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슥 4:1-14, 고전 12:1-11, 눅 17:5-10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언 중 하나가 “데드 크로스”입니다. 여론 조사를 해 보니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를 넘어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신경 쓰지 않는다” 말합니다. 언뜻 오직 주어진 일에 충실하겠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언뜻 국민들의 우려와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정치지도자, 대통령의 본질이 무엇인가?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합니다. 민주공화국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국가 원수 및 대표에 의하여 국정이 운영되는 나라”로 간략히 요약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민이 선출하여 국민들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존재인 것이죠. 그런데 그 대통령이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성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단 신앙요리 문답에는 사람의 목적, 성도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삶 전체를 바쳐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 쉬운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살피게 될 세 본문의 말씀이 한 가지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말씀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증거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어떤 일들로 역사하시는지를 오늘 바울 사도는 일일이 나열합니다. 그 나열된 것만 9가지나 될 정로 성령의 은사는 다양합니다. 또한 여기에 나열된 것 말고도 또 다른 성령의 은사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왜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나열했을까? 성령이 인간을 통해 만들어내는 역사가 많고도 다양함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은사는 그 능력의 중요성, 무게감에 따라 등급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은사를 높은 은사와 낮은 은사로 나누고, 누가 더 훌륭한 사도인가를 두고 다투고 분쟁했던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정작 그 놀라운 은사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은사를 인도하신 성령도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은사의 본질은 경쟁이나 서열화가 아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점을 오늘 바울 사도는 지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선언하면서 오늘 말씀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곧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요, 복이라 것입니다. 문제는 그 특별함은 받은 존재들이 오히려 그 복을 사사로이 사용함으로 재앙이 되게 만들고 있음을 바울은 지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불의한 일을 행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겪은 갈등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랑하고 주장하는 그 모든 은사를 주신 이가 한 하나님, 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재능을 주사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고 하셨는데 정작 그 은사를 받은 인간들이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보다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니 복이 변하여 재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준 은사를 하나님의 뜻에 맞춰 실천하라 권면했던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통하여 구원의 영광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데 앞설 것이 아니라 겸손히 그 뜻에 맞춰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열매는 갈등과 분쟁이 아니라 화평과 협력이요, 몸 된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가랴서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받은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 후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선지자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완수를 예언한 인물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스가랴는 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성전 재건의 과업을 완수할 인물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성전 재건을 주도하던 스룹바벨의 상황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입니다. 주변 총독들의 방해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스 4:1~10, 5:1~6)로 어려움을 겪던 스룹바벨은 고레스왕의 조서가 발견됨으로 일사천리로 성전 재건을 완수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 중에 스룹바벨이 흔들리지 않고 성전 재건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돕고 인도하셨다는 점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6절을 통해 바로 그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스룹바벨이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동시에 오늘 말씀은 스룹바벨이 총독이라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능력만으로는 성전 재건을 완수할 수 없었다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조합니다. 이는 이 위대한 성전 재건을 위해 기름 부어 세우신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리더십이 거룩한 성전 재건의 사명도 이루게 하셨다는 것이죠. 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통해 큰 부흥의 역사로 인도하셨던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합니다. 결국 성령의 은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오늘 구약의 말씀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성령으로 완전히 변화 받은 존재들은 자신의 본분이 무익한 종이라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요구로 시작됩니다. 자신들의 사역에서 능력을 행하지 못하고, 자꾸만 실패하자 제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믿음이 적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는 믿음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유무의 문제, 진실됨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었느냐?’는 반문 같은 오늘 예수님의 지적은 제자들의 믿음에 대한 의구심으로 다가갑니다. 이는 혹시 자랑하고자, 주목받고자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게 하는 것인데, 그것을 사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문입니다. 결국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자신의 허황된 욕망을 채우려는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종으로 부름 받은 사도들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지적합니다.
종은 대가나 칭찬을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묵묵히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종이 주인이 시킨 일을 했다고 칭찬을 요구하거나, 대접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종은 종으로서 주어진 일을 감당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으로야 칭찬도 받고 싶고, 세상의 인정도 받고 싶고, 사람들의 주목도 받고 싶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종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종으로서 부름 받았으면 주어진 일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영광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엇을 더 바라느냐는 반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종은 대가를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사명에 충실한 존재라는 것이죠. 그 다음의 보상이나 칭찬은 종의 영역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상을 주든, 벌을 주든 종된 우리들은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믿음을 더하소서 요구했던 제자들을 향한 지적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능력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는 우리를 영화롭게 하려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의 실패와 좌절은 그들의 생각과 의도에 문제가 있었다 것입니다. 처음부터 종으로서의 본질을 기억하며 종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다면 그들도 예수님과 같이 놀라운 이적과 능력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말씀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로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 하나를 찾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본질이 무엇이냐? 되묻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종으로 부름 받았으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무겁게 질문합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증거합니다. 동시에 성령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며, 그 뜻에 따라 은사를 주사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게 하신다 증거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고 충성하는 우리 행동의 대가나 칭찬을 구하는 것은 종 된 우리들의 본분이 아니요 그저 무익한 종으로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드려질 것임을 오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우리 교단 신앙요리 문답에서 가르치고 있는 인간의 목적, 성도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첫째도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갈 때, 세상은 몰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종 된 우리들의 본질입니다. 오늘 주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귀한 뜻 마음에 깊이 새기고, 세상에서 기억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는 무익한 종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