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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3-1) - " 회개하고 돌아오라 " / 문홍근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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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사순절(3-1) - " 회개하고 돌아오라 " / 문홍근 목사

관리자 2021-03-05 (금) 15:01 3년전 691  

본문) 호14:1-9, 요일1:8-2:6, 눅15:11-32 


1) 3월 새봄

3월 첫 주입니다. 이제 새봄이 되었습니다. 집에 갇혀 지내던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게 되면서 길거리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동네에 생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비록 마스크를 끼고 나왔지만 모두들 표정만은 ‘봄이 되니 참 좋다’하는 것 같습니다. 새봄을 맞아 모두들 새 마음으로 힘차게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조심하여 코로나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2) 힘들 때 깨달아야

복음서 본문 누가복음 15장은 모두 잘 아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완벽한 문학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비유입니다.

내용은 모두들 잘 아시기 때문에 생략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비유를 읽으며 오늘 집을 나간 탕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회개의 촉구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문명을 건설하고 살아오면서 하나님 없이(아버지 없이) 우리들끼리도 얼마든지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만했습니다. 탕자에게 아버지의 간섭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처럼 하나님은 현대인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더 이상 앞으로 막나갈 수 없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대전환이 없이 그대로 질주해간대면 결국은 인류가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나가 제 맘대로 살다가 가진 모든 것을 탕진해버리고 남의 집 품꾼이 되어 쥐엄 열매를 먹으며 고통스럽게 살다가 그 고통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18-19절)라고 고백합니다. 탕자는 고통 속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될 결심을 합니다. 탕자는 그래도 고통 속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길을 되돌려 아버지에게 향할 정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 속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고통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탕자는 고통을 겪으며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깨달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탕자보다 못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성경을 먼 옛날이야기로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로 힘들다, 어렵다 하는 이야기는 하지만 지금 어디로 방향을 정하고 길을 내야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면 돌아서서 뒤돌아보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서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겸손해져야합니다. 지금껏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만심을 갖고 하나님 무시하고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깊은 영적인 자각을 가져야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봅시다. 지금 이대로 마구잡이로 살아도 될까요?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열차에 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마음속으로 ‘하나님 죄 지었습니다. 회개합니다.’하면 되는 것입니까?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탕자가 고통 중에 아버지에게로 되돌아섰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여기서 멈추고 돌아섭시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내려놓고 돌아섭시다. 가난한 서민들이 집이 없어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 벌어야 하니까 L.H주택공사 직원들처럼 땅 투기하고 ‘집 장난질’하고 가야합니까? 돈 된다고 마구잡이로 하나님 만드신 산과 바다를 파헤쳐 케이블카 놓고, 산악열차 놓고, 위락시설 만들고 가야합니까? 탐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같이 살아야하죠. 혼자만 살 것입니까?

사순절 회개, 무엇을 회개하십니까? 회개가 감정상의 문제라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근본적인 전환이 바로 회개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탕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지금 우리도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8세기 중엽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입니다. 그 중에서도 14장 말씀은 앗수르의 이스라엘 공격을 앞에 둔 시점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바알 우상을 더 숭배했고 하나님 섬기는 일은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죄짓는 일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이나 그들이 가진 군사력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야훼신앙은 저들의 삶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삶을 움직이지 못하는 신앙은 취미 정도요 악세사리인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일어서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고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고 저들은 불의했습니다. 불의가 무엇입니까? 사리사욕에 빠져서 가난한 약자들을 짓밟은 것입니다. 탐욕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린 것입니다. 호세아 앞에 있는 이스라엘이나 지금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호세아의 이스라엘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강권하십니다.

3절에서 호세아는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애굽 산)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가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합니다. 군사력이나 가공(可恐)할 미사일 같은 무기를 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돈’이죠? 언제부터인가 모두가 ‘돈신’의 위력 앞에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돈신’의 종이 된 우리를 호세아는 3절 말미에서 ‘고아’라고 표현합니다. 고아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탕자처럼 길을 못 찾고 방황하며 하나님을 떠나 사는 우리가 고아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상태에서 되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라”고 약속하십니다. 5절 -7절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온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은총을 보여줍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좋은 옷을 입히고 풍요로운 잔치를 베푸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4)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시는 주님

서신서 말씀 요한일서 1장은 사도요한이 요한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해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요한일서는 특히 교회에 들어온 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거짓 신앙을 갖고 영적인 지식을 갖는 것에 주안점을 둔 이원론적(二元論的)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에 몰두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고상한척 하고 교만합니다. 실제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합니다. 바로 이런 자세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것이 요한의 가르침입니다. 요한은 3절에 있는 것처럼 계명을 지킬 것을 강조합니다. 계명은 바로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말로만 믿는 신앙의 허구를 지적합니다. 4절에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말만하는 신앙, 입만 살아있는 신앙에서 돌아서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라고 했습니다.

말만 하고 실천이 없는 입으로만 믿는 신앙인들인 우리가 바로 회개하고 돌아서야할 영지주의자들은 아닙니까? 또 교만하여 모든 지식을 통달한 사람처럼 하면서도 여전히 죄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이름만 있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Nominal Christian)’인 우리가 영지주의자들입니다. 바로 여기서 회개하고 돌아서야합니다.


5) 맺음

지금 이 코로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회개가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코로나 상황을 통해 지금 우리가 멈추고 돌아서서 회개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그리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돌아온 탕자에게 베푼 풍성함을 다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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