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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 후(12-2) -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 / 신솔문 목사

관리자 2026-08-14 (금) 22:39 9일전 64  

본문) 사 4:2~6, 빌 2:12~18, 마 5:13~16


1.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사물 중의 하나가 “빛”입니다. 어떤 사물이든지 근본을 탐구하면 신비롭기 마련이지만, 빛은 조금만 건들어봐도 그 신비로움이 드러납니다. 마치 사막 아래 흐르는 지하수맥이 땅 위로 노출된 오아시스 비슷합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때의 빛을 ‘태초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 의하면 그때가 약 137억 년 전입니다. 상상이 잘 안되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 태초의 빛을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이 빛이 지금도 남아서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배경복사”가 그것입니다.


빛의 속도는 1초에 약 300,000,000미터(30만 킬로미터)입니다. 소리가 공기 속을 1초에 약 340미터 가는 것과 비교하면 작은 랜턴에서 나온 빛이 이런 속도를 내는 것이 놀랍습니다. 난해한 이야기 하나 더 드리면 빛의 속도는 묘한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 같은 기능도 합니다.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느려진다네요.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고요. 물리학 법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이 논리를 연장하면 빛의 속도보다 빠르면 시간이 거꾸로 가게 되며 즉 과거로 넘어가게 됩니다. 타임머신 아이디어입니다.


시각(視覺)은 사물의 데이터를 빛이 배달해 주었을 때 일어납니다. ‘배달 시간’이 있으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물의 과거입니다. 낮에 보는 태양은 약 8분 전 모습이고 밤하늘의 북극성은 약 400년 전의 모습입니다. 오늘 밤 지구별에서 북극성을 볼 때 현재와 약 400년 전의 과거가 조우(遭遇)를 하고 셈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빛은 옛날부터 여러 비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오라!’는 것은 ‘쏜살같이 오라!’의 현대적 버전이고 ‘빛 한 줄기’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빛을 보았다’는 것은 사장되었던 것이 인정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오늘 세 본문에 나타난 핵심적 주제를 담은 용어도 ‘빛’(light)입니다 (최부옥 목사).



이사야 4: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빌립보서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오늘 세 본문은 어떤 빛의 비유를 통해 우리 성도의 삶을 설명하고 있고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을까요?



2.


첫째,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걸으며 은총을 누리고 보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2장 1절부터 4장 6절을 교차대구 구조로 보고 있는 Wilklander의 분석을 참고하면 4:1-6에 대응하는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절). 하나님의 빛 가운데를 걸어간다는 말이며 여기의 빛은 은총을 의미합니다.


4:5의 빛은 출애굽하고 광야 길을 갈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떠올립니다. 돔과 같은 지붕 보호막까지 가동하고 계시지요.


이렇게 연결되는 2장과 4장을 종합하면 우리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의 빛이라는 은총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특혜받는 인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가랴는 이러한 도우심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2:5).



둘째,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은 죄와 허물을 처리하고 늘 새로워지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며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새번역)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빛이라는 은총과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특혜 받는 인생임은 분명하나, 무조건은 아닙니다. 이사야 말씀의 문맥을 보면 이러한 특혜를 누리기 위한 선결 조건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시온의 딸들의 배설물을 씻어 내 주신다고 합시다. 예루살렘에 흘린 피를 그 한가운데서부터 깨끗이 씻어 내 주신다고 합시다.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요. 그러면 여호와께서 시온산 모든 곳 위에 또 시온의 모임 위에 창조하실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연기와 환한 불꽃을요. 그 모든 영광 위에 지붕이 있어 보호해 줄 것입니다 (4:4-5, 새한글)


선결 조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정화입니다. 당연합니다. 악인에게 마냥 은총을 내리고 악인을 마냥 보호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괴물을 키울 수는 없지요.


빌립보서에서도 성도들의 회개와 정화를 강조합니다. 당연합니다. 특혜만 누리려고 하고 이에 상응하는 자세나 의무는 소홀히 하는 자를 한없이 용납할 수는 없지요.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함을 누리는 사람들은 당연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의 길을 정성껏 가야 합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아도 주님의 뜻을 늘 헤아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오늘 말씀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스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들이니까요.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처리하고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성도 되시길 소망합니다.



셋째, 주 안에서 늘 새로워지는 노력을 하며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세상을 환하게 하는 빛과 같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의 소금과 빛은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착한 행실이 드러날 수도 있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거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때로는 거름으로 사용되지만 드러나지 않고 스며드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반면에 어두움을 밝히는 빛은 그렇지 않습니다. 드러나야 합니다. 이 점에서 빛은 성도들의 “선한 영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은 빛이라는 키워드(key word)로 잘 연결됩니다 - (1) 이사야: 하나님의 빛 가운데 인도받고 보호받는 성도는 (2)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갱신하며 늘 새로워지는, 별(발광체)과 같은 사람이며 (3) 이들은 빛처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소금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합니다.


빛처럼 소금처럼 사는 삶이 성도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소금이나 빛이다고 하신 듯합니다. 성도의 삶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이 정상인 것이지요.



3.


인과 관계에서 이상한 결과가 나오면 중간 어느 지점에서 틀어졌기 때문인데요. 오늘 세 본문은 연결하면 일련의 인과 관계가 나옵니다.


(1) 하나님의 빛 가운데 인도받고 보호받는 성도 → (2)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갱신하며 늘 새로워지는, 별(발광체)과 같은 사람 →  (3) 빛처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소금처럼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


우리 기독교인들이 (3)처럼 우리 사회의 소금과 빛과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들이 만연하고 있을까요?


원인이 (2)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갱신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두렵고 떨리기는커녕 뻔뻔하게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무시하지요. 하나님도 까불면 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은 이러한 실수와 오류와 악행에 빠지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의 길 가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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