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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6-1) - " 우둔한 마음을 넘어서는 복음 " / 한성수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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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6-1) - " 우둔한 마음을 넘어서는 복음 " / 한성수 목사

관리자 2020-07-10 (금) 10:21 4년전 1975  

본문) 28:11-31, 16:15-20, 3:10-4:11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간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행적을 소개 합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령이 임함으로 얻게 되는 권능은 대단하여서 성령강림이 있었던 오순절에 베드로가 행한 설교는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회심한 삼천명의 믿음의 백성들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이루게 됩니다. 이제 베드로에 이어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삶은 사도 바울에게로 넘어갑니다. 바울 역시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전도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혹독한 핍박과 박해를 받게 됩니다. 바울의 마지막 소망은 소아시아 지방을 넘어서서 지중해 건너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피고소인의 신분으로 로마의 가이사 법정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중해의 악명 높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바울이 탄 배가 침몰 직전의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를 통하여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27:2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로 향하는 험난한 뱃길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바울로 하여금 피고소인의 신분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신서의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도행전 2811절의 석 달 후는 로마로 향하던 바울의 배가 파선 직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낸 것을 말합니다. 석 달 후, 겨울 항해의 위험을 피하고 나서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민가에 머무르도록 허락을 받았는데 이는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선 로마의 유대인 중에서 높은 사람들(28:17)을 청하였는데, 좁은 셋집이라는 공간의 한계로 날짜를 정하여 사람들을 오게 하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예수였는데 이미 예언서의 말씀을 인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이라 바울은 그들에게 강론형식으로 복음을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로마의 유대공동체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로 나뉘어 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믿거나 믿지 않았다는 그 믿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믿음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설령 믿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가는 통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이사야 69-10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강퍅한 마음을 가진 유대인들의 믿음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28:24-28) 우둔한 마음을 가진 유대인, 귀는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더 이상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 유대인들은 이미 그들이 익히 알고 있었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는”(28:23)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까? 배타성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의 전유물이라는 배타성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가 필요 없고 모세의 율법만이 소중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림자요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들은 돌 판에 새겨진 법조문에 매달렸습니다. 할례 없는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조차도 율법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요나 역시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진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선지자라는 직분을 붙이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요나는 이웃 나라의 구원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습니다. 구약의 본문은 요나의 이러한 심정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죄 범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서 금식과 더불어 회개하니 하나님은 진노를 멈추고 재앙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요나는 하나님께 항명합니다.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4:103) 우선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갔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바다에 던져지는 위험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생명을 구하게 된 그 은혜와 자비는 자신에게만,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백성에만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이방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베풀어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배타적 믿음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현장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수백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그들의 전유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권한다는 것은 이 배타성을 깨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이 전해지는 공간과 대상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6:15-16)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누가 믿던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모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온 천하 만민에게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음이 우둔하여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와 보아도 알지 못하는 눈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구원을 제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배타적 혹은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우리만의 하나님을 외쳤던 것처럼, 요나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니느웨의 구원을 싫어하고 극구 반대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나의 믿음 안에 가두고 제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복음은 우리만의 하나님, 나만의 하나님을 외치는 자들을 떠나서 이방인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배타적 신앙으로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28) 나는 뼈 속 깊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적 고정관념에 빠질 때, 하나님의 구원은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할례 받지 않은 미개한 자라고 멸시하였던 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구원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혔던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회개의 영으로 그들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혜는 자유로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사람이 정한 이기심의 경계 곧, 지역과 이념과 피부색을 초월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라기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는 말씀이 누룩처럼 번져 나가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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