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65:17~25 계 21:1~7 눅 13:22~30
만일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비참하게 살고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친일파로 살면 편하고 좋습니다. 반면에 독립군으로 산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하고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시대에는 독립군으로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팠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해방이 된 후에는 친일파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독립군들은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기간은 고작 35년이었습니다. 35년간의 안일 때문에 평생을 그리고 자자손손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해방은 이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길지 않은 유한한 생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내생이라고 하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다가올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이생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값을 매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와 유혹의 강점기인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성경 중간에도 창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야 65장의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1:1에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도 하늘과 땅, 이사야도 하늘과 땅, 요한 계시록도 하늘과 땅, 성경 66권의 처음과 끝이 의도적으로 하늘과 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처음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처음 창조가 아담의 죄로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끊임없이 작업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수고가 이사야서에서 얼핏 엿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라는 험난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깨어진 창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고국에 귀환했는데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어느 세월에 폐허된 예루살렘을 제대로 복구할 수 있겠습니까? 실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사야 65장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작업하고 역사할 터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장수하고, 안정된 가정생활과 평화롭고 정의로운 삶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열심이십니다. 주로 이스라엘의 삶의 터전을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수고가 성경의 면면에 흐르고 있다가 마지막 요한 계시록에서 새 하늘 새 땅이 눈에 턱 보이고 있습니다. 완성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나오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이 한 구절만 보면 완성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완벽한 완성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역사는 늘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해 왔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역사입니다. 결과는 실낙원이었고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이었으며 끔직한 포로 신세로의 전락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욕망의 극대화로 인해 전체 인류의 삶의 터전이 망가져버렸습니다.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이 극에 달했습니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영역이 서로 보장되지 못한 채 그 경계선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전 세계로의 감염 확대였습니다. 교류두절, 경제 마비, 대규모 사망, 문명의 전환을 불러오는 세계사적 거대한 충격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한 민족의 고난과 회복을 이야기 하지만 오늘날은 지구촌 전체의 위기인 만큼 글로벌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떠나는 죄의 역사를 자행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그리하셨지만 오늘날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모으시고 계십니다. 이것을 구원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구원은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급격한 감염 역사를 통해서 경험되듯이 한 개인이나 한 국가만의 국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건강해야 옆 사람도 건강하고, 한 나라가 건강해야 다른 나라도 건강하게 되어지는 모두의 문제입니다. 전 세계의 구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피조세계 전체의 구원이 이루어진 나라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알고보니 지구라는 이 세상의 구원조차도 뛰어넘는 우주적인, 초월적인 구원입니다. 비로소 완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되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 도달하게 됩니다. 새 하늘 새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곁에 계십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곁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3절) 영원하신 하나님과 같은 공간에 있으니 어찌 사망이 있겠으며,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어찌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겠습니까?(4절)
하나님께서는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5절) 아울러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자격을 두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7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서 지상의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셨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는 ‘남은 자’를 통해서 새 역사를 열어가셨습니다. 미구에 이루어질 새 하늘 새 땅의 나라에서는 ‘이기는 자’가 이 나라를 상속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 과연 미천한 우리 인생이 가능할까요? 예수님도 걱정하십니다. 누가복음 13장 24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하셨고 25절에서는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해도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들어갈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인데 못 들어가고 엉뚱한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30절)
실망하지 않으려면, 거절당하지 않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이기는 자’가 되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넓을 길로 가고자 하는데 실은 죄악의 길입니다. 주님은 자꾸 좁을 길로 이끄시는데 이 길이 바로 구원의 길이며 이기는 자의 길입니다.
이기는 자의 진정한 모델이 바로 좁은 길을 가신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잡다한 그럴듯한 소리에 개의치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신 분이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가 쉽지 않은데 성령의 도우심을 생각하면 수긍이 갑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처럼 쏟아지면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식적인 인정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이 세례-요단강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임재해주신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힘이 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은혜의 체험입니다. 그러니 40일 굶주린 후에 광야에서의 집요한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좁은 길을 기꺼이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처절함이라는 좁은 문도 들어가셨습니다. 마침내 부활하심으로 만백성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다 이겨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조그만 문제 하나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새 하늘 새 땅을 맞이하게 되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좁고 유한한 이 땅의 구원을 위해서도 겸손과 절약과 희생을 바탕으로 생명존중, 환경 존중이라는 좁은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 새 땅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좁은 문으로 이끄십니다.
성령강림 절기를 믿음으로 보내는 여러분들은 100% 이기는 자가 되어서 완성된 구원의 주역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