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4:2-6, 빌2:12-18, 마5:13-16
1) 부끄러운 교회의 자화상
코로나19 사태가 최근 아주 심각한 상태로 악화되고 그 중심에 교회가 있는 것이 드러나며 교회가 사회적 공분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할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로 변해버린 참담한 현실을 받아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헌신적인 노력을 해오며 신뢰를 쌓아왔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쌓아놓은 공든 탑을 허물어버리는 재(災)를 저지르는 경거망동을 바라만 보아야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신천지가 코로나를 유행시킬 때는 이단 사이비니까 우리 교회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여기고 안심했지만 버젓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사랑제일교회”라는 간판을 내세우며 기성교회 형태를 보이며 방역당국과 맞서 막말을 하는 모습을 방송화면에서 보면서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한 교회가 전염병의 근원지가 되어 온 나라를 휘저어놓은 일 때문에 모든 교회의 선교의 문(門)이 꽉 막혀버리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온갖 비난이 교회를 향해 쏟아지는 이 현실을 묵묵히 지역선교의 현장을 일구어오던 우리 교회들이 감당하기가 버겁게 되었습니다.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이 ‘태극기부대’와 맥을 같이하는 극보수 기독교인들의 광기(狂氣)를 통해서 해방 직후 서북청년단들이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만행을 다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이보다 훨씬 더한 어려움도 이겨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손 놓고 형편이 풀리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허물어진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세 본문은 우리 교회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 줍니다.
2) 정결하게 씻으시고 태우시는 성령
이사야 4장은 이스라엘의 타락하고 문란함을 심판하신 후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을 정결하게 씻으시는 성령의 임하심을 말해주는 예언입니다. 3장에서 이스라엘이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사치를 즐기며 타락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심판을 외친 이사야 선지자는 4장 1절에서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게라도 해서 시집도 못 갔다는 말을 듣는 수치를 면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전쟁에서 다 전사한다는 심판의 메시지에 이어지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야훼께서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셔서 그 부끄러움을 딛고 넘어서서 회복하게 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완전한 반전(反轉)입니다.
그 날에 야훼의 ‘싹’(그리스도를 의미함)이 아름답고 영화롭게 되고. 이스라엘 안에 ‘남은 자’(Remnant)들이 거룩하다고 불리어지며, 야훼께서 모든 죄악을 소멸하는 영(성령)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더러움과 피(죄악)를 씻기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야훼의 영광스런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와 구름 그리고 타오르는 불빛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오늘 절박한 상황에 서있는 우리 한국교회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교회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음을 받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교회의 영광을 회복해주실 것을 믿고 지금 다시 신발 끈을 동이고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들로 나타나라
오늘 서신서 본문 빌립보서 2장 12절 이하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케노시스 기독론“의 근거가 되는 5-11절 말씀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12절에서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만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하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영적인 자만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책망 받은 중요한 이유도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켰다고 생각하는 오만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겸손한 자세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고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을 받지 않도록 삼가고 조심하면서 흠이 없고 순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릇된 세상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흠결 없이 살아서 빛처럼 되어야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이렇게 빛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주님 오실 때 자랑거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섬김 위에 자신의 피를 다 부어드려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교회 출석하고 교회에서 조금 봉사하는 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흐트러짐이 없이 삼가고 조심하는 거룩한 생활을 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의 오만함은 하늘을 찌르고 그의 거침이 없는 막말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신앙은 겸손이 생명입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겸손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사탄의 친구가 되고 어둠의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삼가고 조심함으로 덕(德)을 세워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으로 살 수 있어야합니다. 막말을 하며 정부당국의 방역을 방해하는 저들 극보수 기독교인들이 어질러놓고 더럽혀버린 주님의 교회를 다시 정화하여 정결하게 만드는 일을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합니다. 더 희생하고, 더 헌신하고, 더 겸손하게 지역사회를 받들어 섬기는 우리 교회를 만들어 무너진 교회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오늘의 복음서 말씀 마태복음 5장 13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산상수훈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가 깊이 명심해야할 말씀이고 지금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한 우리 주님의 요구입니다. 저는 무너진 교회의 영광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좋은 길은 교회가 산상수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정신이 녹아있는 산상수훈이야말로 지금 무너진 교회를 살리는 확실한 처방이라고 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고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을 보며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맛을 잃어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소금처럼 되었다는 안타까운 생각으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시며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bowl)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숨겨두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교회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말 아래에 놓아둔 불을 꺼내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도록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희생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 결정(結晶)을 녹여내지 않으면 안 되듯, 불이 빛을 내기 위해서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안 되듯 교회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해야합니다. 지금 자기유지에 급급한 교회, 자기충족적인 교회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듯이 죽어야 진정으로 살 수 있습니다.
5) 맺음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철저한 자기정화의 과정을 거쳐 거룩하게 되어야합니다. 또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한 자세로 낮아져서 거룩함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희생의 삶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Soli Deo Gloria!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