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54:1~8, 시편 13:1~8, 로마서 6:15~23, 누가복음 19:1~10
1. 지난, 6월 4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 6시경에 김동인 권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밤 9시 2분에 곽영유 권사님 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예전에, 2박 3일의 장례식을 다 치루고 나서 집에 돌아왔는데 또 다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일주일 내내 장례식을 치룬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두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 일정이 겹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입관하는 날이 주일이고, 그날, 주일 오후엔 남신도지구회가 우리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남신도지구회 모임에서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바뻤습니다.
2.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곽영유 권사님은 화장장 예약이 안되는 통에 4일장을 치렀습니다. 저는 4일 동안 이어진 두 분의 장례식을 마치고, 한 주 내내 피곤하고 지친 몸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김동인 권사님과 곽영유 권사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계신 두 분을 믿으며, 우리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장례식에 가면 꼭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생, 천국! 아멘이십니까? 천국 영생이 무슨 말이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증거가 있냐?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신앙과 믿음의 문제는 과학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4.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아서,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함께 있고 싶아서 .... 하지만, 과학은 몸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정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몸에 호르몬이 분비되고 사랑에 빠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에 관한 과학적인 설명이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천국과 영생은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이칙사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5. 물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임사체험을 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경험 역시 과학으로는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증언만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성경은 믿음의 증언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성경책을 믿음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6. 이사야서 54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을 다섯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너를 지으신 이를 가리켜 만군의 여호와라 하고, 온 땅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하고, 네 구속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습니다. 온 땅의 하나님이 너를 지으셨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그 분은 너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너의 구속자라. 이 성경의 증언을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며, 거룩하신 분으로 만군의 여호와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7.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나라도 영원한 것이고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어떻게해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는 몸이 죽어서 썩는다고 해서 죽거나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흙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생명이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8.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생명을 내꺼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참 어리석은 것이, 내가 가지고 있고 내꺼하고 말하면서 내 맘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고 싶을 때 죽고, 살고 싶으면 더 살고 이게 맘대로 되면 진짜 내꺼지요. 내 맘대로 하니까. 근데 이건, 생명은 맘대로 못한다는 겁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못하니까 내 것이 아닙니다. 죽었다가 맘대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9. 여기서 하나 더!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입니다. 몸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생명이 몸속에 있을 때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생명이 육체를 떠나면 생명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생명이 우리 눈에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몸을 떠난 것입니다.
10. 생명은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숨입니다. 이 생명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그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것이며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는 생명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밖에서 슬피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생명이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을까? 우선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잘 믿든 못믿든! 100점이든 50점이든 30점이든 어쨌든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믿음이 뭐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고. 주님으로 모시는 일입니다.
11.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9절에서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말합니다.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왜?. 가난한 자에게 자기 소유의 절반을 나누어주었고, 강제로 빼앗은 것을 네 배로 갚는다고 했기 때문에. 맞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일입니다. 세리장이요, 돈 밝히는 부자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변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삭개오는 변화되었고 그 변화의 결과가, 자기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며, 억울한 이들에게 4배의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12. 자 그럼 삭개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로마서 6장 15절에서 23절을 읽어보면 17절에서 죄의 종이 의의 종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로마서 6장 15절은 은혜 아래에 있다고 말합니다. 19절에서는 거룩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2절은 그 마지막을 영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살던 자리를 떠났기에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종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는 사람, 영생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3. 죄진 사람이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일! 이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130편은 이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속량하시리라. 1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삭개오는 기를 쓰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갈급했습니다, 간절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용서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혔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붙잡고 살아온 돈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붙잡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붙잡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돈이 있습니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고, 나한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4배로 갚아준 것입니다.
14. 내가 본래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고 있으니까, 이제 이걸 아니까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알고,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알고 사는 것! 이게 영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우리는 질문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영생의 길에 들어섰는가? 아니면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가? 죽음의 문을 넘어섰다는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15.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 너머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지금 여기서 오늘부터라도 영생의 길을 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용서받은 사람으로 거룩의 길을 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나눔의 손길로, 배려하고 기다리며 손을 들어 축복하고 감사하는 사람! 우리 구암교회 모든 분들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