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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6-2) - " 만왕의 왕, 만주의 주 " / 종려주일 / 제주 4.3기념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3-04-03 (월) 12:46 1년전 229  

본문) 요 19:17~22, 삼하 7:1~17, 계 19:11~16


종려주일 아침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은 오늘을 제주 4.3기념주일로 지킵니다.

4월 3일을 앞에 두고, 일반 시민들이 영락교회에 촉구 서한을 보내는 움직임들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촉구하는 서한인가하면, 영락교회를 비롯한 영락교회의 중심축이었던 서북청년단들의 지난 날의 만행을 사과하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서한이라고 합니다.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셔서 잘 알 것입니다. 

인터넷에 제주 4.3만 검색해도 그 내용이 꽤 자세하게 나옵니다.

제주 4.3에 대한 역사적인 통찰을 알고 싶으면, 도올 김용옥씨의 “우린 너무 몰랐다”라는 책을 탐독해도 좋을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지난 28일 추모의 뜻을 전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더 이상 이념이 상처를 헤집지 말기를 바란다. 4.3의 완전한 치유와 안식을 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한 주간 같은 책을 읽고, 감히 같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이 우리 나라를 통치하던 때에, 미군은 제주도에 일본에 부역했던 경찰을 재배치합니다. 이런 과정에 1947년 3.1절 기념식 이후에 가두시위를 합니다. 그러다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 발굽에 어린이가 치였으나, 경찰은 방치합니다. 그 모습을 본 시위대가 그 경찰을 비롯한 경찰서까지 찾아가서 항의했고, 그 항의에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여, 시위대를 향해 사격합니다. 이 일로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입습니다.

이 발포 사건 이후에,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 단체가 동참하는 대규모 파업이 이어집니다.

이에 미군정은 총파업에 강경대응합니다.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제주에 있던 군 수뇌부를 전부 외지 사람들로 교체하고, 전라남북도, 경기도 응원 경찰과 서북청년단원을 제주도에 파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1년간 2,500명을 구금했고, 1948년 3월에는 청년 세 명이 고문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 후에 1948년 4월 3일에 남로당 제주도당 신진세력은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와 단독 선거, 단독 정부를 반대하고, 남과 북의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무장시위를 전개합니다.

이후에, 무장대와 진압대의 대충돌이 이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11월 17일에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1949년 1월 21일에 국무회의 자리에서 “제주도, 전남사건을 완전히 발근색원해야 미국의 원조가 적극화할 것”이라며 “(제주 4.3사건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처음에는 진압부대로 9연대, 이후엔 2연대로 교체되었습니다. 그 중에 서북 청년단원이 많이 편성된 2연대 3대대는 1949년 1월 17일 400명의 주민들을 집단 총살하는 “북촌 사건”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에 한편 무장대의 공격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제주 4.3으로 인해, 2만 5천명에서 3만 여명의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참 아픕니다.

아픈 중에 묻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은 과연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특히나, 제주 4.3의 진압부대의 일원이었던 이북에서 온 서북청년단원이라고 하는 우익 단체는,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청년들이 모여서, 진압부대가 되어서, 동포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는 말입니다.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는가? 과연 어떤 예수님을 믿었는가?”

오늘 설교가 매우 무겁게 시작되어서, 나도 마음이 덩달아 무겁습니다.

근데, 종려주일이요, 제주 4.3기념주일인 오늘은 한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려주일에서 말하는 왕으로써의 예수님과 1947년부터 벌어진 제주 4.3의 진압부대원인 서북청년단원의 예수님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독교인으로써 제 2의, 제 3의 서북청년단이 우리 역사에서 생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십자가가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며,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에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정말 깊게 잘 생각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서 말씀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분인데, 자기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면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 자기 죽음입니다. 자기 비움입니다. 자기 낮춤입니다.

빌라도는 그 십자가에 패를 써서 붙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야말로 왕. 십자가의 길은 곧 왕의 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왕이라면,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듯이, 빌라도는 히브리 말과 로마 말과 헬라 말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진짜 왕이 가는 길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진짜 왕이 가는 길입니다.

빌라도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대인의 대제사장은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합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십자가에 달린 유대인의 왕은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십자가에 달리신 진짜 왕을 의미하는 것이요, 십자가에 달린 자칭 유대인의 왕은 한낱 정치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대제사장들은 여전히,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그 구원을 완성하는 길이 대속의 십자가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철저히 자기 민족 중심이라는 선민의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한 채, 절대군주로써의 왕, 절대 통치자로써의 메시아만을 인정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정신과 문화와 신앙이니, 사회를 과감히 의인과 죄인으로 양분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공평하게, 동일하게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번영과 성공과 부귀와 영화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것들을 옳다고 인정해 주는 왕, 메시아, 그리스도가 절실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죄인이요, 저주받은 자요, 힘없는 자요, 권력도 없는 자요, 아무런 사회적 뒷배경도 없어서 저항하지 못한 채, 자기 십자가를 지신 저기 촌 동네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진짜 왕으로 인정할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대제사장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그들만의 왕. 여전히 기다리는 이스라엘 국기에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별의 주인공! 바로 다윗과 같은 메시아, 다윗과 같은 왕이야말로 진짜 왕이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요, 신앙이었습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쓰라는 것은, 결코 유대인의 왕은 저렇게 나약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자신들의 우월함과 선민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말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유대인들이 왜 그토록 다윗과 같은 그들만의 왕을 기다리는지, 그 배경이 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사울에 이어서 왕이 된 다윗이 주변국과의 전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시점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윗이 나단에게 말합니다. “나는 화려한 집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에 그대로 있는 것이 맘에 걸리오.”

그러자, 나단이 “왕이 하고 싶은대로 하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 나단이 다윗을 다시 찾아와서 지난 밤에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내게 임하셔서 다윗 왕에게 전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이후에 오늘까지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니셨습니다. 이 때에, 어느 지파에게도 왜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지 않냐고 말한 적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모든 원수로부터 편히 쉬게 하고, 다윗의 집을 지어주고, 다윗의 후손에게서 왕을 세습시켜주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고, 하나님은 다윗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버지가 되고, 다윗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다윗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총을 빼앗지 않고,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단의 신탁이라고 하는 본문을 한줄로 요약하면, 성전을 지을 계획을 하다니, 다윗에게만 왕위를 견고하게 해 주겠다. 그것도 영원히!

안타깝지만, 이 영원한 다윗의 왕위는 고작 솔로몬 이후에 손자인 르호보암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었고, 그로부터 400여년 만에 다윗 왕위는 영원히 사라집니다.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 칙령 이후에 본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을 세워서 나라를 통치할 수도, 통치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물론 헬라제국 시대에 하스몬 왕조가 재탄생하기도 했지만, 다윗 왕조와 무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헤롯 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와 친분이 두터운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유대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진 역사를 보내면서도 자신들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나라와 민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의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기대하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온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라는 목적으로 유대인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과 뜻은 전혀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다. 그저 유대교라는 우물에 갇힌 개구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요?


오늘 요한계시록 말씀에서 선명한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로마 집권 세력들의 심판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고 구세주로 등장하십니다.

이 때 예수님의 이름이 다양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충신, 진실이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예수님의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이 씌여졌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시오,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온 세상의 주관자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만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이방인들만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들의 시선은 나 중심에서 온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들의 생각도 나 중심에서 온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이들의 목표도 나 중심에서 온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향하는 만큼,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의미있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하는 생각과 시선과 목표의 크기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혐오를 말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차별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전쟁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우월함을 말하는 것이 과연 대속의 십자가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는 매우 정확한 사례가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날 수 없으며, 일어나지 않게 하겠노라고, 예수님을 붙들고 아주 강하게 항변하며 대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인정하고 믿고 살아가는 자의 삶은,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듯이, 그 뒤를 따르는 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갑니다.

예수님만 십자가 지우고, 나는 그 대가로, 부귀와 영화와 성공에 따른 자랑만을 늘어 놓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혹여나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로, 그 대가로 얻게 된 부요함이 있다면, 그 부요함을 피의 댓가로 여기고, 자신 또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통해서 주변을, 세상을 부요케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려주일을 보내면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진정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믿어지고, 인정되고, 그 은혜가 고맙거든, 그 만큼, 딱 그만큼만이라도, 자기의 십자가로 온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굴러가도록 돕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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