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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9-1) - " 양보의 미덕??? " / 송종근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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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강림후(9-1) - " 양보의 미덕???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1-07-22 (목) 12:34 3년전 1572  

본문) 왕상 17:8~16, 행 6:1~7, 마가복음 6:30~44


  어릴 때 알게 모르게 세뇌(?)당한 말 중에 ‘양보의 미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조금은 여유 있고, 조금은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양보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자금에 와서는 과연 양보의 미덕이 옳은 것인가? 의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 드러나는 일반적인 현상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먼저 좋은 자리 차지하고, 먼저 빠르게 대응하며, 먼저 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결국 인정받고, 혜택을 누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말하고, 대의를 찾는 것은 마치 시대착오적인 양 취급받고 양보는 약자의 덕목이 아닌 강자의 덕목이라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세태입니다. 잘못을 바로 잡겠다 나서는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가 되고, 세상에 뒤떨어진 존재 취급 받는 현실에서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은 교회 현장에도 존재합니다. 2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감염의 여파로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움츠러들었던 움직임을 펼칠라치면 새로운 감염 확산으로 다시 중지되고 다시 중지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무시하고 강행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입니다. 정부 지침이나 방역상황과 상관없이 마이웨이를 선언한 일부 교회나 단체들처럼 하는 것이 어쩌면 교회를 지키는 현실적인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양보가 미덕이다’ 가르친 사회에서 양보가 손해 보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이웃들의 안전’보다, ‘공익’보다 내 생존과 이익에 집중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 제게 오늘 세 본문의 말씀은 믿는 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살펴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의 말씀은 소위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라 알려진 일화입니다. 이 일화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르밧에 갔고, 그곳에서 한 여인에게 물과 음식을 청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첫 번째 주목할 인물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기는 왕 아합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행위가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엘리야는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사르밧으로 인도하사 그를 지키고 보호해 주셨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주목할 여인은 엘리야가 사르밧에서 마주친 여인입니다. 그녀는 과부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르밧 지역도 가뭄의 여파로 상황이 녹록지 않았고, 오늘 말씀을 보면 엘리야가 방문했을 때 그 집에는 마지막으로 먹을 물과 음식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먹고자 해도 구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먹을 음식을 준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며 그 여인에게 물과 음식을 요구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여인이 음식을 청하는 엘리야에게 지금 자신에게는 마지막으로 먹을 만큼의 가루와 기름 뿐이라는 점을 밝히면서도, 엘리야에게 그 마지막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상황도 최악이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내세우는 엘리야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수용했던 것이죠. 이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하나님을 신실히 섬겼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방 땅에 살던 그녀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며 나를 대접하라 요구하는 엘리야의 요구를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경은 사르밧 여인의 집에서 가루와 기름이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증거합니다. 


  신약의 말씀을 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마가복음의 증거는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약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첫 번째 인물들은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증거하고 그 사명을 감당한 다음 예수님 앞으로 나와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휴식을 주어 쉬게 하셨습니다. 그리곤 예수님 홀로 자신을 따라온 큰 무리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 와서는 ‘모인 무리가 각자 흩어져 끼니를 해결하고 오도록 명하소서’ 청하였습니다. 제자들이나 예수님께서 그 무리의 끼니를 책임질만한 음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요청에 “너희가 먹을 주라” 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을 모두 먹이려면 적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한데 자신들에게는 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제자들이 그들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들을 마을로 보내자 청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그것이 가장 올바른 대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먼저 너희 것을 내놓으라’ 명하십니다. 제자들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자 모두를 앉도록 명령하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 그것을 나누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은 남자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핀 신약과 구약의 말씀은 많은 부분 닮아 있습니다. 먼저 두 본문 모두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떨어지지 않는 가루와 기름의 기적을, 신약에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의 남자가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가 남는 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중요한 공통점 하나는 신약과 구약의 상황 모두 객관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딱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죽을 위기에 몰린 여인을 찾아가 마지막 양식을 달라는 엘리야의 요구가 그렇고, 남자만 오천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어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이 말도 안되는 명령에 사르밧 여인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 했지만, 이내 수긍하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이 놀라운 기적의 출발점이 바로 내 것의 내놓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내 것을 내어주고, 내 것을 양보함으로 놀라운 기적의 마중물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여인은 마지막 양식을 내어놓음으로 기적의 시발점을 만들었고,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음으로 놀라운 기적의 씨앗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 생각했지만, 이내 수긍하고 지금 가진 내 것으로 먼저 순종했더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고, 축복이 되었음을 오늘 성경은 증거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역 원리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조건을 따지고, 환경을 따지고, 계산을 먼저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과 자세를 확인하십니다. 우리가 충성할 준비가 되었는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되었으면 먼저 우리가 있는 것으로 행하라 명령하시고, 그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 대신 하나님을 믿고, 상황과 조건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놀라운 역사와 기적의 결과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성경은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그것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자에게 중요한 것은 내 상황이나 조건,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역사와 기적으로 함께 하신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사역의 원리가 나타나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는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벌어진 갈등의 해결 과정을 증거합니다. 당시 사도들의 적극적인 복음 증거 활동으로 교회는 날마다 회개하고 세례받는 이들이 늘어났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러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급작스런 교회의 부흥으로 사도들의 손길이 세밀하게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일부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소외시키고, 히브리파 유대인들만 돌본다 항변했던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사도들의 대응입니다. 첫째 사도들은 모여 자신들의 사역을 점검했습니다. 그리곤 자신들의 한계와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은 헬라파 유대인들 안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감당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을 택했고,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하여 구제 사역을 감당토록 맡겼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더욱 부흥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6:7절의 증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가만히 오늘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오늘의 위기는 급격한 부흥으로 빚어진 갈등이었습니다. 그 때 사도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확인하고, 본질로 돌아갈 것을 결의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본질인 말씀 사역과 기도에 집중하고, 교회 안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이들을 세워 구제 사역을 감당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한다거나 외부에서 권위 있는 사람을 초빙해서 교회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택하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러자 문제는 해결되고, 교회는 더 큰 부흥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우리가 먼저 살폈던 구약과 신약의 원리와 같이 위기의 때 위기에 연연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과 성령에 충만한 자들을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체적으로 세워 일을 감당케 하니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사르밧 여인의 밀가루 통과 같은 놀라운 역사로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위기에 놓인 우리가 어떤 방법, 어떤 선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위기의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점검하고 살필 것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 우리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가지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말씀의 가르침대로 충성하고 헌신하면 성령께서 도우사 거룩한 열매로, 거룩한 은혜와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위기의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오늘 초대교회 공동체가 위기의 때 자신들의 사역을 점검하여 본질로 돌아갔던 것처럼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도는 주어진 자리에서 구제와 봉사에 힘쓰는 것이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양보하면 바보가 되고, 공의와 정의를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성경적인 삶이라면 기꺼이 바보가 되고, 기꺼이 시대착오적인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자세요, 성도의 본분입니다. 우리가 먼저 양보하고 섬기는 전통을 세우고, 우리가 먼저 공의와 정의를 세우고, 우리가 먼저 손 내미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도우사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사르밧 여인의 기적으로, 초대교회의 부흥으로 우리의 미래를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주의 전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평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오히려 세상의 질서를 바꾸고, 세상의 가치를 바로잡아 양보가 미덕이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거룩한 믿음의 일꾼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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