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31:12-17, 갈 5:1-15, 마 12:9-14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져야할 짐이 많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다닙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정규수업 외에, 방과 후 학교가 있고, 기본으로 영수학원 다니고, 태권도 음악, 웅변, 미술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세계에서 가장 과중한 학업의 짐을 지고 삽니다. 대학도 지금은 취업준비학교가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직장인이 되면 더 무거운 짐이 기다립니다. 부모들의 짐도 많습니다. 고등학교나 대학만 졸업하면 알아서 독립하는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결혼할 때까지 헌신하고 결혼 후에는 손주들 뒷바라지 하고 결혼하지 않는 자녀까지 평생 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덴동산은 자유의 동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권한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계명은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권한과 자유를 내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사용할 때 우리는 죄와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자유를 위한 율법(출31:12-17)
하나님은 구약본문 출31:12-17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준수를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시내산에서 10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고(20-23장), 이어서 7일 동안 모세를 시내산에 머물게 하시고 40일 동안 성막법을 주셨습니다.(출24:12-31:11) 그리고 율법과 성막법을 다 주신 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안식”이 모든 율법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의 창조를 다 마치신 후 안식하셨던 것처럼 모든 계명과 율법을 다 주신 후 안식을 누리라 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자유를 주는 것이니까요!
안식일은 인간을 얽매게 하는 일과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합니다.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14절)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은 일의 노예, 직장과 사업의 노예가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안식일은 경제활동을 금하고 ‘아무것도 파괴하거나, 건설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날이며 “존재 이외의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책을 읽고,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사랑을 하는 자유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안식일 법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14-15절) 오직 세상의 먹고 사는 일,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함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신령한 은혜를 받아 인간의 욕망을 극복하고 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인간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쉼을 주는 날입니다.(17절) 세상에 살면 숨이 막힙니다. 인간관계에 숨이 막히고 직장생활, 가정생활에 숨이 막힙니다. 그냥두면 숨 막혀 죽습니다. 숨 막히는 군대 생활하던 사병도 휴가 나와 숨 좀 쉬어야 살 수 있습니다. 숨 막히게 시집살이 하던 며느리도 친정에 가서 숨 쉬는 날이 있어야 삽니다. 안식일은 숨 막히게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성령의 바람으로 숨 쉬는 날입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쉼을 주고, 기도는 우리에게 새 힘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이곳이 율법이요 계명의 본질입니다. 도로교통법을 잘 지키는 것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서로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참 자유를 얻는 방법입니다.
결박하는 율법, 해방하시는 예수(마12:9-14)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주신 율법을 마귀는 인간을 결박하는데 사용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자유와 쉼과 회복과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주신 안식일을 오히려 인간을 결박하고 인간을 얽매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에 사람들을 치유하는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9-10절) 예수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너희 양이 빠졌다면 건져내지 않겠느냐?”(11절)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12절) 그렇습니다. 안식일 법은 인간을 얽어매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얽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케 하려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자유의 율법을 오히려 인간을 얽매고 지배하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병자들, 장애인들, 거지들, 세리들, 창녀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성전에 갈 수 없고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거지들은 얻어먹을 수 없습니다. 그날은 모두 쉬는 날이라 가난한 자들은 굶어야 합니다. 안식일이 병자들에게는 고통이요 가난한 자들에게는 무거운 짐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이요 고통이요 짐입니다. 예수 없는 사람들은 주일이 짐이요, 예배가 거추장스럽고, 기도는 불편하고 힘든 일일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요, 의무적으로 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병자에게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시지 않고 안식을 수여해 주셨고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손을 내밀라!”(13절) 아! 예수님은 안식을 가르치거나 지키게 하는 분이 아니라 안식을 성취하시는 분, 안식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안식은 안식일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락한 본성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와 함께 걸으면 기쁨으로 그 율법을 지킬 힘을 주시고 그 율법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기쁨으로 그 법을 지키고 감격해서 그 말씀대로 살게 하십니다. 예배는 바쁜 현대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힘을 주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을 얻는 시간입니다.
영어는 배우기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영어공부는 짐이 됩니다. 그런데요 영어에 능통한 아빠,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는 영어가 저절로 됩니다. 애쓰지 않아도 수고하지 않아도 쉽게 영어가 됩니다. 그리고 영어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어떤 사람하고도 소통이 되고 어디에 가서도 큰일을 감당할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거운 짐이라고 속이는 마귀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법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게 만드는 육신의 정욕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며 그를 사랑하면 모든 율법이 쉽습니다. 가볍습니다.(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의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갈5:1-15)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지킬 수 없는 타락한 사람에게 짐입니다.(1-4절) 그런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달라집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그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기쁨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하십니다. 딱 우리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으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죄로부터, 마귀로부터, 죄와 사랑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아 기쁨으로 주의 법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값진 자유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출20장은 온 율법의 중심인 십계명입니다. 그리고 21장부터는 여러 상황에 따른 법규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 첫 법이 히브리 노예법입니다(출21:2-6). 히브인 중에서 종 된 사람은 6년이 되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종으로 들어올 때, 단신으로 종이 되었다가 주인이 준 아내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으면 종 혼자 단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여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면 종은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고 돌아와 자원하여 가족과 함께 종이 되는 길을 택합니다. 그 때 주인은 그 종을 데리고 문설주 앞에 가서 귀를 뚫었습니다. 그것이 “자원하는 종”입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함으로 오히려 더 큰 자유와 모두를 위한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1995년에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란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영원히 간직되어야 할 영화”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이 영화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영화입니다. 은행의 부 지점장인 엔디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내와, 아내와 바람피운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온갖 폭력과 비리와 음모가 난무한 쇼생크교도소에서 세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교도소장 “노튼”입니다. “노튼”은 자신의 권한으로 재소자들을 이용해 자기 욕망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은행원이었던 엔디를 이용해 자신의 검은돈을 세탁하고 재소자들의 직업훈련을 이용해서 받은 뒷돈으로 만든 비자금을 관리하게 합니다. 어느 날 엔디가 토미라는 죄수에게 아내와 바람피운 사람을 살해한 진범이 다른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교도소장은 엔디의 무죄석방을 우려해 토미를 죽입니다. 그러나 엔디의 탈옥으로 그의 죄는 드러났고 모았던 검은 돈은 엔디가 찾아가면서 자살하고 맙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은 교도소생활에 기가 막히게 잘 적응하며 사는 장기복역수 “레드”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은밀한 거래를 하며 삽니다. 재소자들이 꼭 필요한 물품을 교도관들을 통해 몰래 구입해 주는 대신, 재소자들에게는 큰돈을 받아 챙기고 교도관들에게는 뒷돈을 쥐어주는 식입니다. 그러나 가석방으로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억압된 삶을 평생 살아 온 레드는 그 자유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자처럼 삽니다. 마지막 주인공 “엔디”는 그들과는 반대로 온갖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고 자유를 찾으며 자유를 창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교도관들의 세무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고, 글을 모르는 수감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6년 동안 끊임없이 주 정부에 편지를 써서 마침내 주 정부의 허락과 지원을 받아 교도소도서관을 운영합니다. 일과가 끝나고 얻는 자유의 시간을 이용해 돌을 깎았습니다. 레드에게 조그만 돌망치를 구해 돌을 수없이 두들겨 체스를 깎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석으로 된 감방 벽에 수감생활 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돌망치로 새기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돌망치를 대면 금방 부스러지는 암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림 한 장을 벽에 붙이고 천둥번개 치는 날이면 그 벽에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의 자유를 억압했던 쇼생크교도소를 벗어나 참 자유를 얻습니다.
오늘은 8. 15 해방 77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지 77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억압과 고통에 결박당하며 살아갑니다. 환경에 예속되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거짓된 환상에 매어 삽니다. 참 자유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법에 순종할 때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자유와 소망의 삶을 살기를 시작하는 자에게 참 자유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