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32:22-32, 엡 3:14-21, 마13:44-52
1) 코로나 이후의 신앙 진단
금년도 중반을 돌아서는 6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아직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사태의 긴 터널을 벗어나는 것 같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는 없지만 한숨은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많은 예배와 모임이 중지되고 교회 내의 공동식사도 할 수 없어 여러 가지 교회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교회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거쳤는데도 교회는 간절함이나 진지함이 보이지 않아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라는 핑계거리가 우리를 느슨하게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우리 스스로의 믿음에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고, 고난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는데 우리들은 아주 작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습니다. 지금 교회는 집회를 회복하는 것보다 믿음을 회복하는 더 중요한 과제 앞에 있습니다.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해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2)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를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이제 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더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다시 세워야합니다.
2)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이긴 사람
구약 본문 창세기 32장 말씀은 야곱의 귀환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곱은 20년 전 그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에서 대신 축복을 받고, 그를 죽이려는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했다가 20년 세월이 지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많은 가족과 재산을 모아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아직 야곱에 대한 분(憤)을 다 풀지 못한 형 에서가 고향에 그대로 있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얍복강을 건너지 못하고 먼저 가족들과 모든 소유를 건네고 자신은 얍복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아마도 만감이 교차하며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밤을 지샜습니다. 야곱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이 열리게 될 미래를 전망해보면서 자신을 추스릅니다. 자신의 과오로 얼룩진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와 진지하게 맞서 자기 정립(定立)의 시간을 갖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사는 길은 과거의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탐욕적 자세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진정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벌이게 됩니다. 야곱은 밤새 그 천사를 붙들고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간청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냥 안 되면 말고 되면 좋고 하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놓아달라고 하는 천사의 말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을 수 없습니다.”고 하며 간절하게 매달립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며 야곱을 떼어내려 했지만 야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부서졌습니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과거의 야곱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신대 김이곤 교수는 이 장면을 설명하며 야곱의 철저한 <자기부정>이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 교활한 야곱은 죽고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야곱의 중생(重生) 곧 거듭남입니다.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천사는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만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야곱의 간절함을 보시고 져주신 것이죠. 흡사 아들과 아들이 씨름을 하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져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야곱의 간절함을 보시고 져주신 것입니다. 저는 야곱의 간절함이 바로 믿음이라고 봅니다. 야곱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천사에게 매달렸던 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자신이 새로워질 수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야곱의 간절함은 야곱의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간절함이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간절합니까? 인생을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간절함을 가집시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대해 진지함을 갖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내 신앙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집시다. 간절함이 믿음이고, 이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3) 보화를 발견하고 자신의 소유를 다 판 사람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비유 모음집입니다. 오늘 본문은 “감추인 보화”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천국을 발견한 사람이 그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천국을 얻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깨닫게 된 사람은 그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일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44절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고, 45절에서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관심해야할 말은 ‘다 팔아’라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나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든 것을 희생해도 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도 했고, 자기들의 모든 재산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그만한 희생을 해서 얻을 가치가 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간절함’을 가진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습니까? 하나님나라를 위해 얼마만한 간절함을 갖고 있습니까? 그 간절함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라고 봅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에베소서는 바울사도가 감옥에서 자신이 3년 동안 섬겼던 에베소를 위해 쓴 편지입니다. 자신이 3년 동안이나 섬겼던 사람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 자상한 권면을 하고 있는 모습이 서신 전부에 걸쳐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에베소교회 교우들을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간절함은 그가 15절에서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는 말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서서 기도하지만 엎드려 기도한다는 표현은 ‘간절함’과 ‘복종’을 다짐하는 마음이 담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 사도의 간절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 교우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여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충만한 상태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의 간절함이 오늘 본문의 행간(行間)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극히 크게 성장하는 것이라든가 아니면 교우들이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라든가 또 어떤 물질적인 봉사를 크게 하는 것 등을 바라지 않고 다만 소박하게 교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로 알기를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옥중에서 사랑하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는 바울의 마음이 절절하게 제게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절실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간절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간절함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간절함이 배어 있는지를 살펴봐야합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지금감옥 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바울의 간절함을 받으셨으리라 확신합니다.
5) 맺음
간절함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좀 더 간절해져야 합니다. 더 절실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삶 전부를 걸었습니다. 절대로 뒤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간절함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