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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6-2) -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 맥추감사주일 / 이태영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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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6-2) -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 맥추감사주일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21-07-03 (토) 09:42 3년전 1397  

본문) 벧후 3:8-13, 습 1:14-18, 눅 17:20-37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무엇보다 첫 열매에 대한 감사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에게 첫 열매를 감사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성경 원문을 보면 맥추절은 원래 꼭 보리가 아니라 일반적인 추수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추수가 모두 끝난 후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첫 열매를 수확할 때 드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첫 열매에 대한 감사는 창조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창조신앙은 이 세상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요, 오직 유일한 실체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요,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첫 열매에 대한 감사는 구원신앙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맥추절이 유월절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 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로부터 49일째가 되는 날을 칠칠절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6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칠칠절이 맥추절입니다. 칠칠절, 곧 맥추절을 세는 출발점이 출애굽을 기억하는 유월절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맥추절은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50일째 되는 날은 오순절이 됩니다. 이 오순절은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맥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오순절에 드릴 수 없으므로 보리와 밀 수확과 수매가 모두 끝난 7월초에 드립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맥추감사를 한다고 할 때, 단지 수확에 대한 감사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초대교회에 임하시고, 성령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령께서 이루어 가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이 갖는 세 가지 뜻의 감사를 깊이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감사,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감사가 모두 이루어져야 합니다. 비록 겉으로 볼 때에는 보리와 밀의 수확에 대한 감사이지만, 그 깊은 곳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감사라는 점을 잊지 마시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진실하고 참된 감사가 이루어지는 복된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주시고, 보리와 밀을 키우며 수확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도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감사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감사의 근본적이며 근원적인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하박국 예언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과 18절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조건이 충족됨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베드로후서의 말씀도 피조세계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창조를 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말씀은 피조세계 속에 매여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 의하면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모두 떠나가고, 풀어지고, 녹아져 없어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베드로후서의 본문 말씀에 의하면 피조세계는 ‘떠나감’(벧후 3:10)으로써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떠나가다’(파렐코마이)는 말은 ‘지나가다, 빗나가다, 사라지다’ 등의 뜻을 갖습니다. 어느 한 곳에 계속 머무르거나,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떠나가다’ 또는 ‘지나가다’는 말은 피조물의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겉으로 볼 때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떠나가고 지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후서의 본문은 하늘이 떠나간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모두 떠나갈지라도 하늘만큼은 영원할 것 같은데, 하늘마저도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늘도 때가 되면 떠나가고, 지나가고,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떠나감’에 이어 ‘풀어짐’(벧후 3:10, 11, 12)도 피조세계의 속성을 잘 나타냅니다. ‘풀어지다’(뤼오)는 말은 ‘해체되다, 깨어지다’의 뜻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풀어진다고 했지만, 피조세계의 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체되다’는 뜻이 더 실감이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해체되고(벧후 3:10), 모든 것이 해체되며(벧후 3:11), 심지어 하늘도 불에 타서 해체됩니다(벧후 3:12).


‘떠나감’과 ‘풀어짐’에 이어 ‘녹아 없어짐’(벧후 3:12)도 피조세계의 마지막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녹다’(테코)는 말도 ‘해체되다, 풀어지다’의 뜻을 지닙니다. 베드로후서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가 때가 되면 모두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피조세계,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간의 모든 감각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피조세계가 어떤 신비로운 뜨거운 불로 인해 해체되어 본래의 모습이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일반적인 피조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 속에는 초대교회가 처해있는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백성들에게 영원한 것으로 군림했던 것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를 하늘처럼 떠받들던 시대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세운 세계의 질서는 영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선포된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하늘처럼 위대해보이던 로마제국도 떠나갈 것이며, 천하무적의 로마 군대도 해체될 것이며, 로마제국이 이루어놓은 막대한 부가 모두 사라져 없어진다는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스바냐서도 세상의 종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세상 권세자들에 대한 심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즉 하나님의 큰 날이 임할 때, ‘용사’라고 불리는 세상의 권력자가 슬프게 웁니다(습 1:14). 스바냐서에 나오는 ‘용사’는 창세기 6장 4절에 가장 먼저 쓰였는데, 강력한 권력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자들의 성읍과 높은 망대를 치시니(습 1:16), 그들의 피가 쏟아지고 먼지같이 사라지며 그들의 몸은 거름 취급을 받습니다(습 1:17). 세상 권력자들이 백성들로부터 모은 온갖 재물로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모든 땅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들어가며, 그들의 무리는 아주 무섭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습 1:18).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 때에 죄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내린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7절과 28절입니다. “노아의 때에 방주에 들어가던 때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갔는데,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으며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노아의 때는 폭력이 난무하던 때였습니다. 창세기 6장 1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포악함이 가득했다는 것은 당시 힘을 자랑하던 권세자들이 힘 약한 백성들을 향한 폭력이 가득 찼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온 땅이 폭력의 죄로 물들고 부패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습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힘이 센 다수의 무리가 약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하는 죄 많은 도시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천사들에게까지도 폭력을 행하려는 죄를 보인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로 가득한 도시를 향해서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내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볼 때에는 무서움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또 한편으로 무서움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상 권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권세자들의 교만과 폭력을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후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과 13절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의가 넘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세상 권세자들의 교만과 폭력으로 죄 많은 세상이 되었지만, 이제 곧 하나님의 때가 시작되면 그 모든 권세가 다 없어지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감사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감사는 과거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지만, 오늘 베드로후서에서 말하는 감사는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고백한 것도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했습니다.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은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미래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로 물든 오늘을 살아가며 은총의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베드로후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속된 것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천년이 하나님의 하루와 같고, 하나님의 하루가 우리의 천년과 같으므로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말고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진실하고 정결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감사와 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참으로 부조리하고 모순이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짓밟히고 있으며, 하나님의 진리가 외면을 당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고, 좁은 길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모든 거짓된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해체되고, 녹아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던 대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온전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고 바로 여기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온전한 감사는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감사임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베드로후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감사함으로, 찬양함으로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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