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4:2~6, 빌 2:12~18, 마 5:13~16
1. 몇 해 전 태풍이 한 밤 중에 거주지역을 관통해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자정을 기해서 새벽녘까지 강한 태풍이 지나간다는 데,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의 강도는 세지고, 비도 많이 쏟아지면서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시간을 보냈는데, 밖에서 새벽빛이 밝아오면서 바람의 강도도 약해지고, 비도 멈추는 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날 새벽을 알리는 한 줄기 빛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빛이 떠올랐습니다. 빛은 특히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소망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본문에서도 소망과 힘이 되는 빛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말씀이 위로와 소망과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오늘 세 본문에서는 공통적으로 ‘빛’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약 본문에서는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사4:5), 복음서 본문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서신서 본문에서는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15)라는 말씀 속에 그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 본문의 말씀에서는 주전 8세기 남유다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유다의 황폐화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선포한 이후, 그 심판의 끝에는 하나님의 구원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장 1절에서는 전쟁 등으로 인해 일곱 여인이 한 남자를 두고 서로 남편을 삼으려는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 시온에 남은 사람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두셔서 거룩하다고 불리게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마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광야길로 나아갈 때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회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질 ‘그날’이 올 것을 말씀해 줌으로 당대 부패한 세상과 사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갈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많은 고난과 어두운 세력들을 마주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은 소망 가운데 남은 자들을 두실 것이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공동체로 회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 남겨졌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의 인생사는 국가의 영향력 아래 살아갑니다. 주전 8세기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에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나라 상황이 개인의 신앙과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에 역부족이었고, 종교지도자였던 제사장 그룹도 부패하여 형식적인 종교활동과 거짓 예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된 것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선포하는 삶은 오늘날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믿음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3.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산으로 따라 올라온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거나 부패를 방지하는 중요한 식품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인생의 기쁨과 사회의 정의를 이루는 데 중요한 책임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빛으로서 세상 가운데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결은 너희의 빛이 비취게 하여, 즉 너희 착한 행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착한 행실일까요?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처럼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 믿음으로 한 주간을 살아가도록 힘쓸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단순히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남 해롭게 하지 않고 하는 도덕적 선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착함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생명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정의와 사랑으로 우주만물을 다시리신다는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행함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기독교 성명서와 운동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기 위해 행하는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착한 행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 주변과 교인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도 세상에 빛을 내는 착한 행실에 해당합니다. 그러한 착한 행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드러나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선한 사역이 될 것입니다. 이런 착한 행실은 사회나 개인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도 엄중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4. 오늘 서신서본문을 보면,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는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고 구원받은 이들에게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의 조건으로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행실로 그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결단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시기 때문에(빌2:13) 불평이나 분쟁이 없다고 말씀합니다.(빌2:14) 구원받은 자의 삶 속에서 불평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새한글성경본으로 1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고 순수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비뚤어지고 비틀린 세대 가운데서 흠잡힐 데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오. 그들 가운데서 여러분은 세상 속의 발광체처럼 빛을 내십시오.”
현 세대를 가리켜 비뚤어지고 비틀린 세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틀어진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고, 비뚤어진 것은 내적인 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바르게 세워지지 않고 한 쪽으로 쏠리거나 꼬이거나 돌려진 상태를 말합니다. 어느 기준으로부터 그렇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다 보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평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족의 표현이고, 다툼을 하나님의 뜻보다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것을 주장하다보니 나오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개인의 삶에서부터 교회와 사회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삶을 살다 보면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가운데 빛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이 문제를 고민하며 한 걸음 전진해 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빛이시오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십시다.
유명한 기독교 고전이 된, 19세기말 찰스 M. 쉘돈 목사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160년전, 백인들이 주로 사는 미국 중부 레이몬드 시에서 부유하고 교양있는 부유층의 예배와 그 주변 불평등과 기회의 차등으로 꼬인 인생을 사는 이들의 간극을 줄이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그 시대의 고민과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진 이 책은 현실 교회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이 형식적인 예배와 종교행위에 갇히지 아니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의 감격과 세상의 변화를 견인하는 진실된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입니다. 아니 어쩌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 문명의 발달로 인해 하나님의 영역을 점점 더 줄여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빛도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그날을 예고해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라고 용기를 주셨던 것처럼, 초대 교회를 통해 빛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재확인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이 어둠을 밝히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 가운데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