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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부활절(3-1) - " 두 가지 길 " / 교회교육주일, 어린이. 청소년주일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22-04-29 (금) 12:55 1년전 350  

본문) 요 4:31-38, 왕상 3:3-14, 골 3:1-11


두 가지 양식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물을 긷기 위해 나온 여인과 말씀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마을로 나가서 양식을 구해 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음식 들기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권하는 음식을 드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요 4:32)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음식이 예수님께 있다니, 혹시 우물가에서 함께 대화를 하던 여인이 음식을 드렸는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하나님의 뜻은 목숨을 내어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태초에 계신 말씀이심을 믿는 것입니다(요 1:1). 그리고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요 1:2). 동시에 이 세상 모든 만물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지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요 1:3).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 1:12).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요 3:1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모든 실천적 행위와 과정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먹을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은 우리에게 하루하루 지속적인 삶을 위해서 반드시 먹어야 할 양식과도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양식을 하늘의 떡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3, 35)


예수님의 이러한 생명 양식에 대한 가르침은 제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육신의 양식과 뚜렷한 평행선을 보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육신의 양식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은 후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요 6:15).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이유는 표적을 봤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요 6:26).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도 무리들은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라고 하며 육신의 떡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육신의 떡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양식에 집착하는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해서 쉽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양식에 대한 문제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을 하면서 직면했던 첫 번째 시험이기도 합니다.

애굽을 탈출해서 나온 히브리 백성들을 가장 크게 괴롭힌 것도 육신의 양식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은 40년 동안 먹을 양식과 마실 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시험을 받았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모세를 원망했고(출 15:24), 갈증을 이기지 못해 르비딤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출 17:2, 7). “이 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민 20:5)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히브리 백성은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애굽에서 고기 가마 곁에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출 16:3)를 말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육신의 양식 문제는 이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육신의 양식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잔혹한 전쟁과 잔인한 권력자를 만날 때마다, 극심한 흉년과 처참한 전염병을 겪을 때마다, 백성들에게 육신의 양식은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는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과 능력의 기준은 ‘경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가치를 정하는 기준도 ‘경제’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격도 ‘경제’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학문의 가치도 ‘경제’의 측면에서 판단합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몸인 교회의 영역까지도 ‘경제’를 기준으로 보려는 입장도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엄밀히 보면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양식을 가볍게 여기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수 천 명의 무리가 따라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배부르게 먹도록 하셨습니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을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의 모습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양식에 대해 소홀히 여기지 않으셨지만, 육신의 양식에 매여서 사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양식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구원에 이르며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양식이야말로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셨고,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요 6:33, 35).

우물가의 여인과 나눈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여인은 육신을 위한 물에 관심을 가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물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13, 14).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두 가지 양식과 두 가지 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고,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늘의 양식을 먹고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고 생명의 물을 먹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마음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듣다”는 단어에는 ‘경청하다’는 뜻도 있지만 ‘순종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의 소리에도 경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원을 듣고 기뻐하셨습니다. ‘듣는 마음’은 백성들의 송사를 분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한 마음을 원했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원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자신을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않고, 부도 구하지 않으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칭찬하셨습니다(왕상 3:11). 장수와 부와 보복의 마음은 자기 중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상 그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새기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열왕기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생각


사도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의 교인들에게 두 가지 생각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는 하늘의 것에 대한 생각이요, 또 하나는 땅의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것에 대한 생각과 땅의 것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늘의 것에 대한 생각은 예수님의 부활과 하늘 보좌에 대한 것이요(골 3:1),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며(골 3:4), 새 사람을 입는 일과 새 창조에 대한 것골 3:10)입니다. 하늘의 것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우리가 땅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집착을 한다면 음란, 부정, 악한 정욕, 탐심,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골 3;5, 6). 그리고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골 3:8, 9).


오늘의 말씀은 우리 성도님들이 처한 두 가지 길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두 가지 갈래길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두 가지 양식과 두 가지 마음, 그리고 두 가지 생각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모세의 고백대로 생명과 복, 사망과 화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신 30:15). 

예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늘 양식과 하나님 중심의 마음, 그리고 하늘의 것에 대한 생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우리를 영생의 삶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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