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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9-1) - " 이삭을 줍지 말라 " / 이훈삼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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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후(9-1) - " 이삭을 줍지 말라 " / 이훈삼 목사

관리자 2022-08-04 (목) 13:57 2년전 969  

본문) 레 19:9~10 (롬 12:9~21, 눅 6:32~38)


1. 따뜻한 전통


백령도에는 기념할 만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 1896년에 시작한 중화동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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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화동교회는 이웃 섬인 대청도와 소청도 합해서 15개 교회의 근원지가 되었고 백령도 주민 70%가 기독교인 되게 하는 중심 역할을 감당했다. 중화동에는 교회 말고도 또 유명한 것이 있는데 중화동고구마다. 중화동고구마는 껍질 색깔이 허옇고 묽어보여서 전형적인 물고구마 같으나 실제 속은 노랗고 엄청나게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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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백령도 농부들은 고구마를 대충 걷어 들인다. 그러면 누구든지 고구마 밭에 포대를 가지고 가서 자잘한 고구마를 몇 포대씩 가지고 갔다. 농부의 마음은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수확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중화동고구마 농부들은 일부러 대충 수확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초대 목회자인 언더우드 목사님의 뜻을 받들어 오늘 읽은 레위기의 성경 말씀을 실천한 전통이 아니었을까. 


레위기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앙으로 지켜야 할 삶의 규범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주로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많아서 재미는 없지만 중간에 중요한 법들이 있다. 오늘 말씀도 우리가 다시 새겨보아야 할 의미 깊은 말씀이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9~10)


옛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량이었다. 유목민인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농업사회로 전환되어 가는데 농업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큰 기대를 갖고 뿌린 씨앗이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음에도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 농사와 소출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다. 낱알 하나가 소중한데,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는 것인데, 하나님은 너무 악착같이 곡식을 다 걷어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추수는 대충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다. 밭 한 모퉁이 곡식도 그냥 남겨두고 떨어진 이삭들도 다 줍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명령이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사람들과 땅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굶어죽지 않고 어렵게라도 살아남으려면 밭에 어느 정도는 남겨두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무방한 권장 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라고 강조하신다 :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 이삭 줍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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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밀레(1814~1875년), 이삭 줍는 사람들, 

 83*111cm, 1857년, 오르쉐미술관


프랑스가 사랑하고 반 고흐가 사랑했던 농민 화가 밀레의 대표작이다. 밀레는 농촌의 삶을 통해 19세기 유럽의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 맞서 구원을 찾았다. 특히 사회주의의 기운이 무섭게 발흥하는 당대의 유럽에 비참한 현실을 그림으로써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을 담고자하는 그의 신념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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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대지의 나라 프랑스 농촌에서 숨 막히는 추수가 한창이다. 멀기도 하지만 먼지 가득하여 흐릿한 저 뒤편의 많은 일꾼들이 추수에 여념이 없다. 곡식을 베고 낟가리에 옮기는 남녀의 사람들이 땀처럼 뒤엉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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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는 이미 도시의 부재지주들이 차지하였고 원래 농부들은 한낱 소작농이나 임노동자로 전락하였다. 한시도 쉬지 못하고 노동하는 사람들 옆에는 주인으로부터 고용된 관리인이 말을 타고서는 손을 들어 더 열심히 일하라고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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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기는 화면 위쪽도 마찬가지다. 작은 산처럼 세워지는 거대한 낟가리들과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마차에 꾹꾹 눌러 싣는 볏단들, 그 옆에는 희미하지만 주인 같은 사람이 욕망과 만족의 허리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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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새떼들이 높이 나는데 야속하게도 아직 해는 지지 않고 있다. 이 힘겨운 노동은 하늘이 붉게 물들어서야 겨우 끝나는 시간을 향해 서두를 수 있고, 아마도 검붉은 하늘과 앞을 잘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서야 마칠 수 있을 것인데 아직은 너무 창창하기만 하다. 새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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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는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 세 여인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여인들의 모자 색깔이 그리스 전통 미의 세 여신을 빗댄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 여성들에게는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여신들을 갖다 대는 것조차 민망하다. 

대지주의 추수가 지나간 밭에는 이미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다. 곡식 줄기는 바짝 잘려나가서 밭은 바로 흙이 드러나 있고 돌도 있다. 


세 여인의 얼굴은 이미 강한 햇살아래 검게 그을렸다. 여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농촌노동자다. 옷은 모두 낡았고 몸은 지쳐있다. 이들에게 저 멀리서 바쁘게 노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부러움의 대상이다. 저들은 힘들지만 노동이 끝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그러한 노동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이들에게 겨우 허락된 것은 추수하고 한참 지나간 자리에서 얼마 남지도 않은 이삭들을 주울 수 있는 것뿐이다. 


땅에서 직접 이삭을 줍는 것은 고된 노동이다. 검고 투박한 손은 더럽고 밀 줄기와 흙에 긁혀서 피가 나기도 한다. 베르사유 궁전의 여인들처럼 손을 곱게 단장하거나 장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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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들은 노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저렇게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평생 노동한 허리가 괜찮았을까. 저 허리로 여러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업어서 키우고 또 이삭 줍느라 제대로 펴지도 못하게 혹사한 허리가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내 허리에 통증이 전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힘겹게 줍고 있는 결과물이 너무 형편없어서 아프다. 저 멀리 거대한 곡식 단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분노가 일어난다. 부와 가난의 확연한 대조야말로 유혈이 낭자한 사회혁명을 잉태하는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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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년) 자화상


밀레는 고단한 농촌의 삶, 가난과 상처로 아픈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더 열악한 여성노동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당신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체라고, 그 노동 속에 희망이 있다고! 이런 밀레를 반 고흐가 사랑했고 오늘 우리도 사랑한다. 


3. 악착(齷齪)같은 악(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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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다는 말은 도량이 좁고 모질고 끈질기다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면 푸근하지 못하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데다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경우에 사용한다. 한자로는 둘 다 악착할 악과 악착할 착 자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한자로 두 글자 모두에 이빨을 뜻하는 치자가 들어가 있으니 이를 악물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라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세상 살아갈 때 너무 이 악물고 살지 않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남의 잘못이나 약점을 파고들거나, 웬만한 선에서 중지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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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도 한번 소개했지만 시인 김수영은 우리들에게 가시 같은 존재다. 애써 가린 우리의 허위의식을 낱낱이 까발려서 부끄럽게 한다. 그의 시가 힘을 갖는 것은 그 화살이 남에게보다 먼저 스스로를 향해서 자기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저 강렬한 눈빛이 현대 정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1965년 작)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은 권력자들에게는 비겁하고 나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군림하고 강해지는 우리들 소시민들의 속성을 사정없이 파헤치고 있다. 정말 악착같이 대들고 정의를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별 힘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원칙이니 법이니 정의니 침 튀겨가면서 소리치는 우리들의 민낯 말이다. 


우리가 매주 파송찬송으로 부르는 우리교단 100회 총회 기념 노래 ‘부르신 뜻을 따라 사는 우리’ 2절에도 다음의 가사가 노래하는 우리를 가슴 뭉클하게 한다.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병든 이 땅을 고쳐주소서 그보다 먼저 우리들을 씻어주소서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세상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 좀 낫고 부족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두가 똑같다면 그 것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기계 세상일 것이다.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 속에서 강하고 좀 더 나은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세상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밭모퉁이까지 깔끔하게 추수하지 말고 일부러라도 좀 남겨두라고 하신다. 그래야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너희는 지금 소출한 것만으로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어느 정도에서 욕심을 중단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고, 이것이 잘 안 지켜지니 강하게 법으로 선포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 정신이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9~10)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센터에 가서 우리는 물건 값을 깎을 생각조차 안한다. 백화점가서 깎아달라고 졸라봐라,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그런데 시장에 가서 작은 가게나 좌판을 상대로는 집요하게 깎으려고 한다. 깎지 않고는 억울해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세다. 제발 교인들이 영세 상인들로부터 물건 값 좀 깎지 않기 바란다. 그냥 후하게 주고 사는 것이 좋다. 그것 더 주었다고 안 망한다. 그러나 악착같이 약자들로부터 500원 깎으려하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식당에 가서는 반찬이 공짜라고 마구 가져다 먹지 않기 바란다. 그냥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가져다 먹는 것이 좋다. 실컷 기도하고는 무료 반찬 덜 갖다 먹으면 큰 손해라도 본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바란다.

커피숍에 가서는 1인 1식 시켜야 한다. 난 커피 잘 안마시니까 1잔 시켜서 둘이 나눠먹는다고 하지 말라. 커피숍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장소를 파는 곳이다. 그 장소 사용료가 음료 한 잔이다. 그게 아까우면 편의점이나 길거리 의자에 앉아서 만나고 쉬어야 한다.

배달 기사들에게 큰 소리 치지 말아야 한다. 좀 맘에 안 들어도 고맙다 하고 수고한다 하고 문자 오면 꼭 정중하게 잘 받았다고 답변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것 다 안다. 그러니 하나님 얼굴 생각해서라도 친절하게 정중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여론조사나 광고 전화하는 텔레마케터들에게도 불쾌하지 않도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들도 집에 가면 다 소중한 가족이고 사람이다. 눈앞에 안 보인다고 막 말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하나님이 슬퍼하신다.

주민교회의 근본은 사회적 약자들을 예수님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섬기는 자세를 훈련하는 곳이다. 우리 모두의 깊은 곳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한 악마적 속성이 뿌리 깊게 깔려 있다. 이것이 악이고 죄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세상에 가장 작은 자와 자신을 동일시한 주님을 따르면서 우리도 진정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무 악착같이 살지 말자. 특히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서는 마음의 문을 해제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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