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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부활절(3-1) - " 증인 "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0-04-24 (금) 10:46 4년전 1889  

본문) 사43:8-13,  행10:34-43,  요20:19-31

 

증인은 무언가를 내놓는 사람이다. 헛것을 내놓는다면 증인으로 선서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직하게 내놓아야 제대로 된 증인의 역할이다.

 

이사야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이사야가 이끌어 내야 하는 그들은 이미 증인이 될 수 없어 보인다. 볼 수 없고 듣지 못하고, 어쩌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그들이다. 그들은 이미 증인으로 선택받고 많은 것을 보았고 들은 사람들이지만 옳고 그름의 관점을 갖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엄포와 회유의 결정타가 떨어진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으며 너희를 증인으로 선택한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다.” ‘너희가 한 증언의 결과에 대해서는 나 여호와가 판가름한다.’는 일종의 ‘협박’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섰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유대인에게는 증언이 효력이 있으나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그러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에 싸인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에 감겼던 그의 눈이 뜨였다. 한 쪽으로만 열려 있던 그의 마음이 온 세상을 향해 뻥 뚫린 것이다. ‘아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다 사랑하시는구나!’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 뿐 아니라 죽어 있는 사람의 재판장이 되시는 분이신데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이 아무것도 없듯이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증언되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는 예수를 처형한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선택되었고, 보았고, 들었으나 믿고 싶지 않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평강을 누리라고 하신다. 자유롭고 당당한 용기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활동에 대해 하신 말씀이시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라고 행동의 주체를 바꾸어 말씀하신다. 그러나 막무가내가 아니다.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다. 이제 죄를 장악할 힘과 권위가 제자들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당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에게도 담담하시다. 도마에게 자신을 만져보도록 기회를 주신다. 글보다 그림이 더 기억이 잘 되는지라 카라바조의 <의심 많은 도마>를 본 사람이라면 도마는 예수의 가슴에 뚫린 창자리에 손가락을 넣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그런 기록은 없다. 도마는 자기가 했던 말처럼 손가락을 넣어 상처를 확인하지 않고도 예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성령을 받으라. 숨을 내쉬며 말씀하신다. 숨, 그 숨은 창조의 숨이다. 문을 닫고 두려움이라는 어둠에 갇혀 떠는 자들, 오히려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신 예수의 그 무덤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던 제자들을 평강의 밝은 세상으로 나오도록 하신다. 예수의 숨으로 인해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의 부활이 된다. 부활의 새 생명을 얻은 제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활동으로 부활의 증인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듯이 보인다. 오히려 민폐를 끼치는 온상처럼 여겨진다. 파렴치한으로 몰리기도 한다. 교회는 어둠의 동굴 속으로 강제로 밀쳐져 들어가야 했다. 예배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를 중지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수의 부활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이제 예수께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시며 보내신 그 보내심에 따라 교회는 나가야 한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그런데 나의 상태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어떻게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문이 닫혀진 시간을 보낸 교회는 다시 문을 열면서 분명한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의심 많던 도마는 문들이 닫힌 곳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났고 믿었다. 아직 미명이다. 날이 환히 밝지 않았다. 전염병은 가라앉는 중이나 미래가 불분명하단다. 그렇다면 교회의 문이 활짝 열릴지, 언제 다시 닫혀야만 할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두려우면 그 누군가도 두려울 것이다. 부활을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육체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제 죄사함의 선포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참회의 고백을 한 이후에야 자신의 죄가 사해졌음을 말하고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평강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불어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동안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고 보지 못했던 함께 이룰 평화를 바라보는 눈을 떠야 한다.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느라 듣지 않았던 세속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증인으로서 해야 할 말을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직 어둠의 시간이고 어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우리는 뜻밖의 부활이 아니라 예견된 부활의 시간에 서게 된다. 날이 밝으면 뭔가 증언을 해야만 한다. 그 말을 준비해야 한다. 동굴 속에 갇혀 있던 시간에 보았고, 들었고, 믿게 된 것을 증언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있나?

 

이사야서의 말씀으로 증인된 자격과 사명을 깊이 새기려고 한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43:11-12)

 

이제 죄를 장악할 힘과 권위가 제자들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를 따르던 사람이라면 빛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나가자. 평강을 이루시는 주께서 찾아오시고 함께 하실 것을 믿으며. 

온 생명의 구원자이신 여호와하나님과 부활로서 그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님처럼 누구의 죄든지 사해주며,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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