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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11-2)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 / 이성호 목사(포항을사랑하는교회)

관리자 2021-08-07 (토) 18:46 3년전 1462  

본문) 에스겔 47:1~12, 사도행전 3:1~10, 마가복음 1:29~39


새천년이 열린 21세기에도 위기와 재앙은 숨 돌릴 사이 없이 인류의 삶을 위협했습니다. 금융위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일본 원전과 경제 도발,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우리를 에워쌓습니다. 마스크는 물론이고 거리두기와 개인 방역과 백신 접종에 따른 불편은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이 나라 모든 국민이 직면한 위험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총체적 재난 중에도 코로나 시대 ‘개신교의 무기력과 무능함’은 어떤 위험보다도 시급한 악성 재난의 상황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비대면 예배를 비롯 갖가지 대응책을 마련한 햇수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회복의 기대조차 아직 요원합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은 사전경고를 묵살한 대가입니다. 오래 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무시했던 것이죠. 


오늘 성령강림후 열한째 주일의 세 본문은 교회(모이는교회, 흩어지는 교회)의 새 지평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1. (겔 47:1-12) - 성전? 하나님이 계시는 곳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성전’의 표상을 무심코 단순히 ‘교회’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이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그 강물이 끼치는 영향으로 낙원 상태가 회복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그 물은 사람이 능히 건넌 수 없는(5절)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 물은 세상을 다시살리는 물이며(8절), 모든 생물이 살고, 각처에 이르러 모든 것을 살리는 물입니다(9절). 또한 각종 먹을 과실나무의 열매가 끊이지 않게 하는 물입니다(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수 강이 흐르는 가정과 일터, 교회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영역인 문화와 정치, 교육과 정신에 이르는, 이른바 ‘죽어가는 세상’이 다시 회복되어야 함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2. (행 3:1-10) - 성전?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곳


회복의 역사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납니다. 구약시대로부터 계속된 예루살렘 성전 기도를 위해 성전 구역으로 들어가는 한 문에서 말입니다. 걸인이 구하는 것과 제자들이 주는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하는 갈급한 그에게 제자들은 일어나 걷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에 따른 반응도 다릅니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 기적으로 여기며 크게 놀라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8,9,10절).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분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나타내시는 순간입니다. 


우리 이야기로 돌리겠습니다. 오늘날 ‘나면서부터 못걷게 된 이’(2절)는 과연 누구일까요? ‘성전 앞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이 사람’, 지금의 어떤 이들이 떠오르십니까? 무엇을 얻을까를 바라보는데, 과거 그와 비슷했던 베드로와 요한이 이제는 거침없이 증거합니다. “나는 당신이 기대하고 원하는 돈(복)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축복)이니, 자 일어나 걸으십시오“(6절). 


날때부터 걸을 수 없었던 이 사람, 그가 바라는 것이라고는 거창한 성공이나 대단한 부가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 그런데 예수의 거듭난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러했듯 ‘본질’을 바꿔 버립니다. 재화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게 합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일어나 걷는 겁니다. 

 

3. (막 1:29~39) - 성전?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 곳  


‘회당밖에서’(29절) 예수님은 투병 중에 있는 한 여자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녀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입니다. 그녀의 병이 낫자 온 동네가 예수를 찾습니다(33).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각종 병으로 시달리는 것에서 낫기 위함입니다. 다급함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주님의 관심과 사역은 진리 선포, 곧 ‘전도’일 뿐입니다(38절).

    

이러한 사건들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는지 다시 거듭 생각할 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목격해야 합니다. 군중들은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가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생수의 강이 다시 흐르게 하십니다. 


이제 세 본문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다루겠습니다. ‘성전에서 스며 나오는 물’(에스겔),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사도행전), ‘회당에서 나와’(마가복음). 모든 사건은 성전 안에 국한돼 있지 않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과 일행들의 행적과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 성전 제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 생수의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4. 영상 예배와 인터넷 뱅킹


아마도 종교 가운데 가장 심각한 난관에 처한 곳은 개신교일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의 교인감소와 재정악화는 모든 교회가 당면한 동일한 문제입니다. 교회마다 비대면 예배와 헌금감소 대처의 일환으로 영상설교와 헌금계좌를 공지함으로써 난관을 타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영상 예배와 인터넷 뱅킹은 이제 주요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안은 교회의 ‘다름’과 기독교의 ‘다름’을 반영하지 못한 급조된 대책이라 하겠습니다. 코로나 시대 교회가 주력해야 할 대책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돈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000년의 기독교 역사와 120년 남짓한 한국교회의 추락과 무속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첫째 요소는 '돈'이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재정보다 교우가정의 재정입니다. 영상예배가 아니라 가정예배의 회복이어야 합니다. 


영상으로 설교를 듣는 것으로, 앉아서 시청을 하던, 누워서 시청을 하던, 설거지를 하며 듣던, 잠자리에서 보던, 단순히 영상을 보고 듣는 것을 예배로 간주하는 근거는 어디서 왔으며, 왜 용인되어야 할까요. 지금까지 갖가지 헌금으로 교회를 섬긴 분들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교우들을 위한 교회로부터의 긴급 지원 소식은 듣기 어렵습니다. ‘헌금 촉구’가 아니라 ‘재정 나눔’말입니다.


수발형 교인을 낚는 어부는 나쁜 어부입니다. 변사(辯士)들이 많은 한국교회에 연봉과 위상에 목을 메는, 탐욕의 아우성을 선동하는 사역자는 나쁩니다. 교인 속박이 아니라 가정예배의 회복을 우선하던 목사님들이 그립습니다. 어렵고 고단하고 시급한 때, 하나님의 형상다운 따뜻한 교회가 그립습니다. 교회 밖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결단하는 교회, 부함을 추구하지 않는 가난하고 불편했던 교회들이 그립습니다.


교회 밖으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십시오. ‘성전’이 곧 ‘교회’(모이는 교회)라는 도식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통한 은혜와 구원하심, 즉 ‘모든 사람이 주를 찾게 되는’(34,37절) 역사의 현장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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