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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령강림후(12-1) - " 아름다운 싹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6-08-14 (금) 14:16 9일전 61  

본문) 4:2~6, 2:12~18, 5:13~16

 

싹은 씨앗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입니다. 한없이 부드러워 쉽게 뭉개지지만, 생명을 피워내는 능력은 강인합니다. 싹은 이미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새로운 형태로, 낯선 환경에 제 자신을 드러내며 주변과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싹은 뻣뻣하게 제 고집을 부리다가 꺾이지 않습니다. 싹은 빛을 향해 가면서 흙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할 때에 돌로 길이 막혀 있으면 돌을 감싸고돌아 부드러움으로 빛을 찾아 갑니다.

요즘처럼 가물고 뜨거운 날씨에는 싹이 났다가도 제 생명을 피워내지 못하고 마르기 십상입니다. 가물고 지나치게 뜨겁거나 추운 날씨에는 새 싹이 제대로 생명을 피워낼 수 있도록 살피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깊은 애정으로 돌봄을 받은 싹은 제 생명을 보존하고, 그 안에 담겨진 풀로, 또는 나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절을 구별하면서 씨앗을 뿌리고 싹을 냅니다.

 

하나님께서 상처입고 신음하면서도 예루살렘에 생존하여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싹을 키우는 정성으로 보살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서 본문의 앞에 기록된 이스라엘은 범죄 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1:4)입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흔적이 가득’(6)합니다. ‘성읍들은 불에 탔고, 눈앞에서 이방인이 토지를 삼키고, 땅은 황폐해진’(7) 예루살렘입니다. ‘젖먹이 아이 같은 이들이 고관의 자리에서 다스리고 백성은 서로 억압하며 사납게 대하는’(3:5) 시대를 지냅니다. 마침내 이방인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 얼마나 처참하였는지, 남자들이 사라져서 한 남자에게 일곱 여자가 사정하며 말합니다. ‘내 먹을 것은 내가 마련할 테니 다만 남편이 있는 여인으로 살게 해 주시오.’(4:1) 시대적 시련의 현장에는 전장에 나가 죽는 이들도 있으나, 죽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멸시당하는 과부와 고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딸과 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처참한 상처를 싸매지도 못하고 시뻘건 상처를 드러낸 채 끙끙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 44절을 원문에서 직역한 것으로 읽습니다.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배설물을 씻기시고 예루살렘의 피들을 그 가운데서 심판의 영과 불타는 영으로 깨끗하게 하실 때에”(허성갑)

그 때에 하나님은 시온산과 백성들의 모임 위에 낮이나 밤이나 피할 곳이 되어주시려고 당신의 백성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살기가 참 어렵고, 들리는 소식은 혼란과 분열과 파괴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진과 화마와 풍수해와 기근과 전쟁입니다. 하루하루를 지내는 일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힘들고 지쳐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주 하나님께서 피할 곳이 되어주신다는 이 말씀이 들려지고 위로가 되며 희망의 빛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금 소금이고, 빛이다.”

 

소금이나 빛은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모든 생명체는 소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기는 생명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요소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소금의 모양을 가진 채로는 생명을 유지시킬 수 없습니다. 제 모습을 잃고 나야 비로소 생명 안에서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자신은 사라져야 합니다. 또는 감춰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소금이라고 하신 우리는 사라지고 감춰지므로 세상이 변화될 가능성으로 남습니다.

 

지구에서 태양이 사라지면 모든 생명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태양이니 태양을 직접 확인해야겠노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눈이 멀어버립니다. 사람의 눈은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물이 보여 질 수 있도록 비추는 빛을 통해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빛이라고 하십니다.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너희는 지금 소금이다. 너희는 지금 빛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등불은 등경위에 두어서 사람 앞에 비치게 하고,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소금으로도 빛으로도 제 몫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여주어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시는 것은 참 어려운 주문입니다.

모든 사람들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선한 행실까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내가 칭찬 받기 위한 착한 행실이 아니라 하늘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착한 행실입니다.

그런 착한 행실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데, 그 중 하나는 <항상 같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썩어 냄새나는 현장을 만나면 율법에 매여 이웃을 정죄하였던 바리새인들에게 맞서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린 이미 빛이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자리는 산 위이고, 등경 위입니다. 빛이 제멋대로 밝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한다면 몹시 피곤합니다. 그렇듯이 주의 성도들도 한결같은 삶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늘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착한 행실은 <친절함>일 것입니다. 빛은 그가 있는 곳의 환경을 밝게 합니다. 빛은 불편하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어둠은 사라지게 하고 걸리고 부딪히거나 수렁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게 합니다. 집안에 햇빛이 밝게 들어오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도 밝다고 합니다.

 

하늘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착한 행실의 또 다른 면은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소금을 적당히 넣으면 제 맛을 내고, 듬뿍 절이면 부패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빛은 가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냄새가 나든, 독이 가득하든 그곳으로 갑니다. 빛은 씨앗에서 생명으로 살아날 길을 엽니다. 추하고 더럽다거나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차별하여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늘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착한 행실의 또 다른 면은 자신보다는 <다른 것들이 빛나게> 합니다. 우리가 땀을 많이 흘린 후에 서걱거리는 소금기가 온 몸에 서리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흘린 땀은 보람으로 기쁨으로 감사로, 나와 이웃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는 바탕이 됩니다.

주님의 빛은 너무나 환하고 큰 빛이어서 우리들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큰 빛을 받아 작은 빛이 되었습니다. 어둠은 숨게 하고 두렵게 하고 비밀스럽고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키지만 비록 작은 빛이라고 하여도 빛이 닿는 곳에는 어둠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처참한 상처를 싸매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이들을 찾아오셔서 여호와의 싹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빛을 비추시며 피할 그들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우며,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말씀이며 빛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의 성육신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소금으로 빛으로 있게 하셨으므로 우리 안에 간직된 생명의 빛은 밖으로 번져나갑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재정적으로, 즉 물심양면으로 복음전파자들을 지원하며 섬기는 빌립보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 생명의 피를 제물로 더하더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2:17)

빌립보서 216절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밝혀에서 밝혀굳게 붙잡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기 때문에 일생을 바쳐 수고하면서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감사하며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빛은 너희의 착한 행실이다.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본 사람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13-14)

 

우리들이 여호와의 싹으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피해 주께로 오는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어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불러주시는 사람, 여호와의 아름다운 싹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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