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 30:15-20, 갈 5:16-26, 막 4:1-20
오늘은 성령강림 후 첫째주일이며 총회선교주일입니다. 우리 교단은 그동안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지향해 왔습니다. 선교는 단순히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확장이며, 선교는 교회에 예속된 한 부분이 아니라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선교는 하나님이 친히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나, 어떤 공간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첫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창조세계가 곧 하나님의 나라는 아닙니다. 그곳에 한 동산을 구별(창설/ 창2:8)하시고 그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善惡果)를 두셨습니다.(창2:9) 그리고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 즉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열매는 임의로 먹게(창2:16) 하셨지만 다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17절) 그 계명이 지켜지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고 자기 욕심대로 선악과를 소유함으로 참람하게도 자신이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세계의 유일한 소망은 인류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대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입니다.
말씀으로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신30:15-20)
창조의 세계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듯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를 얻고, 가나안 땅을 자신의 구별된 영토로 삼았다고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계명이 지켜지고 준수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Commandment)”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본문 신30:15-20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생존하여 번성할 것”(16절)이지만 만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망할 것”(17절)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고 정욕대로 세상의 유혹을 따라 살다가 망했고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출애굽을 통해 새 나라를 세웠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주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 때 이스라엘은 다시 강대국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불행은 자원의 고갈이나 우리의 욕망을 성취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씨, 수용하는 마음(막4:1-20)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결실을 거두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막4:1-20) 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가운데 살지 못합니까? 타락한 마음(밭) 때문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 농부가 매우 서툴러 보이고 미숙해 보입니다. 길에도, 흙이 얇게 깔린 돌밭에도 가시덤불 위에도 뿌리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어요! 흙이 얕고 돌이 많은 박토에 농사를 짓는 이스라엘은 우리의 농사법과는 다릅니다. 겨우내 묵혀두었던 거칠고 메마른 땅, 곡초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굳어진 땅, 황량한 광야 같은 곳에 먼저 씨를 이리저리 파종해 놓은 다음에 그 뒤를 따라 쟁기로 밭을 갈고 돌을 고르고 가시떨기를 베어버리고 옥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가 있는 곳에도 씨를 뿌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마치 겨우내 버려둔 이스라엘의 땅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해 보세요! 전혀 관심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고 뿌리내릴 만한 마음이 없어요!
길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우마차로 물품들을 운반하며 하루 종일 쉴 새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흙이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다져져 씨앗하나 받아들일 수 없는 굳은 흙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평생 먹고 사는 일에 정신팔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돌밭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납니다. 그런데 흙 아래에 큰 바위나 돌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드려서 믿음의 싹이 나지만 “자기”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아집,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워낙 견고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쉽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 굳어진 자아가 깨지지 않는 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습니다. 가시떨기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싹이 자랐지만 “염려, 욕심, 유혹”의 가시떨기가 기운을 가로막아 죽게 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염려, 욕심, 유혹”의 타락한 본성을 가진 옛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싹이 나지만 세상욕망과 염려와 유혹에 질식합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같은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싹을 틔우는 옥토(갈5:16-21/ 막4:20)
그런데 옥토 같은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씨를 받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무엇이 옥토 같은 마음입니까? 성령으로 경작되어진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농부는 황량한 땅에 씨를 뿌린 후에 씨 뿌려진 그곳을 쟁기로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가시떨기를 뽑아내어 옥토를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옥토가 된 그곳에 뿌려진 씨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농부의 쟁기질과 손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성령의 돌보심”입니다. 밭은 스스로 옥토가 되지 않습니다. 농부의 손길이 가야 합니다. 성령의 보습이 우리 분주하고, 굳어진 마음, 자기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견고한 마음, 세상 욕심과 우리의 정욕의 가시떨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에워싸서 복음의 말씀을 질식시켜온 우리의 타락한 마음을 만져주셔야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수용하는 옥토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말씀대로 살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고 인격이 되어 주렁주렁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령님은 길가 같은 굳어진 고정관념을 갈아엎으십니다. 율법주의적 고정관념에 고착되어있었던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이방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돌밭 같은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게 하십니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했던 요한 웨슬리가 조지아 선교실패 후 성령의 능력을 받고 오직 하늘의 능력으로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시떨기 같은 육신의 정욕을 이기게 하십니다. 젊은 시절을 육신의 정욕가운데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느 날 그에게 임한 성령의 감동으로 롬13:11절의 말씀을 찾아 읽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타락한 우리 마음을 그의 보습으로 옥토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다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가 몸부림할 때 도우시고 우리가 힘쓰고 도움을 요청할 때 도우시고 기도할 때 역사해 주십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5:16-18)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 나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사역은 천국복음(말씀)을 온 땅에 두루 다니며 전파하시고,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 말씀으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일이었습니다.(마4:23) 교회가 큰 건물을 짓고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온 땅에 가득하게 된다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 이방인의 땅에 전파되고, 말씀으로 교회가 제자들로 양육되고, 말씀으로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곳, 주의 말씀과 계명이 온 땅을 다스리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다른 기가 막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씨 뿌리는 농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씨를 이 땅에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곳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땀 흘려 씨 뿌리고 가르치고 치유하는 수고에 비해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실망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씨를 새들이 주어먹고, 햇빛이 말려 죽이고, 가시떨기가 기운을 가로막는 세력 앞에 절망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고 키우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농부처럼 씨 뿌리는 일을 계속하며 실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의 은총이 함께하셔서 놀라운 결실을 맺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은 아무리 방해하는 대적이 강해도,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씨 속에 이미 하나님 나라를 성취할 놀라운 비밀을 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산술적으로 말하면 결실할 수 있는 가능성은 겨우 1/4밖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성령의 쟁기와 보습으로 이 갈아엎는 순간 그 씨앗 하나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되어 온 땅이 노랗게 익은 수확의 물결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러 한국에 건너온 첫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는 뿌린 수고만큼 반응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실망하는 우리에게 큰 격려로 다가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언더우드의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