 이튿날 새벽에 사자 굴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묻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제국의 왕이, 세상의 왕이 포로요, 이방인이었던 다니엘을 완벽하게 인정하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다니엘이 다리와 왕에게 어떤 대답을 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22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이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리라”

금령에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던 신앙인다운 고백입니다. 그런데 더 주목되는 대답은 금령에 따라 자신이 사자굴에 던져졌으니 왕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사회의 법령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니엘만을 겨냥한 금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항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사자굴이라는 고난 앞에서도 고통을 감내하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자세는 왕 뿐만 아니라,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들에게조차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3. 복음서에서 성자 예수의 가르침도 동일합니다.

성자 예수는 성부 하나님의 구원 계획하에 성자 예수를 구원자로 믿고, 성령 받아서 새 시대에 뉴 노멀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 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만, 양처럼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평탄하고 넓은 길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판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는 고난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에 적당히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속이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대적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뱀과 같은 지혜로움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고난과 역경을 만나게 될 때에, 주님은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분께서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아시고, 성자 예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길과 세상의 길 사이에 갈림길에 놓일 때에 우리의 판단과 경험과 생각이 아닌,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을 의지하고, 그 분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침내 그 분께서 우리를 지혜롭게 하셔서, 나아갈 길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성령을 의지하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공동체가 점점 위축되는 시대입니다. 최근에는 교회가 코로나19 대확산의 주범이 되면서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공동체가 되어서 심히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날 교회 공동체와 교우들이 살아가야 할 지침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 세상에 그 어떤 도전이 있어도, 때에 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거부하고, 도망하고, 피하고, 거짓으로 대하는 자세는 결코 기독교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자세여야 합니다. 

오늘 성령 강림 후 마지막 주일이고, 곧 창조절을 맞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신 하나님은 창조절기에도 이 창조 사역을 지속하십니다. 교회 안과 밖에서 동일하게 인정과 칭찬을 받는 교회 공동체와 신앙인들로 재창조되는, 거듭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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