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딤전 6:6~19, 출 32:1-4, 눅 16:1-13
1. 오늘은 한 해의 전반기를 보내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7월의 첫주일로, 그 동안의 우리 삶을 지키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2년 동안의 코로나 팬더믹은 우리를 움츠리게 하고, 우리의 발길과 눈길을 붙잡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주님의 뜻을 확인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전반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은 크기만 합니다. 하나님과 자연의 경고와 같은 코로나와 기후변화 속에서 우리의 허상과 교만과 탐욕을 깨닫게 해 주시고, 그럼에도 우리의 삶을 지켜주셔서 지금의 우리 가정들과 교회 그리고 우리사회가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가게 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수고하고 땀 흘리는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우리의 생명을 지켜나가는 곡식을 추수하게 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주님께 드립시다.
2. 제가 어렸을 때 고향에는 여러 가지 놀이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땅따먹기였습니다. 땅따먹기는 작은 유리나 사금파리(사기릇이 깨져 생각 작은 조각)를 잘 갈아 손으로 쳐서 멀리 가게하고 선을 이어서 누가 땅을 많이 차지하느냐 놀이였습니다. 저도 한 실력이 있어 손이 시커먼 할 때까지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고생하며 땅을 많이 차지하는 선을 그어놓지만, 해가 떨어지면 ‘얘야, 밤 먹게 들어와라’, 하면 놀던 땅 따먹기를 그대로 놓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그 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지만, 그대로 놓고 뒤를 돌아보며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3.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땅따먹기를 하듯이 세상에서 땀 흘려 일하고, 수고하지만, 해 떨어지는 저녁과 같은 인생의 노년에, 아니 어느 누구도 모르는 그때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대로 놓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 속에서 떠나야 하는 인생이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때는 재산이 많고, 적음이, 명예가 있고, 없음이, 권력이 있고, 없음이 전혀 차별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4.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물질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돈, 물질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돈을 아예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나, 죽은 사람들입니다. 돈, 물질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들은 구분이 되어지는데, 물질이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하고, 물질, 돈이 적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구분합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부자로 살아가는 것은 악한 삶이고, 가난한 자의 삶은 선한 삶이다, 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가난한 자도 삶이 악한 삶을 살 수 있기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상은 물질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물질이 삶의 목표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목표를 향하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그 뜻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 치닫고 있는 우리 시대입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재물의 성공이라는 인생의 바벨탑을 향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며, 경제적 약자를 짓누를 수 있는 경제적 강자가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세상은 점점 메말라가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간 탐욕의 뿌리인 재물, 돈의 문제는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역사가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동일한 인간의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문제입니다.
6.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6;13)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듯이, 우리 인간은 재물을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재물을 신과 같이 섬긴다는 말입니다. mammonism 배금주의입니다. 우리 신앙의 입장에서는 재물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은 재물, 다시 말해 돈 자체가 우상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것, 돈을 삶의 우선 순위 첫 번째로 두는 것은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7.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 삶의 우선 순위 첫 번째에 두는 것인데, 물질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 첫 번째가 되어 섬기는 것은 분명한 죄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고, 재물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재물이면 재물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갈멜산에 모인 아합왕과 모든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새번역은 더 선명하게 말합니다. “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이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십시오.”
8.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초대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목회의 스승인 사도 바울이 믿음 안에서의 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마음을 품지 말고 살자고 합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람이 부해지려고 하면(삶의 목적이 되면)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모르고, 악한 영이 거기에 쳐 논 미끼에 걸려들어, 각종 미혹을 받게 되고, 돈의 종이 되어, 믿음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세상의 각종 근심을 끌어안고 사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강한 존재라고 한다면, 부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시험과 올무와 해로운 욕심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데,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과 흔드는 것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약함 때문에 악한 존재와 악한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9. 그 대신에 대안적인 삶을 믿음의 지혜로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합니다.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될 때,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고, 믿는 자들이 원하는 삶입니다. 부자로서의 삶을 꿈꾸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성실한, 신실한 삶으로 얻어진 것들을 가지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진정 경건한 삶이요, 복된 삶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10. 그런데 사도 바울은 부해지려고 하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재물에 대하여 욕심을 갖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자족하면 살아가는 것이 너무 너무 힘들기에 “싸움, 선한 싸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신앙적 권면을 합니다. 그리고 “부해지려고 하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과의 그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간절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길 때, 구원받은 자의 삶,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과 탐욕의 시대에서, 재물, 물질, 재물을 위한 권력, 돈을 위한 명예가 없이도 이 세상에서 진정 복되고 평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며,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소명을 받았습니다.
11. 출애굽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 안에서 출애굽을 하여 시내산까지 왔습니다.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 그 분이 주실 십계명을 받는 40일간의 역사적인 때를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형 아론에게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를 대체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보여주셨던 능력과 사랑과 약속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금고리를 가지고 만든 것이 송아지 형상이었습니다. 그 송아지 형상을 “자기들을 인도할 신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로 황금 송아지가 하나님을 대체할 보이는 신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황금상, 우상숭배의 시작이었습니다. 바알신과 풍요의 신, 다시 말해 재물, 돈의 상징인 황금 송아지는 그 후 이스라엘 역사에 불행한 불씨가 되었고, 우상숭배로 인하여 끝내는 여호와 신앙이 무너진 북왕국 이스라엘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이 황소상은 미국과 세계의 경제 중심지인 뉴욕의 월 스트리트 광장에 명물로 자리잡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자기에게 임할 돈과 번영의 축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돈과 물질을 찾는 세상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12.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 재물, 물질이 우리에게 행복, 평화를 줄 수 있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편리함은 줄 수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주지 못합니다. 물질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그 물질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언제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재물, 물질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을 이루는 탐욕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물질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우리는 물질과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는 청지기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재물과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