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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령강림주일(1-1) - " 성령께서 주시는 공감 " / 도시농어촌선교주일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6-05-19 (화) 17:05 2일전 32  

본문) 겔 36:22-28; 행 2:1-21; 요 7:37-44


1. 실마리


+ 오늘 성령강림주일이며,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와 모든 교우들의 삶에, 나아가 이 땅 위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스승과 제자


지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특별히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스승과 제자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신약성서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옵니다. ‘제자’는 그리스어로 마데테스(μαθητής)인데, 만타노(μανθάνω) 즉 ‘배우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이와 함께 ‘사도’, ‘열둘’이란 용어가 예수 그리스도가 택하고 또 그를 따랐던 특별한 집단에 대한 표현으로 널리 쓰입니다. 사도(ἀπόστολος)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뜻이고, 열둘(οἱ δώδεκα)은 그 제자 또는 사도들의 숫자를 특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서 베드로는 열둘이 아니라 ‘열한 사도’라고 언급합니다. 누가 빠졌는지 아시지요? 바로 유다 이스카리옷, 즉 가룟 사람 유다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베드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를 잡아간 사람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행 1:16)입니다. 시카리(sicarii)란 식칼과도 비슷한데, ‘단도’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까닭으로 그가 열심당원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미국에 있는 교우 가정의 유치원 다니는 딸이 그래도 가룟 유다는 뉘우치지 않았느냐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마 27장에 유다는 예수께서 유죄 판결을 받자 “내가 죄 없는 피를 팔아 넘김으로 죄를 지었소”(4절)라며, “그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유다의 최후가 기록되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그는 거꾸러져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다”(행 1:18)고 유다의 최후를 설명합니다.


3. 창자의 아픔


여기 ‘창자’란 단어가 나옵니다. 실제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는지, 아니면 그냥 목을 매달아 죽었는지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중요한 것은 ‘창자’라는 표현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스플락크나’(σπλάγχνα)인데, 내장(intestines)이란 뜻입니다. 


우리말에도 애끊다, 애끓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해설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애끊다'는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애끊는 통곡'과 같이 쓰이고, '애끓다'는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애끓는 하소연'과 같이 쓰입니다. '애끊다'는 몹시 슬픈 감정을 나타내고 '애끓다'는 몹시 안타까운 감정을 나타내는데, 둘 다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 겹쳐 헷갈리나 전자는 괴롭다는 뜻이 더 있고 후자는 답답하다는 뜻이 더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애는 장(臟)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애가 탄다’, ‘애간장이 탄다’, ‘애를 태운다’, ‘애 떨어질 뻔 하다’, ‘애를 쓴다’고 할 때의 그 ‘애’입니다. ‘홍어애’도 있는데 이 경우는 홍어의 간을 말합니다. 영화 <5월 18일생>에 나오는 맨날 술로 살다가 날망에서 떨어져 죽은 검정고무신 소년의 엄마 마음에 있었을 그 아픔입니다.


4. 공감

 

유교에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자연스럽게 안타까워하며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 즉 인, 의, 예, 지 가운데 인(仁)의 단서로 설명합니다. 마태 9:36에도 같은 어근에서 나온 ‘에스플락크니스데’(ἐσπλαγχνίσθη)란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는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나와 무관한 남들이 아니라 진정한 내 이웃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애끊는 아픔을 느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창자는 가장 깊은 곳에서의 공감(empathy). 긍휼(sympathy)를 의미하는 단어라 하겠습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그가 예수를 팔아넘기고 얼마나 크게 후회하고 통곡했을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룟 유다는 “복장이 터져 죽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5. 순교자 류동운 김거성, 


1980년 5월 27일, 바로 46년 전 오늘입니다. 새벽 3:50 도청 상황실에서 마지막 방송이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지난 5.18 기념식에서 그 방송을 했던 박영순 씨가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그때 전남도청에서 그 방송을 함께 들었을 당시 한신대 신학과 79학번 류동운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계엄군이 진압해 들어오기 전날 아버지 류연창(1928-2019) 목사는 전남도청에서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옵니다. 하지만 류동운은 생을 정리하려고 귀가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를 만나고, 몸을 씻고,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역사의 십자가 앞에 선 청년 신학도는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라는 글을 일기에 남깁니다. 그리고 동생 류동인에게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어느 이름 모를 강가에 조용히 뿌려다오!”라는 유언을 글로 남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아들을 붙잡았지만, 아들로부터 이런 항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붙잡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무자비한 계엄군에게 희생당하고 있는데 왜 자기 아들만 보호하려고 하십니까? 아버지는 왜, 평소 소신을 버리십니까. 아버지는 설교하시면서 ‘역사가 병들었을 때, 누군가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이 역사가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아버지, 저를 붙잡지 말아주세요!” 

류연창 목사는 5월 25일 주일 대예배에서 ‘역사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교회 청년회원의 형이 시민군 활동을 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류 목사는 로마 군인보다 더 잔인하게 양민을 학살하는 전두환 군부의 살육을 막기 위해선 역사의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절규했는데, 그 십자가가 바로 자기 아들에게 주어졌고, 아버지는 이 아들의 마지막 길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류동운은 1980년 오늘 새벽 복부에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오늘, 그의 친구들이 한신대에 ‘류동운 열사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는 2021년 그를 순교자로 추서하였습니다. 추모비와 순교자 추서를 넘어, 우리 모든 교우들이 순교자 류동운의 창자 깊은 곳으로부터 병든 역사에 대한 아픔을 함께 느끼고, 그의 이웃에 대한 깊은 공감을 함께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6. 깨끗하게 씻어주는 물


오늘 읽은 구약 에스겔서 본문은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의 능력을 이렇게 약속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겔 36:25-27)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그 물, 생수가 그의 배에서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7:38) 그의 배에서, 그리스어로는 ‘코일리아’(κοιλία)인데, 몸의 내장이나 어머니의 태(胎), 창자 등으로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그의 배에서 깨끗하게 씻어주는 그 물, 바로 류동운 순교자의 창자 깊은 곳에서의 공감 아닙니까? 


이는 전태일 열사가 시다들을 위해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대신 자신은 두 세 시간 걸어갔던 힘들고 굶주린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또 지난 탄핵정국에서 선결제, 키세스 시위대로 나타났던 그 공감이기도 합니다. 


7. 매듭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면서 또한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도시농어촌의 안타까운 이웃들에게 복음 들고 앞장서 나갈 힘이 바로 성령께서 주시는 공감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자신의 창자의 아픔처럼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습니다.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그 물을 출발점으로 이웃을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에 나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 임재로 진정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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