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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2-2) - " 어른입니까? 아이입니까? " / 총회선교주일 / 이성호 목사(포항을 사랑하는)

관리자 2023-06-10 (토) 10:07 1년전 955  

본문) 1:4~10, 9:35~10:1, 9:1~19,

 

지난 2012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서는 보수진영의 후보로, 그 다음 선거에는 진보진영의 후보로 거론된 조벽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 왔지만, 공위 공직자만큼은 맡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힘으로써 그를 둥용하려는 시도는 모무 무산됐습니다. 조교수는 평소에 어디 줄을 서거나 하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여서, 공직을 맡아 인사이더가 되는 순간 바보가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를 양성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나는 어린애와 어른을 나이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나눠주는 자(Giver)인가 받는 자(Taker)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요. 갓난아기는 하루 종일 달라고만 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점 독립적으로 됩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공공의 필요를 주기 시작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어른은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계속해서 얻고, 받고,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라는 인터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문제 역시 동일합니다.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를 양성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선교주일의 본문은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우리로 하여금 재확인케 하는 존재 인증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1. “너는 선지자라” (1:4~10)

 

(1-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9)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아는 선지자로 부름받은 것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1-3). 하나님께서 이미 구별하여 세웠음을 밝히셨지만 그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향변에서 알 수 있듯 맡겨진 일을 해야 하고, 말해야 하는 사명을 두려워 하던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4).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의 말씀을 자신의 입에 두었다는 위임을 재확인한 예레미아는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는 메신저로 거듭납니다(9-10).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셨듯이, 이 시간에는 먼저 우리를 부르셨으며 세우셨음을 확인하고 결단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9:35~10:1)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은 사방 곳곳을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하셨으며 고치셨습니다. 복음서 본문에 등장하는 주님은 선지자의 원형의 모습입니다. 마태는 그 무리를 불쌍히 여시시는 예수님의 심정에 주목합니다(36). 주님은 자신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능력과 권능으로서 목자없는 양과 같이 위험에 처한 백성들에게로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일할 곳은 많은데 일꾼은 적은 상황, 오늘의 이 시대가 더욱 가중되었지만 현실은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일꾼이 중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많은데, 교회는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일꾼은 아직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얻고, 받고, 자기 몫을 챙기기에만 몰두합니다. 이렇게 얻으려고만 하는 한 어린아이입니다. 이런 교회와 가정과 사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나이나 신앙 연수가 아니라 절망의 나락 속에서 생의 의미를 물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숨을 헐떡이는 이 자연과 생태계에, 하나님의 생명의 숨을 불어 넣는 '기쁨의 메시지'로서의 인생인줄로 믿습니다.

 

 

3. “가라” (9:1~21)

(1)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8)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7) 그 집에 들어가서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그리스도인은 가는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불의와 거짓을 도모하러 대제사장에게로 가는 사울인가요. 주의 백성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따나가는 인생인가요. 우리는 형제의 집을 찾아가는 아나니아입니까. 주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당황케한 정체성이 바뀐 사울입니까?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할 생명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까지도 사랑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생명은 없습니다. 더욱이 처참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고립되고 위축된 생명은 더욱 귀합니다.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여러분은 물질만능주의 세상을 거슬러 오르는 희망의 불씨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선지자입니다. 이 시간에도 세계 방방곡곡의 쓰러진 이들을 일으키고 세워가는 주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성령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뒤척이는 밤과, 뜨겁게 살아내는 일상과 설레이듯 꿈꾸는 여러분의 기도와 소망가운데 우리 주님의 평안과 은총을 기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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