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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후(12-1) -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절제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2-08-26 (금) 15:27 2년전 939  

본문) 잠 16:1-9, 고전 9:19-27, 5:27-37 

 

1) 강자의 자유와 약자의 희생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그리고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33번이나 언급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최근 워딩을 주의해서 들으면 이는 아주 명백하게 들립니다. ‘각종 규제철폐’, ‘기업하기 좋은 나라’, ‘자유주의 시장경제’, ‘탄력적 근로시간제그리고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의료민영화등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모든 규제를 철폐하여 모두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돈 벌어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부의 역할도 최소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각자 알아서 살아갈 방법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최근 정부의 코로나 방역대책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과학방역이라고는 말은 하는데 각자가 잘 알아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는 길을 찾으라는 식입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정책인 것입니다.

일면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항상 규제가 없는 자유의 세상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사실 강자들을 위한 통제되지 않는 자유에는 반드시 약자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자들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힘을 휘두르게 되면 결국 다치는 사람들은 약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강자들의 힘을 일정부분 규제하여 약자들도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본성적으로 많이 가지려는 욕심, 높아지려고 하는 욕심, 편해지려고 하는 욕심 등 끊임없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 욕심은 사회적 규범에 의해 통제되어만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아수라장(阿修羅場) 이 돼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통제는 당연히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무겁게 가해져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만들어진 이런 사회적 조절장치를 다 풀어버리겠다니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염려됩니다.

 

2) 복음을 위하여 절제

서신서 말씀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으로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유보하며 절제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혹이라도 교회에 누가될까봐서 조심하면서 자기가 직접 일을 해서 생활비를 마련해 쓰며 자비량(自費糧)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일각에서는 바울의 이런 마음을 몰라주고 오히려 바울이 사도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생계비를 만들어 쓰며 사역한 것이라고 하면서 바울을 폄하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감당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전한 복음이 훼손될까 염려해서 9장 앞부분에서(1-15), 자신이 다른 사도들같이 사례를 받으면서 사역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곧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19-27)을 통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절제하면서 모든 사람의 종처럼 섬긴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을 얻고자(구원하고자) 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하고, 율법 아래에 있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해서 그렇게 한 것임을 말합니다.(20-21)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해서 자신이 약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절제한 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들을 들추어 경기에서 상을 받으려는 사람은 철저하게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25절에서 절제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바울 사도의 자세를 잘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와 같은 논리를 말합니다. 고기를 먹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고기를 먹는 문제가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하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813)

89절에서 바울은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믿음입니다. 복음을 위한 절제인 것입니다.

 

3)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구약 본문 잠언서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겸손하게 할 것을 권면합니다. 지혜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합니다.(2)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문제없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은 자유롭게 하며 어떤 생각을 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은 그 행위의 원인이 되는 마음까지를 살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절제된 깨끗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서 악을 떠나 살 것을 권면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경영곧 마음의 관리를 바르게 하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마음을 지키라

복음서 말씀은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상기시키시면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17절부터 48절까지 말씀에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인들이 율법을 알기는 하지만 그 이해와 실천에 있어서 지극히 문자적으로만 알고, 형식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말씀의 정신을 바로 깨닫고 실행할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의 준수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만 문제가 없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했지만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형식의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내면적 동기자체가 우선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살인하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의 내면적 동기가 되는 미움을 마음에 품는 것과 살인을 실행에 옮긴 것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어서 미움을 품는 것만으로도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셨고(21-26),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문제없는 것이 아니라 간음의 내면적 동기가 되는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 간음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음욕을 품지 말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맹세에 대한 가르침도 율법에서는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비해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35)고 아예 못을 박아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그 근본을 차단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순식간에도 하늘을 나르기도 하고, 지옥에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생각은 우리들의 행동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근원적으로 그런 잘못된 마음을 품지 말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절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절제된 말과 절제된 행동이 필요한데 더 나아가 절제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맺음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23절에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세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절제를 통해서 다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절제는 멈추어야 하는 곳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했다고 했습니다. (고전 9:12)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절제할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특별히 힘을 가진 자들은 무엇보다도 절제를 잘 해서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도록 삼가고 또 조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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