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1~15, 엡 4:1~16, 요 14:1~14
1.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주일이고, 승천주일(승천일 : 26일)입니다. 지난 1월 6일은 주현일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예수님은 참 신과 참 인간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따라서 주현절기 동안 매주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로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사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 눈에 띄었던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시면서, 결코 홀로 그 일을 감당하시지 않으시고 한 명씩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도움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셔서,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해지기를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그리스도로써 행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현장 학습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자이기에 받을 수 있는 복이었고, 동시에 제자이기에 짊어질 책임이었습니다. 언제나 복과 책임은 함께 따라가는 법입니다. 주님은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후에 그들을 일컬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다음과 같은 책임을 더하여 주셨죠.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제자들의 사명은, 그들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임무 완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구원받았음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겁게 들어야 할 구원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를 비롯한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물 위를 걷기도 하셨고, 오병이어에 이어 칠병이어도 행하셨습니다. 율법과 유대교 전통과 역사를 앞세워서 예수님을 협공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에게도 결코 굴하지 않으시고, 모세의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당당하게 가르치고 전파하셨습니다. 이처럼, 갈릴리와 사마리아, 때로는 두로와 시돈까지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홀로 기도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그 때마다 그 곳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늘 함께 했다. 제자들은 목격자였고, 증인이었습니다. 이제 현장 학습을 거의 마무리 하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그간 함께했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목격한 증인의 가장 확실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유월절에 맞춰서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질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죠. 예수님의 행보는 어느 것 하나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간 제자들은, 아마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또 어떤 그리스도의 사역을 행하실지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그것이 오늘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이유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할 만한 내용은, 요한복음 13장에 기록되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제자 중에 한 명이 예수님을 팔아 넘길 것과 예수님의 으뜸 제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는 청천벽력의 말씀을 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당신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별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행보와 말씀에 제자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이별로 인해 근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말씀, 무엇보다 차원이 다른 세상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수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직면할 때마다 제자들이 받았던 주님의 위로와 격려, 희망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이별을 앞둔 예수님께서, 지금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난 3년여간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라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함께 계실 것만 같았던 예수님이, 제자 중에 한 명에게 매수 당하고, 베드로도 부인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니 이제 걱정이 태산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의 “마음의 근심”이라는 한마디 안에 별의별 불안한 감정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중심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근심은 불신의 산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이별이 영원한 끝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거처할 곳을 예비하러 “내 아버지 집”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처가 예비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영접하고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버지 집이 어디인지, 또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묻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걱정 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내가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안심시켜 주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빌립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군지 보여달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행하셨던 일들이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아버지의 일을 행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되, 만일 믿음이 안 생기고 여전히 근심이 되거든, 너희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써 행하신 일들의 증인들이니, 그 역사의 현장들을 되새기며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였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2절부터 주님은 진심을 다해 제자들에게 부탁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이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애끓는 심정이 전해지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의 직접 목격자요 증인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믿는 자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아서,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는 그 사이에 더 큰 일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기 위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이 행하신다고 2번이나 약속하셨죠(13절, 14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이어받아서 하는 것만큼,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된 일이 없을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별사를 들은 제자들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비록 모두 흩어졌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 받은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집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운대로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기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보고, 듣고, 경험한대로 가르치고, 전하고, 치유했습니다. 결국 이 믿음과 행함으로 교회 공동체는 이후에 갖은 핍박과 탄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행하시는 은혜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4.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도 애끓는 이별의 현장을 만납니다. 주인공은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입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 벌어진 일입니다. 집요하리만치 제자 엘리사는 엘리야가 벧엘, 여리고, 요단을 갈 때마다 따라다니며,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장담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단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는 말에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있기를 구합니다. 실현되기 어려운 요청이지만,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면, 그 일이 일어날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을 가던 중에 불수레와 불말들이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데려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으로 물을 치매 물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후에 선자자의 제자들이 엘리사를 보고,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며 엘리사에게 엎드려 경배합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엘리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뒤를 이어서 변함없이 선지자의 제자들을 양육할 수제자를 남겨놓은 셈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입장에서는 스승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자신 위에 머물러서 전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성령의 능력을 이어받은 이야기일까요? 엘리야가 누군지 안다면 단순히 성령의 능력을 주고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때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절대 권력자인 왕에게 굴복하기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역할을 우선순위에 뒀던 선지자입니다. 당시에 엘리야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이들 알고 있는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합 왕이 섬기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이세벨의 선지자 400명이 엘리야와 갈멜산에서 영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결과는 엘리야의 완승이었고,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처형했습니다. 이 소식이 왕비 이세벨에게 들어갔고, 내일 이맘때쯤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통보에, 엘리야는 광야로 피신하여, 40일 밤낮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왕과 왕비의 살해 위협을 받는 엘리야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명예와 출세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입니다.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일, 그래서 나라와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일을 목숨 걸고 행했을 뿐입니다. 그런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며, 스승이 하는 일에 역사하셨던 동일한 성령의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엘리사는 성령의 능력만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어떤 위협과 고난과 역경이 있다고 할지라도, 스승 엘리야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아 행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겼습니다. 스승 엘리야도 성령의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했으니, 스승을 뒤따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테니 갑절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구하는 엘리사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엄혹한 중에도 세상의 형편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왜 주시지 않겠습니까!
5. 우리가 모인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런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믿고, 그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따라가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좇는 공동체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바로 그 하나님의 핏값으로 산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모범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고 전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면서,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면서, 샬롬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절대, 어떤 경우에도 분열되거나 나뉘거나 차별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혹여나 어떤 갈등이나 어려움이나 곤고함이 생긴다면, 오직 하나의 몸, 하나의 성령, 하나의 소망, 한분의 그리스도,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세례, 유일하신 하나님의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 공동체 안에서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알고, 마침내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따라서 행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지체마다 역할이 다르듯이, 성도 한명 한명은 모두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소중한 지체라는 것을 깨닫고, 소속감과 책임감으로 맡은 역할과 사명을 다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6.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근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아 행하신 일들을 배우고, 알아서 따라 행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아버지 집에 있게 될 것을 소망하는 공동체입니다. 승천일을 앞둔 승천주일에, 사도신경에서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의미를 되새깁시다. 그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서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을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